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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월성에 대하여…

어느 사십 대의 대학원 생활 이야기

by 소미소리

오만은 무지에서 온다. 대학원 공부를 잘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취업을 했고, 직장생활을 하느라 대학원에 늦게 들어갔다. 학업을 이어가고 싶은 마음은 늘 마음 한 구석에 있었다. 적성에 맞아서 즐거웠고 나름 성취를 맛보던 첫 번째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슬며시 공부할 생각을 했고, 안정적인 두 번째 직장 생활을 하면서는 적성에 안 맞았기 때문에 오히려 공부를 실행할 용기를 냈다. 아이러니하게도 재미있는 학원 강사 생활은 나를 그 자리에 붙잡아 두었지만, 재미없고 지루한 두 번째 직장은 나를 움직이게 했다.


오랫동안 공부하고 싶던 마음에 좋은 기회를 만나 석사를 했고, 연이어 박사를 시작했다. 공부에 대한 열망은 여전했기에 40대에 시작한 대학원 생활의 어려움은 수이 이겨낼 수 있었다. 기회가 될 때마다 발제하는 나를 눈 여겨 보신 은사님의 조언으로 쉽게 박사 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다. 석사를 하던 학교 한 군데만 박사 원서를 넣어서 합격했다. 문제는 석사 논문이 통과되기 전에 박사 합격자 발표가 먼저 난 것이었는데, 석사 졸업 예정자의 신분이었던 나는 그 여름에 석사 논문이 통과되지 않으면 자동으로 박사 합격은 취소되는 상황이었다. 논문을 통과하고 싶은 욕심은 있는데, 실력이 갑자기 좋아질 리가 없다. 끝에 가서는 ‘그래, 이번에 석사 졸업이 안되면 그것도 받아들이자. 박사 합격이 취소되더라도 받아 들아자.’ 이런 마음이 들었다. 마음을 다 비우고 끝까지 수정에 매달렸고, 가까스로 석사 논문이 통과되었다. 석사 동기생 3명이 모두 같은 날, 몇 시간의 시간차를 두고 논문이 통과가 되었다. 전문대학원 석사 공부는 어렵지 않다. 하지만 전문대학원에서 논문으로 졸업을 하려면 논문을 쓰는 동안은 대학원 생활 중 전무후무한 고생을 각오해야 한다. 고생스럽더라도 학업을 이어갈 사람이라면 논문을 졸업요건으로 선택하는 것이 이후에 도움이 된다.


40대의 나이에 직장이 있고 가정이 있고 돌보아야 할 아이들이 둘이 있는 상태에서 박사 생활을 시작했다. 풀타임으로 공부하는 젊은 연구자들이 대다수였고, 나처럼 나이가 많고 집안일과 육아의 부담을 가진 파트타임 대학원생은 적었다. 석사 때와 또 다른 분위기였다. 생소한 영어 텍스트를 보아야 했다. 제대로 영어를 공부하지 않고도 취업문을 열었던 나에게 영어 텍스트를 보아야 하는 것은 시간이 투입되고 또 투입되는 일이었다. ‘이게 글이야, 그림이야.’ 외치면서 구글 번역기를 돌렸다. ‘이게 말이야. 뭐야.’하면서 단어를 일일이 찾았다. 남들 두세 번 읽으면 이해될 걸, 열 번은 족히 읽어야 이해가 되었다. 말이 아예 이해가 안 될 때에는 비슷한 내용의 쉬운 책을 읽으며 개념을 먼저 이해하고, 원문 텍스트를 보았다. 공부에 대한 열망은 마음속 한편에 계속 불을 비추고 있었으므로 주어진 과제를 하나씩 해결했다. 각 과목마다 읽을 책과 논문을 매주 읽고, 발제가 있으면 발표자료를 만들고 발표 준비를 했다. 그리고 레포트를 낼 시기가 되면 과목 특성에 맞게 분량을 채운 레포트를 제출했다. 그렇게 한 학기 한 학기 산을 넘듯이 네 학기가 지나고 드디어 지난여름에 박사 수료라는 방점을 찍었다. 오랫동안 꿈꾸던 꿈이 드디어 이루어지니 기뻤다. 그 기쁨과 뿌듯함과 자부심을 누렸다.


그것도 잠깐, 이제 학위 논문을 앞두고 있다. 그리고 수료에 대한 기쁨과 뿌듯함과 자부심은 어디론가 도망가 버렸다. 그리고 탁월성에 대해 생각한다. 공부만 시작하면 충분히 잘 할 수 있다는 생각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는 나날이다. 오만은 무지에서 온다. 무지는 무경험에서 온다. 오랫동안 잘하고 싶었던 것, 잘 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던 연구자의 길을 경험하면서 탁월성은 생각으로 될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무지와 무경험의 소치로 오만하게 꿈꾸던 시절을 떠올린다. 그리고 지금 논문을 쓰면서 나의 탁월성을 기대하던 마음과 저만치 거리를 두고 있다. 남이 쓴 논문을 보면서 한 자 한 자 내 지식으로 변화시키고 내가 소화한 언어로 표현하는 지루하고 끝없이 느껴지는 작업을 하고 있다. 탁월성을 꿈꾸지 않아도 괜찮다고 스스로 위로한다. 그저 한 줄 한 줄 논문을 쓰고 있는 나 자신, 공부도 삶처럼, 집안일처럼, 에세이를 쓰는 것처럼, 한 번에 되지 않고, 한 번에 될 수 없고, 한 방울의 물이 바위를 뚫듯이 한 방울의 힘, 한 글자의 힘으로 조금씩 나아가는 것이라고 되뇐다.


자신감, 탁월성에 대한 자신감, 그런 거 이제는 없다. 다만 나보다 먼저 이 길을 간 사람들의 지난한 작업의 결과물을 겸손하게 하나씩 소화하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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