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와 기아
독일이 낳은 철학자 이마누엘 칸트는 말했지. “나 아닌 다른 사람에게 가해지는 비인간성은 내 안의 인간성을 파멸시킨다”고. (p.177)
장 지글러, <왜 세계의 가난은 사라지지 않는가>, 2019, (주)시공사
굶주리는 아이들과 사람들, 문자 그대로 굶어 죽는 사람들, 세계의 절반이 굶주리는 시대다. 이렇게 풍요가 넘치는 시대에 나는 어쩌다 한국에 태어났고 물질적인 결핍을 절대적인 수준으로는 경험하지 않은 세대에 속해 있다. 그리고 세계의 식량 생산량은 세계인의 2배까지도 너끈히 먹여 살릴 수 있다는데, 실제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고 있다. 세계의 하위 절반의 부를 100명도 안되는 소수의 부자가 차지하고 있다. 분배만 제대로 된다면, 뭔가가 바뀐다면 적어도 굶어죽는 사람은 없을 거라는 단순한 생각만 하고 있다. 뭔가는 대체 무엇일까? 혼탁하고 모호한 개념인 뭔가는 무엇을 바꾸어야 분배가 잘 되고, 적어도 굶어죽는 사람은 발생하지 않는 세상이 될 수 있을지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이다.
마침 쑹훙빙의 <화폐전쟁>을 읽고 있었는데 장 지글러의 <왜 세계의 가난은 사라지지 않는가>와 일맥 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독서모임의 책으로 <화폐전쟁>이 선정되어서 급히 빌려서 읽고 있던 차였다. 장 지글러의 책이 연체되었다는 도서관의 문자를 받고 오늘 드디어 책꽂이에 잘 꽂아둔 장 지글러의 책을 꺼냈다. 그냥 반납해 버리면 다시는 이 책과 인연이 닿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만사를 제쳐두고 이 책부터 읽었다. 할아버지가 된 장 지글러가 10대 초반의 손녀에게 쉽게 설명하는 형식으로 글을 풀어냈으니 단숨에 읽을만한 책이다. 하지만 좋은 책이 늘 그렇듯, 단숨에 소화시키기에는 역부족이다. <화폐전쟁>이 보다 극적이라면 <왜 세계의 가난은….>은 보다 현실적이다. 유엔인권위원장으로 활약한 장 지글러는 세계의 가난을 널리 알리고 싶다. 그리고 그의 책을 한번이라도 접하고 나면 ‘이 망할 놈의 세상’이라는 말이 저절로 나오고 만다. 그럼 이렇게 불평등하고 아이러니한 세상을 그저 한 명의 사람인 내가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을까? 장 지글러는 미세한 균열이 담장을 허무는 비유로 개인의 작은 움직임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작은 인권단체라도 후원하거나 작은 목소리라도 내는 것이 첫번째 할 일이다.
인간은 말이다. 자기가 원하지 않는 건 확실하게 알아. 이 할아버지는 5초마다 10세 미만 어린이 1명이 배가 고파서 혹은 배고플 때 제대로 먹지 못해서 걸린 병 때문에 죽어가는 곳에서는 살고 싶지 않아. (p.180)장 지글러, <왜 세계의 가난은 사라지지 않는가>, 2019, (주)시공사
자본주의 사회의 구조 속에서 살고 있기에 자본주의를 역행하며 사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얼마간의 자본소득을 얻고자 주식창을 들여다보며 언제 주식을 사고 팔지 가늠하고 있다. 이렇게 자본주의 사회에 잘 편입되어 사는 개인이어도 장 지글러의 책을 읽고 나면 내가 움직일 것이 무엇이 있는지, 그리고 자본주의에서 승리를 쟁취한 외국의 다국적기업의 거부들이 자신의 재산의 대부분을 세상에 다시 기부하는 형식으로 돌려주는 모습을 다시금 또 다른 눈으로 바라보게 된다. 탐욕이 끝도 없는 세상에 탐욕에 선을 그을 줄 아는 모습은 자본주의에 대한 역행이라 할 수 있다.
주식창을 들여다보다 장 지글러의 책을 접하고는 경계에 있는 내 모습을 바라본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족함 없이 살기를 희망하지만, 세계의 어린이 중 한 명이 5초마다 굶어 죽는 끔찍한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지…. 수많은 학살이 진행된 세계대전이 두 번이나 지나갔지만, 3차 대전은 여전히 진행중이다. 여전히 5초마다 세계의 어린이가 한 명씩 굶어 죽어 나가고 있으니 말이다.
* 표지 사진 출처 : Unsplash의Dulana Kodithuwakk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