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질식을 하면서....
온갖 다이어트가 유행하는 시대다. 채식주의, 페스코 채식주의(채식을 위주로 하되 달걀, 우유, 꿀 등의 섭취를 허용하는 것), 키토식(저탄수화물과 고지방식), 체질식 등의 여러 다이어트가 유행을 하고, 이게 좋다, 저게 좋다, 말도 많고 탈도 많다. 나도 그 중 몇 가지 다이어트를 시도해 보았고, 지금은 권도원 박사의 8체질에 의한 체질식을 하고 있다. 다이어트는 기본적으로 먹는 음식을 제한하여 적정한 체중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고, 평소에 너무 많이 먹고 산다는 것이 전제로 깔려 있다. 먹고 싶은 맛있는 음식이 쌓이고 썩어 나가는 시대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식욕을 억제하거나 강제로라도 식단 제한을 하지 않으면, 몸에도 영양분이 쌓이고 소화불량에 걸릴 지경이 되고 만다.
이런 시대에 굶주리는 사람들이 세계 인구의 7명 중의 1명이며, 5초에 한 명의 어린이가 정말로 굶어 죽고, 비타민A를 섭취하지 못해서 무수한 사람들이 시력을 잃으며, 영양실조로 뇌와 장기가 손상되어 회복불능의 상태에 이르는 사람들이 산적해 있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얼마전에 아토피가 도졌고, 한의사 선생님의 조언대로 체질식을 유지하고 있다. 체질식이 당장에 아토피를 완전히 낫게 할지는 아직 모르지만, 내 몸에 맞는 식단으로 내 몸에 부담이 된다는 고기와 밀가루와 카페인 섭취를 제한하는 것은 내 몸을 장기적으로 보호하는 한 방책이 될 수 있다. 문제는 그동안 내가 육식과 밀가루음식을 너무나 즐겼다는데 있다. 밀가루로 만든 음식은 얼마나 맛있는가? 튀기든 굽든 찌든, 과자든 빵이든 케이크든 그 달콤함과 빠른 포만감에는 빠져들 수밖에 없다. 게다가 달콤한 케이크와 함께 먹는 카페인 음료는 얼마나 잘 어울리는가? 체질식을 하느라 며칠간 커피를 끊었다가, 오랜만에 마신 아메리카노의 향미는 또 얼마나 즐겁던가. 체질식에 포함된 음식이 너무 맛이 없어서 고민하다가 체질에 맞는 식재료로 맛있게 조리할 수 있는 방법을 블로그를 통하여 유심히 보고 배웠다.
그런데, 맛없는 체질식 탓을 하고 있던 나에게 실제로 굶주리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여러가지 감정을 불러 일으켰다. 어슐러 르 귄의 단편소설, <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이 있다. 그 이야기에는 괴로움에 시달리는 한 아이가 나온다. 그 아이 덕분에 오멜라스의 다른 사람들은 평화와 행복을 영위한다. 오멜라스의 사람들은 괴로운 아이를 알지만 구할 수 없는 설정이다. 그리고 일부의 사람들이 그 괴로운 아이의 반대급부로 얻은 행복을 구차히 여기고, 오멜라스를 떠나는 이야기이다. 가끔 텔레비전을 틀면 굶주리는 아프리카의 아이들의 얼굴이 비춰진다. 그 얼굴을 보기가 힘들어서 다른 채널로 돌리거나, 핸드폰에 손가락을 움직여서 얼마간 후원하기도 하고, 어쩌다가 목돈이 생기면 그 중에 얼마를 후원하기도 하지만, 사회구조의 문제로 가난하게 지내는 아이들의 문제는 그런 식으로 쉽게 해결될 것 같지 않다.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의 장 지글러는 세계인, 특히 북반구의 넘치는 먹거리 속에 사는 사람들에게 남반구의 가난한 나라들의 민낯을 여지없이 드러낸다. 사실 부끄러워 할 사람은 굶주리는 사람이 아니라, 넘치는 식량을 너무도 당연하게 여기는 사람들과 일그러진 식량 분배를 안일하게 바라보는 세계의 7명 중의 6명일 것이다. 7명 중의 6명에 속한 것(굶주리지 않는 사람들)이 나의 선택이 아니고, 어쩌다가 나는 굶주리지 않는 나라의 풍족한 시대를 타고난 것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태어나 보니, 소말리아의 내전 한가운데에 있을 수도 있었고, 나의 아이에게 먹일 식량이나 내가 마실 물이 없었을 수도 있는 일이다. 우리나라도 굶주림을 벗어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한국전쟁 전후에 우리도 먹을 것이 없어서 깡통을 들고 다니는 아이들이 있는 나라였으니… 멀리 볼 것도 없다. 우리 이웃 중에도 당장의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이들과 희망조차 바라볼 수 없는 터널에 갖힌 이들도 있으니 말이다.
오랫동안 동거하는 아토피 때문에 디톡스의 일환으로 체질식을 하면서 여러가지 생각이 든다. 이때 독서모임에서 선정된 책이 장 지글러의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이니 생각을 아니할 수 없다. 당장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무력감에 시달리기 전에, 이 책을 선전이라도 하고 다니고 싶다. 누군가는 이 책을 보고, 더 나은 생각을 떠올릴 수도 있고, 세계의 가난을 자꾸만 알리고 언급되도록 하는 것이 해결책을 찾기 위한 첫번째 발걸음이 되어 줄 수 있으니 말이다.
* 표지 사진: Unsplash의Louis Hanse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