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부 건강을 위한 디톡스
며칠 전 오후, 집에 있는데 채소 생각이 간절했다. 채소와 과일을 꺼내 먹든지, 몇 가지 채소와 과일을 믹서기에 갈아서 스무디를 마시든지 하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었다. 집에 있는 양배추와 키위를 꺼내어 스무디를 만들어 마시고 나니 해갈이 되어 만족스러워졌다.
채소를 찾는 나 자신에 대해서 놀랐다. 커피가 당긴다든가 달콤한 케이크 한 조각이 고픈 것이 아니라 채소과일 스무디, 그것도 설탕 한 스푼 첨가되지 않은 양배추와 키위만 섞어 갈아낸 담담한 음료가 먹고 싶어 진 것은 나로서는 놀라운 일이다. 딱 석 달 전만 해도 커피 한 잔을 마시지 않고 하루가 지나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밖에서 넉넉한 사이즈의 커피를 마시지 않으면 집에 있는 믹스커피를 마시거나 인스턴트커피에 우유를 부어서 라테를 만들어 마시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집에 떨어지지 않게 비치해 두는 쿠키는 커피를 마실 때마다 등장했다. 이러한 음식이 내 몸에 좋을지 아닐지는 크게 생각하지 않았다. 커피는 그래봐야 원두 한 줌도 안 되는 양이고, 쿠키도 해봐야 고작 서너 개, 네댓 개 밖에 안 되는 양인데 무슨 큰 문제를 일으킬까 싶었다. 그리고 문제를 떠올리기 전에 커피와 함께 먹는 디저트는 그 맛으로 인해 순삭(순간적으로 사라져 버림)이니 문제를 생각할 틈도 없었다.
진짜 문제는 어쩌다 한 번 마신 커피와, 그에 곁들인 달고 고소한 쿠키 몇 개가 아니었다. 목마를 때마다 아이스커피를 마시고, 집중이 잘 안 되거나 손과 입이 심심할 때마다 몇 개씩 꺼내 먹는 쿠키의 양이 만만치 않은 데다가 각종 인스턴트식품을 가끔씩이라고 안심하면서 먹은 것이 쌓이니 엄청난 양이 되고 결국 피부의 문제를 일으키게 되었던 거다. 음식은 명백히 독은 아니므로, 몸에 맞지 않는 음식이나 불량식품을 한 두 번 먹는다고 큰일이 나지는 않는다. 다만 미량씩 쌓이는 나쁜 물질이 몸에서 해독이 미처 되기도 전에 먹는 양이 점점 많아지면서 몸의 문제는 조금씩 드러난다. 나의 경우는 몸의 가장 약한 부분이 피부였던지 피부에서 문제가 발생한 것이고, 개인마다 가장 약한 부분이 다를 테니 드러나는 부분은 달라질 거다.
피부의 문제가 삐뽀삐뽀 발생한 이후로 ‘조금이니까 괜찮아, 가끔이니까 괜찮아.’라고 위안을 삼으면서 먹던 온갖 인스턴트식품과 밀가루 음식을 끊고 나서 주로 먹기 시작한 음식이 채소와 과일이고, 여러 가지 채소와 과일을 섞어서 갈아낸 스무디다.
어느 날 귀가하고 과일과 채소로 만든 스무디가 너무나 간절하여 양배추와 키위를 갈아서 급히 만든 스무디를 한 잔 먹고 나서야 드디어 만족한 기분이 드는 내가 낯설면서도 감사하다. 20년 간 마시던 원두커피를 끊은 것도, 40년간 먹던 과자를 먹기 중단한 것도 신기한데, 좋다니 억지로 먹던 채소와 과일이 맛있고 당기게 되었으니 내가 스스로 얼마나 신기하고 고마운지 모르겠다.
수십 년간 인공 감미료에 길들여진 입맛이어도 몇 달간 채소와 과일로 정직한 입맛을 일깨울 수 있고, 그러고 나면 하루만 채소와 과일을 적게 먹어도 몸에서 건강한 음식을 찾는다. 갑자기 도져 버린 피부의 문제로 시작한 디톡스로 이런 경험을 하게 되다니, 뭐든지 다 나쁜 점만 있는 건 아닌 게 확실하다.
*표지 사진: Unsplash의Jugosloc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