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미소리 Dec 13. 2023

말라비틀어진 귤로 잼 만들기

존재하는 것들에 대한 예의

말라비틀어진 귤로 잼 만들기

귤을 한 상자씩 사면 금세 먹어버릴 때도 있지만, 어떤 때는 식탁 위에서 뒹굴다가 결국은 시들시들해지고, 시든 귤은 더 먹지 않으니 완전히 말라비틀어져 탱자처럼 되어버린다. 식탁 위의 말라비틀어진 귤 한 바구니가 자꾸만 눈에 들어는 오는데, 다 먹을 수 있는 양이 아니다. 몇 개라도 먹으려고 귤껍질을 벗기다 보니 가족들이 왜 귤을 안 먹었는지 이해가 된다. 껍질이 과육에 달라붙어서 벗겨지지를 않으니 안 먹었다기보다 못 먹었겠다. 혼자서 겨우 한 두 개 먹다가는 귤잼을 만들었다.


인터넷 검색으로 귤잼 만드는 방법을 몇 가지 찾아보고, 그중에서 가장 쉬운 방법을 선택했다. 일단 말라비틀어진 귤을 잘 씻어서 귤 꼭지만 따서 버린다. 유기농 귤이니 껍질째 갈아서 잼을 만들어도 된다. 게다가 껍질을 벗길 수도 없으니 껍질까지 이용하기로 했다. 탱자처럼 딱딱해진 귤을 대강 두어 조각으로 자른 뒤에 믹서기에 넣어 갈았다. 껍질까지 잘 갈렸다. 갈아 둔 귤에 설탕을 섞어서 냄비에서 끓이면 귤잼 완성이다. 설탕은 귤의 절반 정도의 양만 넣고, 처음에는 센 불로 끓이다가, 끓어오르기 시작하면서 가장 약한 불에서 걸쭉한 농도가 될 때까지 간간이 뒤적여 주면서 끓였다.


탱자처럼 마른 귤로 껍질째 만든 귤잼


완성된 귤잼이 잼과 마멀레이드의 중간 정도의 맛인데, 탱자처럼 딱딱해진 귤껍질은 한약재로 쓰이는 진피처럼 향이 강하게 올라온다. 그리하여 귤 과육의 새콤한 맛에 귤껍질의 씁쓰레한 맛, 그리고 설탕의 단맛까지 섞여서 훌륭한 맛의 조합이 되었다. 오히려 말라비틀어진 귤껍질의 이물감이 완전히 가시지 않아서 식감마저 훌륭하다. 이렇게 만들어진 귤잼은 아이들이 빵에도 발라먹고(한동안은 딸기잼을 사지 않아도 되겠다), 샐러드에 올려도 드레싱의 역할을 톡톡히 한다. 채식에 가까운 식단을 유지하면서 샐러드를 거의 매일 먹는데, 처음에는 샐러드에 드레싱을 꼭 뿌렸다(채소 맛으로 먹는 건지, 드레싱 맛으로 먹는 건지?). 그러다 채소를 가까이하면서부터는 별도의 드레싱이 없어도 재료 본연의 맛만으로 괜찮지만, 채소에 곁들일 과일이 마땅히 없을 때나, 샐러드 도시락을 쌀 때에 귤잼 두어 숟가락을 올리면 구색이 맞다.


바나나가 남아도는 때가 있다. 바나나 반 송이가 집에 있는데, 바나나 한 송이가 더 들어오면, 바나나는 처치곤란의 지경에 이른다. 이런 바나나를 어찌할까 하다가 바나나 효소를 만들까 생각했으나, 우리 집에 효소를 즐겨 먹는 사람은 없으니 바나나잼을 만들기로 했다. 바나나잼은 정말 쉽다. 잘 익은(혹은 너무 익어서 물러지기 일보 직전인) 바나나의 껍질을 벗기고 과육을 손으로 으깬다. 바나나 과육은 손으로도 쉽게 으깨진다. 거기에 설탕을 섞어서 뭉근하게 끓인다. 바나나는 단맛이 강하니까 설탕은 바나나의 반 정도만 넣고, 익은 바나나 특유의 향이 싫으면 계피나 레몬즙을 추가한다. 바나나잼은 오랫동안 끓일 필요도 없고 어느 정도 점성이 생겼다 싶으면 다 된 건데, 10분 정도 끓이니 충분하다. 다 된 바나나잼은 빵에 바르거나 샐러드 소스로 이용하고, 푸딩처럼 그냥 먹어도 맛있다(한 번은 바나나잼을 너무 잠깐 끓였더니 정말 푸딩이 되어버렸다).


너무 익은 바나나에 마스코바도 설탕으로 만든 바나나잼


버려질뻔한 천덕꾸러기 식재료에 조금의 변화를 보태주면, 맛있는 음식으로 변한다. 새 김장김치를 넣으려고 묵은 김장김치를 정리하려고 보니 아깝다. 특히 작년 백김치는 잘 익어서 발효된 냄새가 기가 막히다. 잘 숙성한 김치의 냄새를 맡으니 버릴 수 없어서, 삼삼한 백김치의 국물을 물김치처럼 먹고 있다. 그 시원하고 깊은 맛에, 고구마를 먹을 때에도 없으면 섭섭할 지경이다. 그리고 갓김치를 삼삼하게 담가서 묵은 백김치의 국물을 부어 두니 아삭아삭 맛있는 갓물김치가 되어있다. 버릴 것 중에, 마음을 끌어당기는 것을 버리지 않고 작은 변화를 주었더니, 새로운 것보다 더 새로운 먹거리가 되었다.


* 표지 사진: UnsplashElena Leya

매거진의 이전글 덜어내서 풍성한 김밥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