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미소리 Mar 27. 2024

감수성의 공격, 인간 실격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을 읽었다. 첫 번째 읽었을 때에는 이 책의 주인공이 느끼는 처절한 실의와 자기부정이 그저 슬펐다. 슬픈 책이 많지만 이런 방식으로 슬픈 책, 어떤 사건이나 상황이 힘든 것이 아니라 인간 존재에 대한 혐오감에서 오는 슬픔은 처음이었다. 그렇게 충격적인 책이라 두 번 다시 읽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단 한 번 읽어도 작가가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그리고 그 심연이 얼마나 깊은지 느껴졌기 때문에 그렇게 처절한 책을 또다시 읽을 생각은 없었다.



그러다가 이번에 운명처럼 이 책을 다시 만났다. 그리고 이번에 인간실격은 다른 면모를 드러내며 내게 다가왔다. 다자이 오사무가 얼마나 훌륭한 예술가가 되고자 했는지가 보였다. 헤르만 헤세처럼, 프란츠 카프카처럼, 다자이 오사무도 깊은 감수성을 가진 예술가이고 그래서 삶의 작은 편린조차 커다란 생채기가 된 것이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글은 지금껏 놀라움마저 지닌 채 남아 있다. 이들은 헤세를 제외하면 살아생전에 부와 명예를 누리지 못했지만, 자신의 예민한 감수성이 이렇게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오랫동안 파장을 일으킬 줄 알았더라면 조금 더 자신감 있게 살았을 것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만일 그들이 평온한 삶을 살았더라면 그들의 책에서 우리는 떨림을 느끼지는 못했을 것이다. 헤세만은 오래 살았다. 헤세도 다자이 오사무처럼 젊은 날에는 자살기도를 했고, 한 여인에게 정착하지 못하고 반복되는 결혼에 실패했고, 정신적인 어려움을 겪었지만, 오랫동안 살아남아 장수했고, 노인이 되어서는 자신의 인생을 긍정하는 사람만의 온화한 표정을 짓는다. 헤세가 정원에서 찍은 노년의 사진을 보면, 행복과 따뜻함으로 충만하다. 오랜 삶의 무게가 그를 짓누르는 대신 삶의 풍요로움을 경험하고 자아를 발현하며, 자연에서 위로를 받는 생활이 그에게 안정감을 주었을지도 모른다.


다자이 오사무와 동시대의 유명 작가인 미시마 유키오는 다자이가 맨손체조라도 좀 했더라도 우울증에서 벗어났을 거라고 이야기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자이 오사무가 미시마 유키오의 말대로 자신의 신체를 좀 단련했더라면 인간실격에서 만나볼 수 있는 요조의 삶과는 다른 삶을 살았을 거라는 데에는 동의한다. 하지만 그가 유키오처럼 열심히 운동을 하고 건강한 몸에 건전한 사고를 했더라면 우리는 결코 인간실격과 같은 책을 만나 볼 수 없었을 것이다. 유키오는 자신의 말대로 운동으로 심신을 단련했지만, 결국 할복자살로 일찍 생을 마감했으니 그것 또한 헛헛한 삶의 단면을 보여준다.


다자이 오사무의 자전적 소설인 <인간실격>을 보면서, 감수성이 예민한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는지, 조금이나마 덜 고통받으며, 더 많이 자아실현을 하며 살 수 있는지 고민하게 되는 날이다.



* 표지 사진: Unsplash의 Aarón Blanco Tejedor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