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가 달리기로 변할 때

함께여서 바뀌는 것들

by 소미소리

걷기 운동을 시작한 지 10년이 넘어간다. 시작은 거창하지 않았다. 우연히 타국에서 생활을 하게 되었고, 그곳의 온도와 습도가 걷기에 딱 좋고, 마침 대중교통도 배차 간격이 상당히 길었기 때문에, 웬만한 거리는 버스를 이용하는 것보다 걷는 것이 편했다. 말이 잘 통하지 않는 곳에서 어린아이 둘과 집에서 씨름하다가 남편이 귀가하면, 남편에게 바통을 터치하듯이 아이들을 맡겨두고 어학원으로 향했다. 어학원까지의 거리가 버스를 타도 30분이 넘게 걸리고 걸어가도 40분이면 갈만한 거리였다. 당연히 나의 선택은 걷기였다. 속보로 걸으면 버스보다도 빨리 어학원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리고 타지의 거리마다 느껴지는 낯선 정감은 덤이었다. 나이가 어린아이들을 하루 종일 먹이고 입히고 씻기고 동네 공원과 박물관으로 데리고 다니다가, 하루에 몇 시간 내게 허용된 시간에 걷기를 시작한 것은 나와의 약속을 넘어 선물이었다.


대학에 부설된 어학원은 좋은 위치에 자리하고 있었다. 작은 도시의 중심부를 지나고 멋들어진 개인 맨션들의 정원을 보고, 미술관과 과학관의 정교한 건축물을 지나서 반듯하고 넓은 도로를 뛰는 속도와 걷는 속도의 중간쯤 되는 빠른 걸음으로 지나다 보면 눈이 즐거워졌다. 교회도 몇 개 지나고, 무료로 아이들을 돌보아 주고 성경공부를 해 주던 현지인 선생님 댁도 지나고, 물끄러미 그네가 놓인 아름다운 정원들을 숱하게 지나쳤다. 어느 날은 나와 비슷한 정도로 빠르게 걷는 인도인과 경쟁하듯이 걷기도 했고, 눈이 내리는 겨울날 반바지 차림으로 달리는 젊은이들을 만나기도 했다. 그리고 더운 여름날 신이 나서 걷다 보면, (밖에서 보기에는 안쓰러웠던지) 지나는 차들이 멈춰서 태워주겠다는 따뜻한 말을 건네기도 했다. 물론 나에게는 걷는 시간이 온통 즐거웠기 때문에, 자동차에 타는 것은 할 일이 아니었다.



걷는 재미를 붙이고 나서 귀국했을 때, 우리 동네의 뒷산인 북한산과 앞 개천인 정릉천이 달리 보였다. 북한산 자락길과 둘레길, 조금만 걸어 나가면 만날 수 있는 정릉천, 그리고 내친김에 걸으면 성북천을 지나 한강까지도 갈 수 있다. 보통은 발걸음이 닿는 대로 자락길 산책을 주로 한다. 엄청난 운동량이 되거나, 많은 시간을 쏟아붓거나, 나의 한계를 넘어서는 정도는 아니다. 그저 틈틈이 시간 나는 대로 불쑥 일어나서 뒷산에 가면, 어느 계절, 어느 날이든, 산은 다정한 친구가 되어 반겨준다. 봄에는 개구리 우는 소리로 환영하며, 아기 손가락처럼 여린 연둣빛 나무 이파리들이 손을 살랑살랑 흔든다. 여름에는 풀벌레 소리가 귀청에 울리고, 뜨거운 볕에 두껍고 거칠어진 나뭇잎이 울창하게 시원한 그늘을 만들고, 작은 바람도 흔들거리며 시원한 바람을 선사해 준다. 뜨거운 사랑과도 같은 여름을 지나 선선한 가을이 되면, 그야말로 신세계다. 단풍이 빨갛고 노랗게 든 산길을 걷다 보면, 매일 미술관에 와 있는 느낌이다. 그러면 겨울은 어떤가? 겨울은 겨울대로 운치가 있다. 북한산에 즐비한 잣나무와 소나무, 푸른 사철나무 위에 흰 눈이 뽀얗게 쌓여 있는 모습은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 없을 정도이다. 그리고 장마철에도 산은 산이다. 비가 줄기차게 내리는 날도 우산을 받치고 자락길을 걸으면 이색적인 재미가 있다. 장마철이 되면, 자락길에 한 번 나와 보시라. 도저히 사람 흔적도 없을 것 같은, 비가 보슬보슬 내리는 끈적끈적한 날도 가뿐한 발걸음으로 신나게 산책을 즐기는 사람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진짜 산책은 비 오는 날의 자락길이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자락길의 채도가 온통 톤업되어 짙고 맑아진 산천을 ‘후드득’ 빗물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누려 보라. 산이 이렇게 아름답고 다정할진대, 어찌 걷기를 멈출 수 있으랴. 그리하여 꾸준히 걷기로 한 나와의 약속은 여전히 유효한 선물이다.



고요하게 끊임없이 걷는 일은 즐거운 행위다. 매일 사유하듯이 걷는 평온함이 나를 나답게 해 주지만, 이 행위가 질병 없는 건강한 삶을 보장하거나 마음의 평화를 제공해 주지 못하고, 나의 육체의 한계를 뛰어넘게 하지도 못한다. 늘 걷던 어느 날, 함께 책을 읽고 나누는 독서모임 회원들과 마라톤을 하기로 덜컥 약속을 했다. 고맙게도 성북구에서 기획한 독서토론 심화과정에서 인연을 맺은 회원들과 계속 독서모임을 하고 있는데, 최근에 읽은 책이 달리기에 대한 책이었고 함께 달려 보기로 뜻을 모았다. 42.195킬로미터를 정주행 하려는 의도는 아니고 조금씩이나마 매일 얼마라도 걷든지 뛰든지 움직여 보자는 약속이었다. 물론 나는 걷는 사람이니 매일 걷고 있었고 앞으로도 계속 걸을 생각이었다. 달리기는 이미 몇 번 시도해 본 적이 있는데, 숨만 차고 힘들고 땀이 나고 고통스러우니 나와는 별로 맞지 않는 운동이라고 이미 단정을 지었던 터였다. 그러니 마라톤 연습을 할 때에도 빠르게 걸을 뿐, 거의 달리지 않았다. 그리고 결전의 날, 드디어 모여서 함께 달리는 날이 왔다. 마라톤에 참가하면서도 달리려는 생각은 없었다. 걸어서라도 목표거리를 완주하려는 의도였고, 늘 걷는 사람이니 5킬로든 10킬로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런데 마라톤 시작점에서 모든 것이 달라져 버렸다. 변화는 갑자기 예기치 않게 찾아온다. 모두가 달리는 곳에서 혼자만 걷는 것은 대단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모두가 달리는데 혼자만 걷기는, 연어가 물살의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는 일보다 어려워서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달리는 이들 사이에서 힘찬 기운에 이끌려 나도 달리기 시작했다. 그러니, 마라톤 연습도 없이 마라톤에 참가한 꼴이 되었다. 걸어서 완주하겠다는 계획과 상관없이 내 몸은 모두와 함께 뛰고 있었다. 물론 완벽하게 달리지는 못했지만, 걷기 운동을 시작한 이후로 이렇게 오래 달린 것은 처음이었다.


사진: Unsplash의Mārtiņš Zemlickis


달린 거리를 측정하면 자랑할만한 수준은 아니지만, 내가 달릴 수 있고, 모두와 함께하면 누구라도 달릴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중년이 되면서 나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시도를 하지 않게 되던 참이었다. 걷기에 익숙하니까 걷고, 내 취향에 맞는 소설과 에세이를 읽어왔으니까 계속 같은 장르의 책만 읽고, 늘 만나던 사람들, 늘 다니던 산책로가 편하니까 인간관계를 확장하려거나 새로운 여정을 떠나려는 생각은 절로 사그라 들던 차였다. 그러다가, 함께 하는 마라톤이 걷기의 한계를 뛰어넘게 했다. 걷던 사람도 달릴 수 있고 소설만 읽던 사람도 과학교양서를 읽을 수 있고, 늘 만나던 인간관계를 뛰어넘고, 편안한 산책길에서 이탈하여 새로운 곳을 달릴 수 있다.


마라톤 다음 날, 다리가 온통 뻐근하다. 예상하지 못한 일이다. 빨리 달린 것도 아닌데, 정직한 몸은 고통을 호소한다. 운동을 제대로 한 사람처럼 한 발 내딛을 때마다 다리 근육이 뭉친다. 오늘은 경사가 있는 둘레길 대신 평평한 작은 공원으로 산책을 나섰다. 뭉친 다리로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고통이 말해준다. ‘한계를 넘는 것은 이렇게 갑자기 찾아온다고, 나의 한계를 넘게 하는 것은 우리의 약속에서 시작하였다고…’


* 표지 사진 : Unsplash의 Cecep Rahm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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