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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미소리 Jul 14. 2024

상추와 삼겹살, 메인 반찬은?


자연식물식 5일 차다. 존 맥두걸의 <어느 채식의사의 고백>을 읽고 드문드문 자연식물식, 즉 채소와 과일, 통곡물 위주의 식사를 하다가, 지금은 30일을 작정하고 자연식물식을 실천하고 있다. 주말이 되니 식구들 식사와 내가 먹을 음식을 함께 차려야 한다. 식구들도 나처럼 자연식물식을 하면 좋겠지만, 쉽지 않다. 나도 어릴 때 아버지가 그렇게 불량식품을 사 먹지 말라고 애써 말씀하셔도 귀에 하나도 안 들어왔다. 아무리 강하게 말씀하셔도 내가 동의하지 않는 이상 설득이 무슨 소용이랴? 자식 건강을 생각하는 아버지의 기나긴 웅변도 메아리에 그치던 시절이었다. 그러니 불량식품까지도 아니고 일반식을 가족들에게 허용하지 않을 수는 없다.



점심에는 삼겹살과 오겹살을 구웠다. 내가 상차림을 하고 남편이 구웠는데, 고기는 나보다 남편이 잘 굽는다. 음식에도 마음이 통하는 것인지, 좋아하는 음식은 대충 해도 맛있고, 싫어하는 음식은 공을 들여야만 간신히 먹을만하게 만들어진다. 고기에 진심인 남편은 오겹살을 신중하게 굽더니 딱 맞게 익혀서 접시에 담아낸다. 나는 그동안 알이 작은 검정콩(쥐눈이콩)을 잔뜩 올린 밥을 하고, 고기에 곁들일 상추와 깻잎을 씻고 아삭이고추를 꺼냈다. 마침 겉절이가 똑 떨어져서, 급히 양파무침을 했다. 양파무침은 금세 뚝딱 만들 수 있다. 양파를 손질해서 길쭉하게 썰고, 파 한 뿌리의 배를 가르고 적당한 길이로 자른 다음, 간장과 멸치액젓, 식초, 설탕, 고춧가루를 각각 한 큰 술 정도 넣고 무치면 끝이다. 양파와 파 자체의 향과 맛이 강하기 때문에 양념이 좀 부족하게 들어가도 맛이 없을 수가 없다. 쌈장에 생들기름을 섞어서 접시에 담았다.



식탁에 둘러앉아서 보니, 내가 먹을 음식이 많다. 물론 가족들에게는 오겹살과 삼겹살 구이가 메인 반찬이겠지만, 자연식물식을 하는 입장에서는 메인인 고기만 빼면 모두가 훌륭한 반찬이다. 식구들에게는 콩이 적은 쪽의 밥을 퍼주고 내 밥은 쥐눈이콩을 잔뜩 섞어 담았다. 상추와 깻잎을 겹쳐서 밥을 조금 올리고, 쌈장을 더해서 먹으니 향기롭다. 상추 없이 깻잎만 싸 먹기도 하고 깻잎은 빼고 상추만 싸 먹기도 했다. 고기가 빠진 쌈은 깻잎과 상추의 향미가 배가된다. 콩이 밥만큼 많은 밥을 먹었다. 저녁에는 짜00티 라면을 먹고 싶다는 주문이 들어왔다. 블랙 표지가 붙은 짜00티다. 자연식물식을 시작하기 전에는 맛있게 먹던 라면 종류다. 국물 라면보다는 짜장라면을 훨씬 맛있게 먹었는데, 면을 끓일 때, 양파 하나를 길게 잘라서 추가한 짜장라면을 좋아했다. 주말, 가족들에게 식사를 차려주면서 과거에 좋아했던 음식들이 자꾸만 소환된다. 짜장라면을 끓이고, 낮에 남은 삼겹살에 통마늘과 양파를 넣고 볶았다. 남은 돼지고기에는 고추장 양념이 어울린다. 계량할 것도 없이, 대충 한 큰 술의 고추장과 설탕, 물 약간을 넣고 자글자글 국물이 졸아들 때까지 볶으면 그럴듯한 두루치기가 된다. 짜장라면에 삼겹살 볶음을 곁들여서 그릇 세 군데에 나누어 담았다. 자연식물식을 하는 나를 위한 반찬이 필요해서 가지와 양파를 볶았다. 간장과 설탕으로만 담백하게 간을 하고, 기름은 적게 넣고 부족한 수분은 물을 더해서 볶았다. 볶은 것과 데친 것은 중간쯤 되는 비주얼인데 가지가 제철이라 맛이 좋다.



식사 후에 믹스커피를 예쁜 잔에 담아서 맛있게 마시는 남편을 보니 불현듯 믹스커피가 당긴다. 한참 동안 원두커피조차도 마시고 싶지 않았는데, 내가 가장 좋아하는 나비 날개 모양 손잡이가 달린 컵에 담긴 믹스커피의 향을 맡으니 믹스커피 한 잔이 부럽다. 이럴 땐, 과일을 꺼내는 게 상책이다. 요 며칠 연거푸 장을 봤더니 냉장고에 과일이 종류대로 가득하다. 시간도 여유로우니 과일을 얌전하게 잘라서 큰 접시에 예쁘게 담았다. 커피와 라면 대신 찐 고구마와 찐 옥수수를 먹고, 제철 과일을 먹었다. 이제는 다른 세상에 계신 아버지가 지금의 나를 보시면 뭐라고 하실까? 이제라도 건강한 음식을 골라 먹으니 칭찬하실 것 같다. 소화력도 좋고 잔병치레도 거의 하지 않는 건강한 체질이라 뭐든 입에 맞는 음식을 양껏 먹으며 살아왔는데, 아토피 때문에, 하지 않던 식단조절을 하고 있으니 나조차 신기할 따름이다. 자연식물식 5일 차인 오늘, 몸무게나 피부 상태에 큰 변화는 없는데, 눈의 이물감과 갈증은 거의 줄어든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30일을 작정한 자연식물식이 끝나는 날은 어떤 변화가 있을까? 좋은 변화가 수두룩할 수도 있고, 몇 가지 안 될 수도 있고, 실망스러운 변화일 수도 있지만, 지금의 실천 자체의 의미에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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