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미소리 Jul 13. 2024

카페라테 대신 바나나

자연식물식 4일째다. 내가 고기를 안 먹는다고 가족들까지 채소만 먹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날이 더우니 식구들에게 백숙을 해주었다. 냉동실에 있는 닭 두 마리를 해동해서 끓는 물에 10분 정도 데쳐내고 깨끗하게 씻었다. 씻어낸 닭을 다시 끓는 물에 40분 동안 더 삶았다. 냉동실에 처박혀 있던 양배추 심지도 넣고(자투리 채소를 넣으면 국물맛아 좋아진다), 통마늘도 한 줌 넣고, 도라지액도 한 봉지 넣었다. 사실 홍삼액을 넣으려고 찬장을 보았더니, 홍삼액은 없고 도라지액과 쌍화탕이 있다. 둘 중에 무얼 넣을까 하다가, 유통기한이 더 짧게 남은 도라지액을 사용했다. 아무거나 한약 냄새나는 것을 한 봉지 넣으면 닭백숙이 그럴 듯 해진다. 닭백숙에 곁들일 밥은 찹쌀과 맵쌀을 반반 섞은 뒤에 쥐눈이 콩을 잔뜩 올려서 지었다.



식구들에게 닭백숙을 퍼 주고, 나는 쥐눈이 콩이 몰려 있는 쪽의 밥을 먹었다. 닭백숙보다 윤기 나는 찰밥이 더 맛있다. 고기를 좋아했던 때가 언제였던지 생각나지 않을 만큼 채식을 시작하고 나서는 고기가 전혀 당기지 않는다. 가족들 반찬으로 고기요리를 할 때에 간 보는 것도 부담스러울 정도다. 백숙은 간을 하지 않고 식탁에 소금과 후추를 올려주면 된다. 기름기 자글자글한 국물 맛을 보지 않아도 된다. 내 반찬으로 채소볶음이라도 좀 할까 하다가 냉장고에 있는 반찬을 꺼냈다. 가족들이 함께 먹을 음식은 쉽게 만드는데, 나 혼자 먹을 반찬에는 쉽게 손이 가지 않는다. 어제 남은 상추에 아삭이 고추를 더하고 열무김치와 잘 익은 물김치를 꺼냈다. 쌈장에 향이 좋은 생들기름까지 곁들이니 반찬으로 충분하다. 그리하여 한 상에 닭백숙과 채소반찬을 차려두고 각자 먹고 싶은 음식을 즐겼다.



올해 들어 처음으로 찰옥수수를 먹었다. 초당옥수수가 한 철 인기가 많지만 쫀득쫀득한 찰옥수수가 역시나 맛있다. 끝부분은 가위로 싹둑 잘라내 버리고(끝 쪽에 이물질이 많이 붙어있다) 겉껍질은 벗긴 뒤에 속껍질과 옥수수수염만 남겨서 소금을 조금 넣고 센 불에 30분 정도 찌니 잘 익었다. 속껍질은 익고 나서 벗기려면 뜨거우니 찌기 전에 미리 벗겨서 냄비 아래쪽에 옥수수수염과 함께 깔아줬다. 그리고 소금을 넣으면서 마스코바도 설탕도 조금 넣었는데 단맛은 없었고 구수한 맛만 강했다. 며칠 전에 일본에서 먹은 옥수수도 모두 초당옥수수처럼 서걱거리고 엄청 단맛이었는데, 강원도 찰옥수수에 입맛이 길들여져서인지 여전히 찰옥수수가 더 좋다. 어릴 때 강원도에 놀러 가면 한 봉지 가득한 옥수수가 천 원이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 이모가 사주셨던 옥수수가 세상에서 가장 맛있었다. 하긴, 그 시절 여름방학에 강원도에서 있었던 일이라면 나쁜 것이 하나도 없었다. 이가 시릴 만큼 차가웠던 산속 개울물과 개울물 속의 가재, 산에 가는 길에 빨갛게 익어 있던 산딸기의 향과 맛. 그리고 아침식사로 먹은 양념통닭까지 모든 것이 그림 같은 시간이었다.



자연식물식을 하면 밖에서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제한된다. 특히 카페에 가면 마실만한 음료가 별로 없다. 그래도 다행히 스00스를 비롯해서 몇몇 카페에서는 생과일을 판매한다. 그러다 보니 요즘에는 카페에서 바나나를 자주 먹고 있다. 바나나의 농약 때문에 안 먹는 이들도 많은데, 그저 농림부에서 알아서 잘 관리했거니 믿고 먹는 편이다. 원두커피를 달고 살던 때가 오래되지 않았는데, 커피를 안 마시고 보니 커피가 없어도 생활에 전혀 지장이 없다. 카페에 가서 마땅한 생과일주스나 과일이 없으면 더러 커피를 마시기도 하지만, 커피를 일부러 주문해서 마시는 일도 없고, 커피가 없다고 생활에 지장도 없다. 도저히 끊을 수 없을 것 같았던 카페라테를 끊었다는 사실에 스스로도 놀랍다. 우유의 고소한 맛과 커피의 씁쓸한 맛이 어우러진 라테를 삶의 소확행으로 여겼고, 누군가가 우유만 먹지 않아도 몸의 염증이 덜 발생한다고 했을 때도 커피만은 끊지 않았었는데, 식이요법을 하면서 커피와 유제품을 끊었고, 조금씩 좋은 반응이 나타나고 있다. 일 년 넘게 눈의 이물감으로 고생했고, 오랫동안 안과를 다녔지만 쉽게 낫지 않더니 채식을 하고, 특히 자연식물식을 하고 얼마 안 돼서 눈의 이물감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안과에서 처방받은 알레르기 약과 항생제를 몇 달이나 복용해도 안 돼서 결국 포기했었는데 음식이 바뀌니 안과 질환이 사라졌다.



어떤 때에는 직감이 진실을 꿰뚫어 보기도 한다. 라테를 마시면서 ‘절대 포기할 수 없지만 라테를 포기하면 몸이 가벼워질 텐데.’ 이런 생각을 했었고, 휴직을 하면서 ‘일을 쉬면서는 디톡스의 일환으로 하루에 한 끼는 양배추나 브로콜리를 먹어야지.’라고 다짐했었는데, 그 다짐을 진작 지켰으면 어땠을까 싶다. 직관이 가르쳐준 채식을 실천하지 않았고, 휴직한 뒤에도 열심히 과식에 기름지고 달콤한 음식을 달고 살다가, 몸이 부대끼고 아토피로 고생을 하고 드디어 자연식물식을 하고 있다. 너무 늦게,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식이요법을 시작했다는 회한은 뒤로 하고, 이제라도 나에게 맞는 건강한 식단을 잘 찾아가고 있으니 이것 또한 감사한 일이라고 되뇌어 본다. 자연식물식 4일 차가 지나고 있다.



*표지 사진: Unsplashcharlesdeluvio              












매거진의 이전글 자연식물식 셋째 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