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득 찬 이삿날의 자연식물식

by 소미소리

이삿날이 말복과 겹쳤다. 가만히 앉아 있어도 땀이 주르륵 흐르는 날씨다. 35도가 넘어가는 날씨에 대부분의 집들이 에어컨을 켜고 있으니 창문을 열고 이사하는 날은 더위를 피할 재간이 없다. 집 안에 온 선풍기와 에어컨을 온통 작동시키면서 이사를 했지만, 어디를 가도 덥다. 연달아 부동산과 여기저기를 왔다 갔다 하며 온몸으로 더위를 겪었다.


자연식물식을 위해서 어제 미리 과일 도시락을 싸두었다. 가족들이 먹을 것까지 생각해서 복숭아 6개, 아오리 1개, 방울토마토 약간을 씻어서 도시락 4개에 나누어 담았다. 점심에 먹을 현미찹쌀밥도 통에 담아 두었다. 점심에도 시간이 많지 않아서 남편과 번갈아 가며 차에 들어가서 에어컨을 켜 두고 과일과 현미찹쌀밥으로 요기를 했다. 자동차에 노래까지 틀어두니 잠시나마 꿀 같은 휴식이다. 이사가 끝나고 남은 과일을 다 꺼내 두고 먹었다. 너무 많다고 생각했는데, 온 가족이 간식으로 먹으니 많지도 않다. 저녁은 언니가 가져다준 카레라이스로 식탁을 차렸다. 소고기 카레여서 고기 부분만 골라내며 먹었는데, 먹다 보니 고기가 조금씩 섞여 들어오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카레도 오랜만이고 소고기도 오랜만인데, 도저히 반찬을 새로 만들 환경이 아니니 감사히 먹었다. 외식할 기력도 없다.


자연식물식 36일째인 오늘의 컨디션은 좋지 못하다. 며칠 동안 잠도 잘 못 자고, 더운 날씨에 분주하게 보냈더니 피부에 발진이 생겼다. 다른 컨디션은 좋지만 자연식물식을 시작한 계기였던 아토피 피부가 일정 부분 악화되었다. 역시나, 유연한 자연식물식보다는 엄격한 자연식물식으로 돌아가야 하는 걸까?


포장이사는 끝났지만, 다 끝난 게 아니다. 자잘한 짐들을 정리해야 한다. 비우고 산다고 해도, 거의 10년 만의 이사라 묵은 짐이 선반과 서랍 켜켜이 쌓여 있었다. 몇 년 동안 꺼내지도 않는 물건들을 만나면 잠시 반갑지만, 결국 어딘가에 다시 숨겨 두어야 한다. 물건을 버리는 건 다이어트만큼이나 어렵지만, 버려야만 정리가 된다. 이사 오기 전에 버리고 왔더라면 정리가 쉬웠을 텐데, 주변에 아직 정리되지 않은 가득 찬 물건을 바라보며 내일은 무엇을 버릴까 고민하는 날이다. 자연식물식 때문에 제거하는 음식이 늘면서, 먹을 수 있는 음식의 본연의 맛을 제대로 알아가는 것처럼, 잘 쓰지 않는 묵은 짐을 치우면, 가지고 있는 물건들을 더 소중히 쓸 수 있을 것이다.


*표지 사진 : Unsplash의 Dovile Ramoskai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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