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식물식 37일째이다. 이사 다음 날이라 물건들이 제자리를 찾기 전이지만, 자연식물식부터 준비했다. 아침부터 복숭아 2개와 아오리 1개를 잘라서 통에 담아뒀다. 아직 도마를 쓸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니 과도와 도시락통 2개를 먼저 씻어서 과일을 대충 잘라서 담았다. 오며 가며 가족들이 몇 개씩 집어 먹으면서 아침 요기를 했고, 나에게는 점심이었다. 이사를 하느라 여기저기 신경을 썼더니 입맛이 전혀 없어서 아침은 건너뛰고, 점심에 제대로 앉아서 과일을 먹었다. 저녁에도 아직 부엌이 정리되지 않아서, 쥐눈이콩을 올린 백미밥에 김과 냉장고에 들어있던 백김치와 양파양배추무침만 꺼내서 식사를 했다. 가족들은 중화요리를 시켜 먹는 바람에 일거리가 줄었다. 평소라면 집밥을 먹이고 싶었겠지만, 오늘은 오히려 배달음식이나마 다행스럽게 느껴질 정도로 바빴다. 남편이 중국요리를 시키지 않았더라면 라면이라도 끓여주려던 터였다.
10년 만의 이사라 짐을 풀다 보니 묵은 짐이 끝도 없이 나온다. 이렇게 많이 숨겨 둔 물건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대부분의 가구는 버리고, 평수를 넓혀오는 거라 물건을 넣을 자리가 없을 거라고 생각지도 못했다. 붙박이 장이 세 군데에 있고, 붙박이 책장도 두 군데나 있는 데다가 베란다에 5단 선반까지 설치했으니 짐 넣을 걱정은 하지 않았다. 더 작은 공간에서도 짐을 잘 두고 살았는데, 이게 무슨 일인가 싶다. 세상에, 그동안 보이지도 않던 물건들이 온통 다 나왔다. 10년의 세월 동안 켜켜이 쌓아두고 숨겨 두고 차곡차곡 퍼즐 맞추듯이 두 겹, 세 겹으로 들어있던 물건들이 어머어마하다. 어제 늦도록 정리했지만 역부족이었고, 오늘도 아침부터 정리에 돌입했다. 먼저 아이들 방을 정리해 주었다. 아이들 방이 정리가 되어야 마음이 편하다. 내방과 서재방은 별로 급하지 않지만, 아이들 방만큼은 정리정돈이 되어있어야 다른 걸 시작할 수가 있다. 붙박이 책장이 있는 아이의 책장에 빼곡히 꽂혀 있던 책들을 무더기로 솎아 냈다. 이사 전에 정리를 했으면 이사업체 직원들이 적어도 재활용장으로 내려 주기라도 했을 텐데, 솎아낸 책을 버리는 게 일이다. 익숙했던 공간에서는 무심코 보아왔던 책들이, 배치가 바뀌니 달라 보인다. 비로소 버릴 물건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첫째 아이의 옷장까지 정리해 주고 나니 안방 차례다. 이사업체에서도 못하고 한 박스 짐을 그냥 내려 두고 갔는데, 이건 내가 보아도 난감하다. 이사업체 직원들이 정리하기는 더 어려웠을 거다. 일단 마음의 평화를 찾고, 짐을 둘러보았다. 완벽하게 계획을 세우고 정리를 시작하면 오늘 안에 시작도 못할 것 같다. 그래서 일단 손이 가는 대로 시작했다. 장기 보관할 물건들, 아이들 어릴 때 작품과 사진, 편지 모음, 아버지의 유품부터 높이 올렸다. 스키복이나 수영복처럼 자주 입지 않는 옷도 가장 위쪽 선반에 넣었다.
철마다 옷을 버리는 편이다. 주기적으로 옷을 의류함에 내놓는데도 불구하고, 모든 옷을 꺼내 놓고 보니 버릴 옷이 셀 수 없이 나온다. 지금이라도 입을 수 있는 옷들을 빼고는 모두 버릴 옷으로 무더기를 쌓았다. 조금 더 살이 빠지면 입으려고 계획했던 옷들도 버렸다. 한참을 버리고 나니 드디어 옷장에 숨통이 트인다. 이사를 하면서 집의 물건이 한번 뒤집히고 나야 버릴 물건이 보이나 보다. 물건을 사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도 않고, 집에 물건이 많은 것을 좋아하는 편도 아닌데, 한집에 너무 오래 살다 보니, 정물처럼 물건들이 여기저기 구석구석에 숨어 있었던 거다. 오랜만에 당근 앱에 들어가서 팔만한 물건을 올렸다. 며칠이 지나면, 팔리든 팔리지 않든 정리를 할 예정이다. 누군가에게 보내 버릴 만한 물건이라면 굳이 가지고 있을 이유도 없다.
꽉 차고도 다 못 들어가던 물건들이 다 들어가고도 농에는 빈칸이 많이 생겼다. 부엌 싱크대마다 들어있던 물건들도 재배열하면서 버릴 물건들을 꺼냈더니 빈칸이 반이나 남았다. 버리고 비우니, 꼭 필요한 물건이 남는다. 그래서 비우는 것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소중한 물건이 눈에 띄게 만드는 행위 같다. 사람 몸도 다이어트를 하면 불필요한 지방과 노폐물이 빠지고 몸이 오히려 건강해지는 것과 비슷하다.
집을 디톡스 하느라 몸을 잘 챙기지 못하고 있다. 자연식물식은 유지하고 있지만, 운동을 하거나 숙면을 취하지 못하고 생활이 흐트러져 버렸다. 그러니 피부가 며칠 만에 거칠어졌다. 완전히 나은 부분은 도지지 않지만, 거의 나았던 부분은 며칠 전에 비해서 훨씬 나빠졌다. 눈의 이물감도 조금 있다. 이제 집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되어가니 다시 질서 잡힌 생활로 돌아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