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신제가치국평천하 修身齊家治國平天下

진정 위대한 사람이란,

by 김경옥

대의를 꿈꾸는 사람들은 무엇을 자신의 가슴에 담고 있을까? 대의를 꿈꾸기 위해서는 작은 것은 그저 버려도 마땅한 것일까? 대체 작고 큰 것은 어떤 것을 기준으로 삼아 나온 결론인 것일까? 누군가에게 어떤 것이 작은 것이고 어떤 것이 큰 것이라면, 그것은 다른 누군가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는 것일까?


나는 자신의 삶의 목표가 어디에 있는가에 따라 그 사람의 위대함이 결정되는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나의 삶의 목표가 나의 부귀영화에 있을 수도 있고, 다른 누군가는 나 뿐만 아니라, 나의 가족이 나의 삶의 목표가 될 수 도 있고, 또 다른 누군가는 자신의 가족을 넘어 나라를 지키고 부유하게 하는 것이 삶의 목표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보다 더 큰 꿈을 꾸는 누군가는 자신의 나라가 아니라 어쩌면 세계 시민이 되어, 세계의 평화와 질서를 유지하고 지키는 것이 그의 꿈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삶의 목표의 크기에 따라 그 사람의 위대함이 정해지는 것이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오늘 그것이 행해지는 방법에 따라서 그 사람의 위대함은 충분히 다르게 평가될 수 있음을 깨닫는다. 꿈과 목표를 크게 설정한다고 해서 그 사람이 위대해 지는 것은 절대 아니라는 것. 삶의 목표가 커짐으로 인해서 그 사람이 위대해 질 수 있다면 그것은 그 사람이 하위에 있는 자신의 공동체를 충분히 지킨 후에야 가능한 것이라는 사실을 이제야 알았다. 그렇지 않음에야, 그가 꿈는 꿈의 크기에 관계없이 그저 찌질한 사람일 뿐이라는 것을.


우리는 어릴때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 에 대해서 배웠다. 수신체가치국평천하란 몸과 마음을 닦아 수양하고 집안을 가지런하게 하며 나라를 다스리고 천하를 평한다는 뜻. 무릇 집안을 가지런하게 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몸과 마음을 닦아 수양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하고, 나라를 다스리기 위해서는 자신의 가정을 돌보는 일이 먼저여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천하를 평할 수 있는 사람이란 자신의 몸과 마음, 가정, 나라를 제대로 돌본 사람이어야만 한다는 것.


하지만 능력이 없이 포부만 큰 사람들은 초등학교때 배우는 이 가장 기본적인 덕목인 수신제가치국평천하를 절대 실천하지 못한다. 그들은 자신의 몸과 마음을 수양하지도 못하고, 그러니 당연히 집안을 가지런히 하지도 못하면서 큰 꿈만 품는다. 그들은 자신의 옆에 있는 사람들을 힘들게 하면서 자신의 꿈을 쫓는다. 이런 이들이 아무리 큰 꿈을 품는다 한들 이들은 절대 위대해질 수 없다. 이들은 수신제가치국평천하를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위대한 사람들이란, 수신제가치국평천하를 지킬 생각이 없이 포부만 큰 사람이 아니라, 그들 곁에서 수신제가를 행하는 사람들이다. 능력이 없이 포부만 큰 사람을 우연히 만나 같이 살게 되어, 그들이 버려둔 가정을 지키는 사람들. 그들은 능력이 없이 포부만 큰 사람들을 대신해 수신제가를 이루기 위해 노력한다. 이들이 바로 위대한 이들이다.


권정현의 소설 칼과 혀에서 길순도 바로 그런 여자다. 길순의 오빠는 자신의 임신한 부인이 만주로 가는 기차를 온몸으로 막아서는 데도 불구하고 이에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에게는 대의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그 대의를 위해 동생인 길순에게 죽어가는 아비를 버려두고 만주로 올것을 종용한다.


길순의 남편이었던 요리사 첸도 마찬가지다. 그는 자신의 노모와 자신의 부인 길순이 죽을 위험에 처하게 될 것을 알면서도 만주 사령관 야마다 오토조를 죽이기 위한 거사를 감행한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자신의 사람들을 버려두고 대의를 감행한 이들의 행보는 아무것도 제대로 실행하지 못한다. 오히려 이들의 대의를 실행하는 사람은 그들이 아무렇게나 버리고 안위를 걱정하지 않았던 길순이다. 길순은 오빠의 뜻, 남편의 뜻을 대신해 자신이 직접 그 뜻을 실행하고, 남편의 복수 또한 대신 한다. 그리고 길순은 자신의 죽음을 유예하고 자신에게 얼마간의 친절을 베푼 사령관을 위해서 마지막 길을 따뜻하게 대접하면서 동시에 오빠와 남편의 뜻을 실행한다.(개인적으로 가장 뭉클했던 소설의 장면을 꼽자면 당연 이 소설의 마지막 장면이다.)


수신제가를 생각하지 아니하고 대의를 꿈꾸던 남자들의 복수와 그들의 뜻은 그들이 버려둔 길순이 대신했다. 그 남자들은 전혀 위대하지 않았다. 오히려 찌질했다. 본인도 버려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남기고 간, 버리고 간 사람들을 챙기면서, 결국은 그들의 뜻을 대신하여 실행한 길순은, 만약 이 소설에서 위대한 사람이 있다면 그 위대함에 적어도 조금이라도 가까운 인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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