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인 시간에

내 기다림의 시간

by 김경옥

내가 어릴 때에는 나는 혼자인 시간을 제대로 보내지 못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었다.


나는 중학교 3학년때 처음으로 좋아하는 남자가 생겼었다. 그는 그 이름도 유명한 교회 오빠. 그는 교회에서 베이스기타를 담당했었고, 피아노도 곧잘 쳤으며, 드럼도 쳤다. 인기가 없을 래야 없을 수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평범한 키에 평범한 얼굴이었을 거라 짐작이 되지만, 악기를 곧잘 다루고 노래도 잘 부르며 인기도 많은 그 오빠는 키도 컸고, 얼굴도 잘생긴 것만 같았다. 심지어는 춤도 잘 췄다. 그 오빠는 교회에서 뿐만이 아니라 그 오빠가 다녔던 학교에서도 밴드부 였는데 학교 축제를 할때면 다른 여학교 아이들이 그 오빠를 보러 그 축제에 온다는 말들을 다른 교회 또래 여자아이들을 통해서 듣곤 했다.


하지만 정말 솔직히 이야기 하는 것이지만, 처음에 나는 그 오빠를

“아, 괜찮은 오빠 이구나. 악기도 잘 다루고 춤도 잘추고 노래도 잘 다루고, 인기도 많구나.”

하는 정도로 ‘사실적으로만’ 생각하고 있었을 뿐, 딱히 엄청 좋아하거나 그러지는 않았다. 그런데 세상에, 크리스 마스를 막 보낸 어느 날, 나는 교회 선생님을 통해 그 오빠가 나를

“너무 예쁘다.”

고 연신 반복해서 얘기 했다는 소리를 들었다. 나는 크리스마스 공연 때문에 교회에서 워십댄스worship dance 라는 것을 했었는데 그걸 본 그 오빠가 그렇게 말했다는 것이었다. 그 오빠의 이모였던 선생님은 그러면서

“우리 00가 옥이 좋아하나 보더라고”

하셨다. 세상에나, 그 오빠가 나를 좋아 하다니. 나는 그 말을 듣자마자 가슴에서 뭔가 엄청난 파도같은 것이 동요하는 것을 느꼈다. 그때 나는 설렌다는 기분이 바로 이런 것이구나 하고 알았을 것이다. 그 때부터 그 오빠를 생각하는 나의 마음은 고속도로를 질주하듯이 빨라지고 깊어졌다. 그리고 언제랄 것도 없이 우리는 연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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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생각하면 중학교 3학년 여자애와 고등학교 2학년 여자애가 무슨 연애를 했을까 싶지만 나는 그때 정말 풋풋하다고 밖에 말할 수 없는 그런 연애를 했다. 교회에서 수련회를 가서 롤링페이퍼를 하면 내 종이에는 그 오빠 친구가 그 오빠를 대신해서 적은

“얼레리 꼴레리”

를 포함한 나름의 고백 문구가 적혔고, 나는 그것조차 설레고 기뻤다. 어느 날 저녁 그 오빠는

“우리 만남을 기념하기 위해 너한테 선물할 반지를 사려고 시내를 한참동안 돌았다”

고도 했다. 손잡는 것조차 너무 떨렸던 날들. 삐삐가 있었던 그때, 공중전화를 통해서 들리는 그 오빠의

“보고싶다”

는 말을 듣기 위해서 나는 매 쉬는 시간 마다 학교 1층으로 내려왔다. 그렇게 몇달을 보내고 나니 고 2였던 그 오빠는 이제 방학이 끝나면 고 3이 되는 시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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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권사님이던 그 오빠의 어머니는 그 오빠가 나를 만나러 나갈때면 용돈을 쥐어주시곤 하는 분이셨지만, 오빠가 고 3이 되자 오빠에게 나와의 만남을 그만두게 하셨다. 그렇게 몇 달만에 끝나버린 만남이었지만, 돌이켜 보면 내게 그 시간은 꽤 큰 것을 남겼다. 그 오빠와 만났던 그 때의 나는 마치 오스카와일드의 소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에서 도리언의 사랑을 받았던 여배우 시빌 베인과 같았다. 시빌 베인은 지성과 미모로 도리언 그레이의 사랑을 받았지만, 그 사랑에 빠져 자신을 잃어버린 댓가로 도리언 그레이에게 버림 받게 된다.


자기 자신 보다 사랑 자체를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 좋지 않은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는 것을 우리는 굳이 소설을 통하지 않아도 우리 주변에서도 많이 접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때의 나는 ‘나의 사랑’보다 ‘나’를 더 사랑하지 않았던 댓가로 마치 시빌 베인 처럼 점차 나를 잃어버렸고, 그 오빠와 만났던 시간들을 나의 성장의 시간으로 변모시키지 못했다.


나는 그 오빠를 만나기로 한 날이면 하루 종일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그 오빠를 생각했다. 수업시간에 그에게 편지를 쓰는 것은 다반사였고, 그렇지 않은 시간에도 나는 온통 그를 생각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면서, 중학교에 입학했을 당시 (우연한 일이었겠지만) 입학생 대표로 선서를 하면서 1등으로 입학했던 나는 성적이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내게 무슨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지조차 눈치 채지 못했다.


나의 관심은 오로지

“오빠랑 만나면 뭘할까?”

등등의 ‘오빠 생각’ 뿐이었다. 막상 만나면 그가 곁에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너무 떨려서 아무것도 제대로 할 수 있는게 없었지만, 만나기 전부터 만난 후까지 나의 생각은 오로지 그에게 집중되었다. 그리고 그에게 전화가 오기로 한 때이면 나는 그 전화가 올때까지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그 전화만을 기다렸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린 나에게, 누군가를 좋아하고 그 누군가가 나를 좋아한다는 사실은 어쩌면 감당하기 힘들 정도의 벅찬 감정적인 사건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나는 그 사랑을 하면서 나를 그 사랑에 ‘내버려’ 두었다. 나는 나를 돌보지 못했다. 나는 내가 혼자인 시간에도 나를 보지 못하고 그를 보았고, 그와의 만남을 보았으며, 그러다 그와 함께인 시간에는 오히려 그 감정에 내가 스스로 취하고 매몰되어 나는 너무 떨린 나머지 그를 바로 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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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기다림의 시간


나는 나이 드는 것이 한편으로 얼마나 좋은 것인가에 대해서 나의 어린시절의 이런 경험들을 떠올리면서 깨닫는다. 지금의 나는 혼자인 시간을 그렇게 타인만을 생각하면서 흘려 보내지 않을 만한 마음의 힘이 생겼다. 아마 내가 그때 그렇게 하지 못했던 것은 그 나이는 원래 그런 나이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자의든 타의든 여러가지 경험을 겪게 되고, 그러한 경험을 통해서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더 알아 가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을 일정한 시간 정도 거쳐야만 비로소 혼자인 시간을 정말 온전히 자기 자신을 위해서 쓸수 있는 것이었다.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먹는다’는 세간의 말처럼 자신에 대해서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던 사람만이 오로지 자신을 위한 시간을 쓸 수 있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 것이다. 이것은 어린 나이의 여자아이가 가슴에 파도처럼 몰아치는 설렘을 이겨내고 깨닫기에는 사뭇 큰 것일 수 있었다.


물론 지금의 내 혼자인 시간도 ‘기다림’의 시간인 것은 여전히 그때와 변함이 없다. 나는 혼자인 시간에 너를 기다리고, 언젠가 세상에 다시 나갈 나를 기다린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온전한 고독을 통해서 스스로 성장한 사람만이 완연한 소통의 시기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나는 나중의 함께하는 시간을 더 깊은 시간으로 만들기 위해서, 지금의 나의 기다림의 시간을, 나를 성장시키기 위해 내게만 집중하는 ‘혼자인 시간’으로 만든다. 그리고 이 혼자인 시간 속에서 나는 나의 기다림을 ‘견디지’ 않고, ‘즐긴다’. 이 시간이 있어야만 당신과 내가 온전히 하나의 독립된 주체로서 만날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나는 내 혼자인 시간, 기다림의 시간이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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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나의 기다림의 시간은 혹여 당신이 오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전제한다. 그것은 혹여나 오지 않을 당신 때문에 내가 무너지지 않기 위한 나를 위한 방패막인 동시에 내가 나의 혼자인 시간을 ‘기다림’ 그 자체로 즐기기 위함이다. 나는 나의 고독의 시간에 이제 당신만을 생각하지는 않는다. 나는 역설적이게도 당신을 기다리고 세상을 기다리는 이 시간에 당신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나를 생각한다.


그것은 내가 나이가 들면서 나와 친구가 되는 법을 알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 기다림의 시간에 스스로 나의 친구가 되어 나와 대화하면서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 것인지, 나는 어떤 것을 좋아하고 어떤 것을 싫어하는지, 나는 어떤 사람과 만나고 싶은지에 대해서 알아간다. 그렇게 내가 나를 제대로 알아갈수록 당신과의 만남이 더 즐거워질 것이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를 잘 알고 있는 나에게 당신이 더 매력을 느끼지 않을까 기대하기 때문이다. 또한 홀로 우뚝 설수 있는 사람일 수록 더 나은 당신과 조우할 수 있을 것이며, 우리의 소통이 더 가치있고 진한 시간들로 채워질 수 있을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그 진한 시간들을 위해서 나는 주기적으로 스스로 외로움을 만들고자 한다. 나의 혼자인 시간은, 결코 없어서는 안될, 아니 정기적으로 내게 선물해 줘야하는 필수적인 고독의 시간, 기다림의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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