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존재의 사랑

나의 아픔을 건너는 힘이 될 수 있기를

by 김경옥

오늘처럼 인생이 싫었던 날은, 세사르 바예호


시는 한번 읽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문자 그대로의 날 것으로 한번 읽고, 시인의 역사를 알고 또 한번 읽는 것이다. 그렇게 시를 여러번 읽다 보면 시어들이 매번 다른 모습을 하고 내게 오는 풍경을 마주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내게 언젠가 끝이 없는 우울속을 해매이게 되는 날이 오게 된다면 나는 그 때, 세사르 바예호의 이 시선집 ‘오늘 처럼 인생이 싫었던 날은’에 놓인 시들은 또 다시 꺼내보리라 다짐한다.


그 때, 나와 같은 고통, 아니 나보다 더한 고통을 당했을 그를 생각하고, 추모하며 나는 그와 함께 공감하고 또 위로받을 것이다. 기쁨을 노래하고 희망을 노래하는 것들과 함께 하는 것이 내 인생의 희망이고 기쁨이고, 전진이듯이, 삶의 아픔과 고통, 연민에 대하여 노래하는 것과 함께 하는 것 또한 나의 아픈 시기를 건너는 힘이 될 수 있을 것임을 안다.


세사르 바예호는 분명 내가 ‘인생이 싫은 날’에 좋은 벗이 되어줄 것이다. 그와 함께 생을 버티는 날이 올지도 모르는 나는 그의 시를 하나쯤은 기억해 둬야 겠다. 그리고 이 시를 읽으면서 느꼈던 나의 생각까지도.


p.145

낯선 존재는 끝났다. 밤이

깊도록 너와 도란대던 밖의 존재.

좋든 나쁘든, 나만의 자리를

만들어줄 사람이 이제는 없다.

끓어오르던 오후도 끝났다.

너의 멋진 만과 너의 외침.

오후가 듬뿍 담긴 차를 내오시던

늙으신 네 어머니와의 담소도 없다.

결국 모든 것이 끝이 났다. 방학도,

너의 다소곳한 가슴도, 나에게

가지 말라고 부탁하던 네 모습도.

다정한 말도 끝이 났다. 끝없는 고통 속

나의 성년, 그리고 이유 없이 태어난

우리의 운명을 위해 존재했던 그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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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존재의 사랑

너와 나는 사랑을 했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서로의 ‘안’에 속하지 않았다. 절절히 끓어오르는 그 날들에도, 그 오후에도 우리의 외침은, 여전히 나의 자리를 너의 ‘밖’에 만들어주는 네게 향했다. 나는 그렇게 나의 밖에 있는 너와, 또 너의 사람들과 즐거웠지만, 모든 것에 끝이 있듯이, 너와의 관계도 언젠가는 끝날 것이었고, 그리고 그것은 오늘 이렇게 끝났다.


하지만 나는 기억한다. 너와 나는 끝났지만, 나는 너의 몸, 너의 말을 기억하고, 또 추억한다. 너의 몸, 너의 말은 나를 붙잡았고, 내가 끝없는 고통 속에 있을 때, 나의 태어남과 생에 아무런 이유를 찾지 못했을때, 나는 너로 인해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내가 찾은 너의 말은, 그것은 고통속에 태어난 우리가 찾은 최초의 생의 이유였고, 또 우리의 운명이었다.


나는 사랑하는 사이에도 일정한 거리가 있어야 함을 이제는 안다. 늘 그대의 안으로 들어가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음은 아마도 필연이었을 것이다. 너와 너를 둘러싼 모든 것이 있었기에 그때의 내가, 사는 이유가 있었음을 나는 기억한다. 너를 붙잡았던 나의 모습이 그리 추하지 않게 느껴졌다니 참으로 다행이다. 고맙다. (는 말을 시인은 하고 싶지 않았을까, 그의 말은 나의 말. , 그리고 이것이 그대의 말이 되었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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