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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옥 Feb 28. 2018

이기적인 부모 vs. 희생하는 부모

효도는 의무감이 아닌, 존경심에서 우러나와야 하는 것

아직 아이들이 어려서, 앞으로 아이들을 키우면서 힘이 들때가 훨씬 자주 찾아올지는 모르지만, 나는 지금까지 육아로 힘들때마다  스스로 다짐했던 것이 있다.

“나는 절대 아이들에게 이런 것으로 생색내지 않겠다”

고 말이다.


첫째 돌이 되기 조금 전에 둘째를 임신했고, 한창 엄마가 놀아줘야 되는 때에 나는 몸이 너무 힘들어 놀아줄 수가 없었다. 매일 앉아 있는 것조차 힘들어서 방바닥에 누워 있곤 했는데, 그때마다 첫째는 내게 와서 일어나라고 보챘다. 당연히 남편 없이 아이와 둘이 먹는 점심이란, 아이 밥만 챙겨주고, 나는 대충 라면 같은 것으로 때우는 식의 식사를 했고, 그럴때마다 나는 다짐했다.

“나는 절대 내 아이에게, 내가 너를 키우느라고, 너를 임신해서 너무 힘들어서 매일 라면만 먹고 살았네”

 어쩌네 라는 말을 하지 않겠노라고. 나는 너를 위해서 이렇게나 희생하고 살았네 하면서 아이를 내게 얽매이게 하는 엄마는 절대 되지 않겠노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자신의 생을 스스로 일궈나가기도 벅찰 아이들에게 나까지 짐이 될 수는 없으니, 나는 아이들의 마음을 가볍게 해줄 필요가 있다.


나는 부모가 아이를 키우는 몇 가지 방법중에 좋은 한가지 방식은 부모가 최대한 이기적으로 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기 건강은 자기가 스스로 챙기고, 자기 행복은 자기가 스스로 만들어가면서 살며, 부모 자체가 스스로 자기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고, 온전한 본연의 자기 모습을 자신의 삶에 충실히 구현해 가는 생을 일구는 것. 그것이 바로 아이들에게 부모가 보여줄 수 있는 최상의 삶의 방식이지 않을까 했다.


효도는 의무감이 아닌, 존경심에서 우러나야 하는 것


아이가 만약, 일방적으로 희생하면서 살면서, 그것을 늘 아이들에게 확인시키는 부모 하에서 자란다면, 그 아이는 나중에 자라서 부모에게 받은 사랑이 그저 당연한 것이 아니라, 나 때문에 고생한 부모에게 뭔가 죄스러운 감정을 가지고 보답해야 한다는 의무감에 사로잡혀 자신의 인생을 제대로 즐기지 못하고 온전한 자신의 삶을 살기에 힘이 들지 않을까?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일방적으로 자식을 위해서 자신의 삶을 희생하는 부모가 아니라, 자식에게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인지, 자기 자신으로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직접 옆에 있으면서 본인이 사는 모습으로 보여주는 부모일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아이는 그런 엄마, 아빠의 모습을 보고 즐겁고 기쁘게 사는 자신의 미래 모습을 그릴 수 있을 테고, 효도라는 것이 있다면 자신을 위해 고생한 부모를 위한 ‘의무감’에서 나오는 것이 아닌, 나에게 올바른 삶의 모습을 손수 자신의 삶을 통해서 보여준 부모에 대한 ‘존경심’에서 우러나오는 것이어야 할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번 설에 어떤 친척 분께서는 내게

“너를 위해서는 재혼해도 되지만, 아이들을 위해서는 절대 재혼하면 안된다.”

라는 말씀을 해주셨다. 그리고 나는 그 말을 듣고서 생각했다.

그럼 나는 내 아이들에게

"엄마는 너희를 키우기 위해서, 20년간 수절했어."

라고 말해야 하는가?



“그럼, 내 아이들은 아비 없는 것도 서러운데, 평생을 자기들을 위해서 수절 하면서 혼자 고생하면서 산 엄마에 대한 무지막지한 의무감까지 짊어져야 하는 걸까? 나는 아이들에게 결국 짐스러운 존재가 되는 것 아닐까? 나는 왜 내 아이들에게 짐이 되어야 하는가? 내 아이들은 어쩌면 다 자라서 자신들의 세계로 훨훨 날아가야 할때가 왔을때, 근 20년 넘게 자신들을 키우다가 수절하면서 혼자 지낸 엄마가 눈에 밟혀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포기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발생할 수 있는 많은 불편함을 감수하고서라도 내게 큰 정서적 안정감을 줄 수 있는 좋은 사람이 곁에 있을 수 있다면, 그를 받아들이면 되는 것이고, 아니면 또 아닌 대로 내 상황을 받아들이면서 살면 되는 것이지, 무슨 아이들을 위해서라면 절대 재혼을 하면 안 된다니, 그럼 내가 재혼하면 나는 이기적인 엄마가 되는 것인가? 아,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다 보니, 내가 생각했던, 온전한 자신의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는 부모가 되기를 바랐던 나의 다짐과는, 내가 아이들을 위해서 수절하면서 20년간 독거하는 것보다는 오히려 내가 재혼하는 것이 그 방향에 있어서 더 일치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대체 사람들은 자기가 내 옆에 있어줄 것도 아니고, 내 애기들을 키우는 데 자기들이 조그만 도움이라도 줄 것도 아니면서, 대체 내가 다시 결혼을 하든 말든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그리고 내가 재혼하면 아이들에게는 안 좋다는 것은 또 어디서 나온 논리란 말인가? 아, 이 상황이 되니, 나는 참 별소리를 다 듣고 산다)


재혼이고, 뭐고, 그건 나 혼자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 지금 상태에서는 알수 없는 일이지만, 만약 내가 시간이 조금 지나서 지금의 아픔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난 후엔, 입양을 하는 것은 어떨까 생각이 문득 든다. 조금 더 넓은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도록


전혜성 박사의 여자 야망사전을 읽다보니, 문득 시간이 흘러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더 자라고, 생활이 좀 안정되면, 아이를 한명이나 두명정도 입양을 해서 키우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손가정이라는 표현을 쓰기는 너무 싫지만, 아빠의 사망으로 어찌되었든 결핍이 있을 수 밖에 없는 우리 아이들이 자신들의 상황을 조금이나마 아픔없이 받아들이는 데에, 입양을 통해 형제 자매가 생기는 것이 얼마 간의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것보다는 아이를 한명이나 두명 정도 입양을 해서 키우는 것이 남편이 죽어 과부가 된 내가 이 실패를 받아들이고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데 많은 도움이 될 수 있겠구나 싶은 마음이 더 크긴 하지만. 그러니까, 내가 가난하지만, 더 가난한 사람을 위해 도움을 줌으로써 한편으로는 풍족한 마음으로 삶을 살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나 할까?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내 생활의 안정이 더 필요한 일이겠지만, 정말 내게 내가 쓴 책, 내가 쓴 글로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그런 날이 온다면, 그래서 경제적으로도 생활하는데 문제가 없이 충분한 여유를 갖추게 된다면, 나는 지금 있는 내 아이들 둘 외에 입양을 해서 가슴으로 낳은 아이들을 키우면서 나의 남은 삶을 조금 더 의미있게 만든 다면 더 좋겠구나 생각이 든다. 남편이 사망하고 나서, 아이들을 키우는 과정을 계획해 보면서, 아이를 키우는 데 돈이 많이 든다지만, 또 많이 욕심을 내지 않으면 따로 사교육을 시키지 않고서도, 그저 옆에서 같이 공부하고, 인생의 심오한 주제에 대해서 깊이있게 논의 할 수 있는 엄마의 존재만으로 훌륭하게 아이들을 키워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었는데, 그렇다면 아이를 한명이나 두명 정도 더 키우는 것도 거뜬 하게 해 낼 수 있는 일이지 않을까?


그것이 나와 내 아이들이 남편, 아빠의 부재로 부터 벗어나 더 큰 미래를 그릴 수 있는 방법일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더 큰 세상으로 나아감으로써 지금 세상의 불합리함을 마치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하는 것이다. 나는 또 입양한 내 아이들에게도 온전하게 자신의 삶을 사는 엄마의 모습을 옆에서 보여줌으로써 그들에게 더 나은 삶을 꿈꿀 수 있는 희망을 줄수도 있을 테고 말이다. 물론 아이를 둘 키우는 것보다, 아이를 셋, 넷 키우는 일은 훨씬 더 힘이 드는 일일테니, 거기서 오는 힘듦 또한 나를 단련시키는 하나의 요인이 되겠지. .


짐짓 연관성이 없어보이긴 하지만, 그런 날이 오면 좋겠다는 생각을 전혜성 박사의 ‘여자야망사전’을 읽으면서 문득 했다. 이 책은 내가 그의 다른 책(섬기는 사람이 아이를 큰 사람으로 키운다)을 읽고 나서 관심이 생겨서, 중고도서로 찾아서 예전에 구입한 것인데, 6남매를 모두 훌륭하게 키워낸 전혜성 박사가 생각하는 삶에 대한 의견들이 적혀 있다. 그리고 내가 왜 그의 책을 읽고나서, “입양할까?” 라는 생각이 들었는지는 딱히 모르겠지만, 그래도 나는 만약 내가 전혜성 박사와 직접 대면해서 얘기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겨서 그에게 나의 이런 생각을 이야기 한다면 그는 꼭 나의 생각을 지지 해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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