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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옥 Apr 08. 2023

이 땅의 젊은 여자로서 결혼, 출산, 육아를 하는 것

사별 한부모에 대해서ㅡ 내가 직접 겪은 일을 중심으로

아래 글은 내가 이전에 블로그에 썼던 글이다. 그것도 장장 2018. 4. 12. 16:54  에.

(지금은 블로그명은 바꿔서 "더 나은 미래를 만드는 방법" 이라는 블로그)


예전에 썼던 글들을 한데 모아서 보다가, 글이 (아주) 꽤 길지만, 여전히 저출산, 저출생이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는 시점에서 누군가 한명이라도 이 글을 접할 수 있다면 정말 생생한 현장의 소리를 들으실 수 있을 것 같아서, 여기에도 올려본다. (feat. 다행히도 저는 지금 아이 둘과 잘 지내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복지 제도의 불합리성


 남편이 갑자기 죽고 나서 내가 가장 먼저 했던 일은 동사무소에 가서 기초보장제도를 신청했던 일이었다. 당시에 내 애기 둘은 어린이집에 보내지 않고 집에서 보육하고 있었고, 우리 가정에서 수입원은 남편이 벌어오는 것이 전부였는데, 주 소득자가 사망하게 되어서 당시의 나의 월수입은 0원이었기 때문이다.



 남편 사망 직후의 상황


 다행히 처음 몇 달간은 친정 엄마를 비롯해서 동생들, 친정 식구들이 내가 정신을 차릴 만한 시간을 가질 수 있게 아이들을 돌봐주었고, 남편의 사망신고를 비롯한 각종 행정처리를 할 수 있게끔 도와주었다. 그 덕분에 나는 마음 놓고 여러 장소를 다니면서 일을 처리했다.


 그러다가 운전 중에 횡단 보도에 서있을 때면 꼭 눈물이 나서 사고 날 뻔 한 경우는 종종 있었지만, 다행히 큰 사고는 없었고 멀쩡히 살았다. 그 와중에 틈틈이 마음을 정리하려고 눈물이 날 때면 워드를 열어 글을 썼고, 그 중에 간 혹은, 나 이래요. 나 좀 봐주세요. 하는 마음이었는지, 블로그에 올리기도 했고, 또 어떤 것들은 너무 창피해서 그대로 두기도 했다.


 재정적인 면에서는 남편 상중에 문상 온 지인들이 보내준 조의금도 큰 도움이 되었다. 나는 장례도 간소하게 치렀고, 상을 치르고 나니 내 지인들과 남편의 지인들이 보내준 조의금이 내 입장에서는 그래도 꽤 많은 금액이 되었다. 미처 고맙다는 얘기는 제대로 못 전했지만, 나는 내 결혼식 때 축의금을 보내주었던 것보다, 남편 상중에 보내준 조의금이 너무 감사했다.


 나는 살길이 막막했으니까. 그렇게 조의금으로라도 도와주신 분들이 너무너무 고마웠다. 심지어 그 동안 연락도 많이 못하고 지냈고 상중에 연락도 못했는데, 나중에라도 어떻게 듣고서는 연락하셔서 조의금을 계좌로 보내주신 분들은 더욱 고마웠다. 사실 누구를 일일이 찾아 뵙고 인사할 그런 정도의 정신머리가 아니어서, 문자나 전화로 인사했지만, 나중에 꼭 다시 성공해서 이들에게 감사인사를 다시 해야겠다고 생각이 들 만큼 너무 고마웠다.


 그리고 남편이 죽기 전에 봉직의로 일했던 병원, 아르바이트를 했던 병원 등에서 아직 지급이 안된 급료를 보내주었고, 그것도 사실은 그렇게 작지는 않은 금액이어서 당분간은 생활이 가능했다. 나는 그만 울고 정신을 차릴만한 시간을 벌었다고 생각했으나, 몇 개월이 지난 지금도 아직 정신을 못 차리고 가끔은 울고 흔들리는 것은 여전하다.


 그리 길지 않은 생이지만, 그래도 몇 몇 가지의 일들은 있었는데 살면서 이토록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했던 경우는 없었다고 생각될 만큼, 정말 앞이 캄캄했다. 그렇다고, 앞으로 살길이 걱정된다고,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아픔이 사무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밤이면 밤대로 낮이면 낮대로 갑자기 사망한 남편에 대한 뭐라고 설명하기 힘든 마음이 들었다. 너무 미웠다가, 너무 그리웠다가.


 신기한 것은 너무 미울 때도 눈물이 났고, 너무 그립고 보고 싶을 때도 눈물이 났다. 다만 그 양상은 다양했다. 큰 소리를 내어 울 때도 있었고, 그냥 눈물만 날 때도 있었고. 나는 원체 눈물이 많은 편이긴 했지만, 이때는 더욱 그랬다.  육아의 고통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함께 육아를 도와주던 남편이 사라졌으니, 오히려 두 배로 힘들었다. 나는 삼중고 사중고를 겪었다.


 어릴 때 교과서에서 본 것 중에, 살면서 겪는 스트레스 중에 1위가 배우자의 사망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바로 그 삶의 가장 큰 스트레스를, 늙어서 아이들 다 키워놓고, 살집과 살 돈을 마련해놓고 겪어도 됐을 그 스트레스를, 어린 아이 둘을 데리고 살 집도 살 돈도 없는 상황에서 겪었다. (겪는 중이다.) 그리고 당시의 스트레스들은 몇 달이 지난 지금 이제는 많이 좋아졌기는 했지만, 많은 부분이 아직도 여전하다.


 복지제도, 기초생활보장제도를 신청


 이렇게 계속되는 수입이 보장되지 않은 상태에서, 애기 둘을 데리고 주부로 살았던 나는, 유일한 소득자이던 남편이 죽자 생활이 불안한 것이 당연했고, 어른들은 얼른 동사무소에 가서 기초생활보장제도라도 신청하라 했다. 그래서 나는 일이 터지고, 남편 사망신고 등을 마치고 가장 먼저 동사무소에 간 것이다. 그리고 어른들의 조언이 아니더라도, 나도

 “얼른 신청해야 겠다. 그거라도 되면 그래도 마음이 좀 낫겠지,
이렇게 불안하지는 않겠지”

생각이 들어서 매일 저녁이면 울어서 눈이며 얼굴이며 퉁퉁 붓고, 제 정신도 아닌 상태에서 동사무소에 드나들었다.


 기초생활수급자, 저소득층 한부모(법정 한부모), 한시적 긴급지원을 신청 했다.(참고로 한시적 긴급지원은 송파구 세모녀 사건 이후로 비슷한 사건을 막기 위해, 갑자기 생계가 힘들어진 사람을 위해서 생겼다는데, 금융자산이 500만원 이하여야 조건이 된다. 6개월 동안 통장 내역도 본단다. 내가 이 사실을 얘기 해주니, 동생이 웃었다. 오백이라니, 장난 하냐고. 그러게, 통장에 500 이상 있으면 갑자기 남편이 죽어도 충분히 살 수 있다는 것인가 보다.)  나는 살고 있던 집도 월세여서, 당장 월세를 낼 것도 걱정이지만, 못 내서 쫓겨나는 것도 걱정이었다.


 애들이랑 같이 타는 차는 렉스턴 2004년식이 되었는데, 이전에 타던 세단이랑 많이 달랐다. 디젤이라 그런 건지, 차가 오래 되서 그런 건지, 차체가 커서 그런 건지, 탈 때마다 덜덜 거리는 데다, 친정 집에 갈 때 고속도로를 타면 바람이 많이 불면 차체가 강하게 흔들려서 운전대를 잡는 것도 조금 떨렸다. 암튼 어쩔 수 없어서 이 차를 폐차 시킬 때까지 타는 것으로 결정했다.


 경기도 화성에 어쩌다가 내 명의로 된 땅이 있기는 했는데, 이것도 남편이 말아먹은? 자산 중의 하나로, 대출금을 갚지 못해 경매로 넘어가있는 상태였다. 그리고 나는 여타의 다른 재산이 있는 것도 아니었으므로, 아마 나라가 지금 이렇게 위기 상황에 처한 나를 도와줄 것이라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그리고 어른들도 가장 먼저 사회복지제도를 신청하라고 하셨던 것을 보면, 나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아마 국민이 위급한 상황에 처했을 때, 생계가 위기에 처했을 때 나라가 나를 재기할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이 된다.



 기초생활보장제도에서 탈락한 이유

 하지만 나는 한달 쯤 뒤 나온 통지서에서 내가 신청한 세 가지의 복지제도에서 모두 탈락 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 이유란즉슨 이렇다. 일단 차가 너무 크다는 것이다. 경차여야 한다는 것 같았는데, 아니, 내가 타는 렉스턴은 20만 키로 넘은 차에다 취득가액이 500만원이었는데, 경차도 천 만원 넘지 않나? 아무튼 웃기는 일이다. 내가 여차 저차 트럭을 몰면 또 이것도 크다고 안되나. (안 물어봐서 모르겠다. 그렇겠지?)


 그리고 지금 사는 집 월세가 너무 많다고 했었나? 잘 기억은 안 나지만,.이것도 이유에 있었던 것 같다. 그 월세를 어떻게 부담하고 계시는 거냐고. 남편이 살았을 때도 집을 살 돈은 없어 월세집을 얻었는데, 남편 월 수입이 적지는 않았으므로, 딱히 반지하나 옥탑방이나 이런데 살 필요는 없어 지금 살고 있는 집을 월세로 얻었던 것뿐이었다. (아마 지금 살고 있는 이 집도 전세라도 되었으면, 이 돈 가지고도 담보 대출을 받아서 남편이 하던 일에 돈을 끌어 쓰지 않았을까 생각이 든다.) 그런데 나는 지금 갑자기 남편이 아무것도 남겨놓지 않고 사망한 상태에서 월세를 부담할 경제적 형편이 안되지만, 이사를 가려고 집을 내놓아도 아직 집이 안 나가서, 살고 있는 것뿐이다.


 내 명의로 된 땅이 있기는 하지만 그것도 경매 중인데, 경매 중이라는 것 잠깐만 검색해봐도 다 확인할 수 있다. 어쨌든 내 명의의 땅이 있기 때문에 이것도 결격 사유. 땅이 경매로 넘어간다고 해도, 경매가가 시장가에 비해 높을 가능성이 별로 없을 것이고, 이미 그 땅을 담보로 한 못 갚은 대출금만 몇 억이니 땅이 경매로 넘어간 후 얼만큼의 금액이 남을 확률도 거의 없다.



 부양능력 있음


 그리고 선정 제외 이유에서 기억나는 것은  “부양능력 있음” 이라는 데, 나는 이게 대체로 웃긴 게, 남편도 없이 애기 둘을 데리고 어떻게 일하라고 부양능력 있음 이라는 지 모르겠다는 거다. 요즘 애기들 어린이집 보내고 난 후 나는 이것저것 일들을 한 후 아이들을 저녁 6시에 데리고 오는 데, 이때 가면 우리 애들만 덩그러니 둘이 놀고 있다. 그 시각이면 다른 아이들은 다 하원 하고 난 후인 것이다. 다른 아이들은 보통 3시 이후 4시 사이에 하원 한다.


 보통 엄마들이 우리 아이만 늦게까지 어린이집에 남아 있는 것이 안쓰러워 다들 일찍 하원 시키지만, 나는 그런 거 저런 거 따질 형편이 아니라, 최대한 오랜 시간 동안 어린이집에 아이들을 보낸다. 아이들을 어린이집 보내기 시작할 즈음에 어린이집 선생님께 여쭤봤더니,

“어머니께서 일을 하시면 보통 등 하원이라도 시켜줄 베이비 시터를 따로 쓰세요. 아마 쓰셔야 할거에요”

라고 얘기 했었다. 내가 계속 일을 했었던 사람도 아니고 내가 전에 무슨 일을 했었든 어찌되었든 나는 주부로 살림했던 사람이고, 사람들이 말하는 경력단절여성, 경단녀일 뿐인 여자이다. 내가 지금 나서서 무슨 일을 풀 타임으로 구한다고 한들 매번 6시에 맞춰서 아이를 데려올 수는 없을 것이 자명하다. 아니 아이를 9시에 등원 시키는 것도 불가능할 것이다. 내가 들어갈 수 있는 어떤 직장에서 내게 그 정도의 여건을 허락해 줄까? 아마 그냥 입사를 거부하겠지. 나 같은 여자 말고도 일할 사람은 많은 테니까 말이다.



 그리고 나는 그렇게 느슨하게 일하면서 아빠 없는 내 새끼들을 제대로 교육시킬 수 있을 만큼의 수입을 낼 수 있을까? 당장 일을 시작하면 높은 급료는 받기 어려울 것이고, 그러면 아마도 베이비 시터까지 써가면서 일을 한다는 것은 언감생심일 것이다. 이런 내게 부양능력이 있어서 아무런 지원을 못해주겠다니 웃기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이게 나라냐?”

라는 말은 이럴 때 써야 하는 것 아닐까? 나도 나라 탓 하는 거 싫지만, 정말 남편 죽고, 집도 없고, 돈도 없고, 직업도 없고, 애만 둘 있는, 죽어도 이상할 것 없는 막막한 사람한테, 너 혼자 알아서 하라니, 짜증이 났다. 대체 이 나라는 왜 있는 것 일까? .




 ‘살려달라’는 소리를 외면하는 제도

 원래 이 나라는 이렇게 갑자기 위기에 처한 국민을 돌아보지 않는 나라인가? 나도 서른 여섯 해를 살아내면서 알게 모르게 많은 세금을 내면서 살았는데, 나라는 왜 내가 이렇게 위기에 처했는데 이런 나를 너 혼자 알아서 하라고 내버려 두는 것인가? 누가 물에 빠져서 허우적대고 있으면 들어가서 손 내밀어 주고 구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 애 둘 델꼬 빠져서 혼자서 헤엄쳐 나올 힘도 없는데, 어떻게 그냥 알아서 나오라고 보고만 있을 수 있을까?


 애기 낳으라고 그렇게 얘기 하면서, 여자들이 늦게 까지 공부하고 늦게 까지 일하고 해서 늦게 결혼해서 마치 애기 안 낳는 것처럼, 그렇게 나라 말아먹을 죄인 취급 하더니, 애기 낳고 남편이 갑자기 죽으면 나 같은 꼴 되는 것인가? 우리 집 어른들이 내게, 얼른 동사무소 가서 복지제도 신청하라고 그랬듯이, 누구나 어려운 일을 당하면 당연히 가장 먼저 국가라는 공동체에 의지하게 되는 법인데, 대체 이 공동체는 누구의 공동체이길래, 이토록 가슴 시린 사람을 외면하는 것일까?


 하지만 그렇다고 이런 생각만 하고 있을 수는 없어서, 이런 제도를 바로잡고 고칠만한 정치도 여유가 있는 사람들의 얘기라 치부하고 살길을 찾아, 이런 사람 저런 사람 만나서 얘기 하다 보면, 사실 국가의 제도란 것이 그 제도를 만든 사람들의 생각이 반영된 것이라는 사실을 여실히 깨닫게 된다. 그리고 그 사람들이란 바로 나이든 남자 어른들이라는 것. 물론 남자 어른들 못지 않은 고루한 사고방식의 여자어른들도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많지만 말이다. 나라에 흐르는  전반적인 사고가 문제인 것이다.




   새끼 입양 보내라는 건가요?


 나는 어떤 나이가 적지 않은 남자 어른과 이런 대화를 했었다.

“되게 웃기지 않아요? 지금 나 이꼴 나고도 나라에서는 한 푼도 지원이 없어요. 내가 이 꼴 된 게 나라 탓은 아니지만, 적어도 자국민이 무슨 일을 당한다고 해도, 그 사람이 죽지 않고 살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하는 게 나라 아니에요? 집도 없고, 돈도 없고, 직업도 없는 채로 남편이 죽어서 남편도 없는데, 있는 거라고는 먹이고 입히고 씻기고를 다 해줘야 하는 애들 둘 뿐인데, 나한테 부양 능력이 있어서 아무런 지원을 못해주겠대요. 웃겨. 사람들은 되게 웃긴 게. 애는 저절로 크는 줄 알아. 그러니깐 그렇게 애기 키우는 여자들이 자기가 하는 일에 대한 대접을 못 받는 것이겠지 싶어요. 애기 둘인 거는 그냥 안중에 없고, 그냥 내가 아직 젊으니까, 부양능력이 있다는 거지. 아니, 손 발 다 묶였는데, 그 부양능력은 어떻게 발휘해야 하는 거에요? 글고 뭐.. 상황이 이러니 집에서 얼만큼을 지냈든지, 내가 몇 년 만에 다시 사회 나가야 하는 것은 알겠는데, 요새 나보다 십 년 젊은 대학교 막 졸업한 애들도 취업하기 힘들다면서요.


 근데 더 웃긴 거는 뭔 줄 알아요? 내가 내 새끼 직접 안 키우고, 보육원에 보내면 한 애당 36만원을 지원해주고, 다른 집에 입양을 보내면, 그 입양한 집에는 아이 한명당 27만원인가? 이렇게 주고, 그 아이는 의료급여 1급인가, 뭔가 해서 의료비도 하나도 안 들어요. 근데 한부모인 내가 내 새끼 어케든 키워 볼려고 그러면, 아무런 지원도 안 해줘요. 웃기지 않아요?


 이건 뭐, 나보고 힘들면 애들 키우지 말고 입양 보내거나 보육원 보내라는 소리 아니에요? 보육원이나 입양된 애들이나 다들 미혼모나 한 부모 애들인 경우가 많을 텐데, 아니, 나라의 제도가 그 아이들이 원 가족에서 크도록 해 줘야지 이게 뭐에요? 이게 진짜로 아이의 복지를 위해서 만들어진 제도에요? 엄마랑 애들이랑 떨어지도록 유도하는 게 진짜 아이의 복지를 위한 거냐고요. 한 부모들은 그나마 법정 한 부모가 되어야 10만원인가, 지원 나오는데, 그것도 되기 더럽게 힘들어요. 진짜.(아마 이건 지금은 지원금이 조금 상향 되었을 거다.) ”



 내 얘기를 듣고 그 분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분은 나이 50대 남자)

 “아 그래? 몰랐네. 근데 정말 우리 때랑은 세대가 다르구나.
나라에서 지원을 받아서 살려고 하는구나.
우리 때랑은 많이 다른 것 같아. 요즘 젊은 사람들은”




 복지제도를 신청하는 것은 거지 근성을 가진 것인가?

 아, 나는 이 말을 듣는 순간, 왜 이 나라의 대한민국의 복지제도가 이 모양 이 꼴인지 진심으로 깨달을 수 있었다. 대한민국의 복지제도를 만드는 나이든 남자어른들의 생각이 다 이러니, 이 나라 복지제도가 이 꼬라지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정말 준비하지 못한, 미칠 것 같은 상황이 닥치면, 그 사람이 어떤 일을 했었든지, 나이가 몇 살이든지 상관없이 앞길이 막막하고, 뭘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고, 무섭고 두려운 날들이 지나간다. 제발 누구라도 좀 도와줬으면. 살려주세요 라고 외치고 싶은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때 살려달라는 말은,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가장 먼저 그 동안 내가 성실히 세금 내고 살았던 국가라는 공동체에 대고 해야겠다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국가의 도움을 요청하는 것을 이 어른들은 그저 거지근성과 비슷한 것으로 생각하는 구나 하는 것을 이 대화를 하면서 문득 깨닫게 된 것이다.


 그분이 말하셨던,

“요즘 사람들은 우리 때랑 달라서 나라에서 도움 받아 살려고 한다”

라는 문장 속에는,

“자기 할 일은 자기 스스로 해야지 왜 나라의 도움 따위를 바라느냐”

 는 뜻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된 것이다.  아니, 그런데 나라가 위기에 처한 국민을 돕지 않는 다면, 그럼 그 사람은 누가 돕는 다는 말인가? 다들 자기 사는 것도 벅찬 마당에, 이럴 때 절실하게 필요한 게 바로 국가 아닐까? 나라는 왜 있는 것인가? 나라의 복지제도를 찾는 사람을 거지근성이 가득 찬 사람으로 몰아 가기 전에, 국가 그 자체의 존재 이유에 대해서 고민해 봐야 하는 것 아닌가?



 누구나 성인이 되면 자기 할 일은 자기가 하는 것이 맞긴 하지만, 아무리 제대로 교육받고 제대로 성장한 성인이라고 해도 자기 혼자서는 해결할 수 없는 힘에 부치는 문제들이 분명히 있다. 그래서 우리는 모여서 사는 것이고 공동체를 이루고 사는 것 아닐까? 아무리 다들 성장한 성인이라도 혼자서는 힘에 부치는 일들이 많기 때문에 서로 도우면서 살라고 공동체가 존재하는 것일 터이다. 갑자기 재정적인 위험에 봉착할 수도 있고. 너무 커다란 사건에 실의에 빠져서 우울증에 시달릴 수도 있고.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육아와 부양의 문제

 그리고 그 중에 가장 대표적인 다른 이의 도움이 필요한 일이 바로 육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육아는 정말이지 엄마 혼자의 힘으로는 힘에 부칠 때가 많다. 아이들은 끊임없이 내가 이해를 해 ‘줘야’ 하는 대상이고, 한 사람의 성인이 그것도 두 아이들의 이해를 모두 충족시켜 주기엔 정신적 육체적으로 무리가 너무 크다.


 그래서 아빠의 육아 도움이 절실한 것이고, 더 나아가서는 조부모의 도움이 필요한 것이지만, 이렇게만 해서는 각자 인생의 즐거움이 무너질 수도 있기에,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한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나오는 것 아닐까? 그런데, 육아를 도와 줄 남편도 없고, 양육비를 대줄 남편도 없는 나는, 나라마저 등을 돌리면 그럼 어쩌란 말인가? 애기들 보육원에도 보내기 싫고 입양도 보내기 싫으면, 그냥 애들이랑 같이 죽으라는 소리인가?


 이런 개 쓰레기 같은 복지제도만 있는 나라에서는 결혼 안하고 애기 안 낳는 것이 상책이다.


 이혼도 힘들기는 하겠지만, 그래도 부모의 역할을 한 사람이 방기하지 않도록 양육비이행관리원을 설립하는 등 많은 제도가 보완 되고 있다. 그리고 이혼은 부부 사이가 깨진 것이지, 아이의 부모로서의 역할은 그대로인 것이니까, 원론적으로는 아이의 양육은 같이할 사람이 있지만, 남편의 사망은 이야기가 완전히 다르다.


 남편이 사망한 경우, 아이를 키우기 힘들면 아이를 보육원에 보내거나 입양을 시키면 나라에서 그 사람들에게는 어느 정도의 지원을 해준다. 하지만 아이를 원부모가 키우겠다고 하면 니 새끼는 니 알아서 키우라고 하고 아무도 돌봐주지 않는다. 경단녀를 선택한 것은 너의 잘못이라는 식이다.


 대한민국의 제도뿐만 아니라 이 나라 사람 중 많은 사람들 (특히 나이든 어른들)이 그렇게 생각한다. 그래서 일하겠다고 하면 또 <엄마가 어찌 아이들을 떨어뜨리고 일할 생각을 하냐>며, 젊은 애 엄마에게는 비난의 시선을 보내고, 너 대신 니 새끼 봐줘야 하는 조부모의 수고에 대해서는 무한히 안타까운 시선을 보낸다. (주로 이런 시선은 '나는 너희들보다 훨씬 더 힘들게 애들 키웠어.' 라고 얘기 하는 여자어른들이 보낸다.) 이게 이 땅의 문화고 전통이다.  대한민국의 젊은 여자들은 이 시선 속에서 결혼하고 애를 낳고 키운다.


 혹시나, 갑자기 남편이 사망하는 일이 나한테만 일어나는 법은 아닐 수도 있으니, 대한민국의 많은 여자들은 결혼해도 절대로 직장은 버려서는 안 된다. 그리고 그것보다 더 최상인 것은 그냥 결혼 안하고 연애만 하면서 사는 것이며, 아이는 안 낳는 것이 상책이다. 결혼과 육아는 분명한 여자 인생의 위기이니까.



  아이를 낳고 아이를 키우는 일(경력단절여성)에 대하여.

 아이를 낳고 여자가 일을 그만 두는 것, 경단녀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하자면, 1박 2일 엠티를 가야 할 정도로 많지만, 대표적인 대화 한가지로 마무리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이건 내가 직접 겪은 대화이다.

 “근데, 너는 원래 시집가서 남편 돈으로 살려고 했던 거 아니었어?
그러니깐 지금 이렇게 힘든 것 아냐..”


 아니, 지금 내가 이렇게 된 게 내 탓이란 소린가? 사실 나는 여자가 애를 낳고 나서, 자기가 안 키우면, 애 엄마가 새끼는 버려두고 지 좋자고 일만 한다는 소리를 듣는 사회에서, 대체 시집가서 남편이 돈을 벌어오고 여자가 애기를 키우는 게 뭐가 잘못된 것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 말에는 이렇게 답했다. 궁색했지만 당시에 떠오는 대로.


 “저 임신하고 만삭 때까지 공부하고 일했어요.


첫째 7월에 낳는데, 6월까지 강의했어요. 입덧할 때나 막달에만 힘든 거 아니고 임신 내내 힘들었고, 중간에 양수 샌 줄 알고 나는 울고불고,  남편은 강의 하지 말라는 거 병원에서 별의별거 검사 다하고 양수 샌 거는 아니라는 것 확인하고서는 다시 일했어요. 애기가 7월에 태어나긴 했지만, 예정일이 6월 말이어서, 강의하러 가는 길에 애기 나오면 어떡하나 맨날 운전하면서 겁났어요. 그리고 7월에 애기 낳고 바로 그 다음 강의 9월에 복귀하고, 애기 낳고 백일도 되기 전에 다시 시작한 거에요. 조리원에도 논문 쓸것 준비해서 제일 큰 트렁크 한 가득 책만 갖고 갖고요.


남편이 주는 생활비가 모자란 것도 아니고 사실 그때는 애기도 없고, (생활비) 쓰고 써도 남았는데도 일했던 거에요. 나는 하고 싶었던 일과 공부가 있었던 거니까요.”



 근데, 그 대가로 나는 시댁으로부터 나는 니 하고 싶었던 것 하느냐고, 애기만 낳고 다른 것은 한 것 없는 여자라는 소리를 들어야 했고, 결혼 전부터 진행해 왔던 공부와 일들을 정말 코앞이 박사 학위고, 코앞이 교수인 상태에서 말도 안되게 다 그만 두고 눌러 앉은 거였다. 근데, 사실은 그게 아니라고 해도, 내가 아이 낳고 아이를 내 손으로 키우고 싶었다고 한들 그게 무슨 잘못이 되는 줄은 모르겠지만, 그분의 말은, 만약 그랬다면 그건 잘못이고, 그것이 너가 바로 이 상황에 처한 이유가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질문에 대한 그분의 그 다음 대답이 더 대단했다.

 “그래? 그럼 잘됐네. 그럼 이제 일하면 되지.”


 아.. 이거는 말인가 방구인가. 일하고 싶어 했었는데, 남편 죽어서 일하게 되었으니 잘 됐다는 소리인가? 사실 지금 생각하면 말 같지도 않은 말에 나는 당시에 이렇게 답했다.


 “근데, 저 2년 동안이나 일 안하고 주부로 지냈잖아요.
다시 일하는 거 사실 무섭고 떨려요.
일자리를 구할 수 있을지도 걱정되고,
구하면 어느 정도의 일자리나 구할 수 있을지도 걱정되고.
최저임금 자리 알아봐야 하는 건가 싶기도 하고요.”




 그래도 애는 엄마가 키워야지

 근데. 이렇게 말 같지도 않은 대화보다 더 웃긴 것은

 내가 이제 애기들 키울려고 앞으로는 일에 매진 해야겠다. 일에 몰입해도 애기들 제대로 된 교육 시킬 수 있을까 말까 일 테니, 나는 이제 일에 몰입하고, 애기 양육은 많은 남편들이 부인에게 맡기듯이, 나도 친정 부모님에게라도 맡겨야겠다 생각하면, 어쩌면 내가 첫째를 낳고 애기를 시댁에다 맡기고 일했을 때랑 똑같은 시선을 접해야 한다.


 “아니, 그래도 애기는 엄마가 키워야지. 그게 말이 돼?”
 “그러면 너 새끼 봐주는 니 엄마 인생은 뭐가 되니?”


 대체, 그때 내가 애기 키우기로 한 게, 주부가 되기로 한 게, 내 모든 일과 공부를 포기한 게 잘못이라며.. 그래서 내가 지금 남편 죽고, 집도 없고 돈도 없고, 직업도 없고 애만 둘 있는, 이 꼬라지가 된 거라며.. 근데, 이제라도 애기들 키워야 하니, 나는 이제 남편이 되어, 아내의 자리, 엄마의 자리는 아웃 소싱하고, 일하겠다 하니, 또 그때랑 똑같은 소리를 듣는 것이다.



 대체 나보고 어쩌라는 거지?


 이 대한민국에서 여자가 이런 꼴을 당하면, 너 혼자 알아서 살라면서, 나라를 비롯해서 아무도 안 도와주지만, 또 그래서 어떻게라도 살아보려고, 이제 내 스스로 남편이 되어서 아빠가 되어서 일하려고 하면, 또 그것 가지고도 다들 “아니, 어떻게 여자가 지 새끼를 다른 손에 맡기고 저러는가?” 하는 시선을 견뎌야 하는 것이다.



 죽으라는 소리겠지? 아마?


 (나는 안 죽고 살긴 할거다.


다만 혹시 이 글을 읽으시는 당신이 남자라면,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지금의 젊은 여자의 삶이 어떤지 조금이라도 이해해 주십사 하는 것이고,

말도 안 되는 소리들을 하지 말아달라는 것이고,

 그리고 혹시나 정치를 하시는 분들이거나, 여타 각지의 오피니언 리더들이시라면, 이런 여자들이 지금 이 시각에도 당신과 같은 하늘 아래 살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 달라는 것이다.


 그리고 당신이 젊은 여자라면,

 혹시 결혼을 아직 안 한 분이시라면, 결혼 안 해도 되고 애기 안 낳아도 된다고. 괜히 출산율 어쩌고 하는 것에 마치 죄인인 거 마냥 생각 안 해도 된다고 용기를 북돋아 주고 싶은 것이고,

 결혼을 하신 분이시라면, 힘내시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어차피 이리 살아도 저리 살아도 욕 얻어먹기는 마찬가지이니까, 그냥 욕이 밥이다 라고 생각하시고, 나 같은 여자도 안 죽고 살아서 애들 키우고 살 테니까. 나보고 힘내시라고 하는 것이다.)



 나는 옛날옛적에 왜 그렇게도 많은 여자들이 남편이 사망했을 때 아이들을 버려두고 떠나버렸는지에 대해서 이젠 이해한다. 나라에서조차 그렇게 하라고 유도하니깐. 적어도 양육비를 부담할 남편이 없는 사별 한부모에 대해서 보육원이나 입양가정에 지원해 주는 것보다는 더 큰 지원을 해주어 아이엄마들이 남편이 없어도 직접 아이를 혼자서도 충분히 키울 수 있도록 도와서 아이들이 원 가정에서 자랄 수 있도록 정부에서 아이들의 복지를 위해 힘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처럼 나 몰라라 하지 말고. 이건 그냥 애들 입양 보내던지 그러기 싫으면 애들이랑 같이 죽으라는 소리니까.










그리고, 제가 이 글을 쓴지 몇 년이 지났어요.

힘들었지만, 힘든 시간을 보내고. 어찌저찌 잘 살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너무 예쁩니다. 제게 수많은 통찰과 동기를 부여해주고 있습니다.

돈을 벌어 아이를 키우고 삶을 유지하는 것은 여전히 버거운 일이지만, 그래도 잘 살고 있습니다.

 

아이를 낳고 키우고, 일하는 것에 대하여 제가 최근에 얘기한 영상이 있어요.


유튜브 김경옥의 커리어스쿨,

아이와 커리어, 당신이 들어야할 대답

https://youtu.be/_ddkK6B142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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