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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살 아이가 금융을 이해할 수 있을까

빠를수록 좋다

by 추월차선

어린 시절, 나는 동네 오락실에 가는 것을 좋아했다. 천 원만 있어도 오락실에 가면 하루 종일 있을 수 있었고 세상에서 가장 큰 부자가 된 기분이었다. 나에게 있어 돈이란 오락실에서 얼마나 오래 놀 수 있느냐로 그 크기를 가늠했다. 하지만 부모님은 내가 오락실을 가는 것을 싫어하셨고 그런 것에 돈을 쓰지 못하게 용돈을 주지 않으셨다.

유일하게 용돈을 주실 때는 바로 저축할 때이다. 집안일을 돕는 착한 일들을 하면 천 원씩 주시면서 "은행에 저금해라"라고 하셨다. 그럴 때마다 나는 소중한 돈과 통장을 품에 안고 은행으로 갔다. 천 원, 이천 원 내 손에 있던 돈은 사라지지만 통장에 입금내역 한 줄이 적히는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서 통장을 서랍 속에 소중하게 보관했다. 돈의 개념은 없었지만 이렇게 돈을 모으면 내가 좋아하는 변신로봇을 언젠가는 살 수 있겠지라는 행복한 상상을 했다. 하지만 슬프게도 내가 그 돈을 찾은 기억이 없다.



우리는 자본주의 시대에 살고 있으면서도 돈에 대해서 잘 모른다. 학교 다닐 때도 전혀 몰랐고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잘 모르고 다녔다. 아버지가 평생 회사원으로 계셨기 때문에 돈은 월급으로만 버는 것이고 모으는 수단은 저축밖에 없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집을 팔거나 이사를 간 적도 없었기 때문에 부동산도 몰랐다. 주식은 아버지가 잠시 하셨다가 큰돈을 잃으셔서 우리 집에서는 금지되는 단어였다.

중학교 때 IMF를 겪으면서 자영업자들이 망하는 것을 보았다. 사업은 실패하면 가정이 무너지고 인생이 끝날 수 있다는 것도 느꼈다.

어른이 되어 회사생활을 10년 넘게 한 지금에서야 자본주의에 대해 어느 정도 알 것 같다.

월급과 저축으로는 안된다 주식도 부동산 등 돈이 될 수 있는 것들은 모두 알아야 한다.

사업을 할 때 성공 여부는 철저한 준비와 노력이다.

막연하게 퇴사하고 치킨집을 해야겠다고 생각을 하면 잘 될 수가 없다(놀랍게도 아직도 이런 생각 하는 분들이 주변에 많이 있다) 물론 개인이 운도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노력과 별개로 운이 따르면 생각보다 더 크게 돈을 벌 수도 있고 준비 했음에도 망할 수가 있다.

지금 당장 사업을 하기는 어렵지만 회사원을 평생 할 수 없으며, 회사에서도 직원들의 인생을 책임져주진 않는다. 결국 언젠가는 자신의 사업을 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다.




유태인들은 아이가 13세가 되면 성인식을 치른다. 이때 가족들과 주변 친척들이 2~3천만 원가량의 축하금을 준다고 한다. 그 돈을 단순히 저금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님과 함께 돈을 굴리는 투자를 한다는 것이다. 그로 인해 자본주의에서 돈을 투자하고 목돈을 마련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그런 교육이 없다는 것이 안타깝다.

그래서 는 유치원이나 학교에서는 가르쳐 주지 않는 금융지식들을 여섯 살 아들에게 가르쳐주기로 했다.


와이프는 저녁 운동을 나가고, 나는 여섯 살 아들과 함께 집에서 놀고 있었다. 함께 종이접기 놀이를 하면서 저녁을 보내던 아들에게 궁금한 것을 물어봤다.

"아들아 우리 가족은 부자일까 아닐까?"

"아니야" 아들은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왜 아니야?" 당연했지만 궁금해서 물어본다.

"내가 사고 싶은 장난감을 마음껏 살 수가 없잖아"

살 수 있는 장난감의 개수랑 비교하는 우리 아들은 아직 여섯 살이다. 내가 어릴 때 오락실에서 노는 시간과 비교하는 것과 차이가 없다. 어른이 되어보니 '아이들의 꿈은 정말 소소하면서 단순하다'라고 느껴졌다. 원하는 장난감이 생기면 금방 또 싫증 나고 다른 것을 원하게 된다. 그것을 깨우친 어른들은 그렇게 말을 하지만 아이들은 듣지 않는다 어렸을 때 나처럼.



할머니 댁을 다녀오면 우리 아들의 지갑은 두둑해진다. 양가 통틀어 하나밖에 없는 손자라 사랑도 많이 받고 용돈도 과분하게 받는다(아내와 나는 평소 아들에게 오백 원, 천 원을 주지만 할머니 할아버지는 만원 또는 오만 원이다)

다섯 살까지만 해도 돈의 개념이 없었다. 돈을 받아도 용도를 몰랐기에 고마워하지도 않았다. 소중히 다루지 않고 여기저기 뒀다가 잃어버린 적도 있었다. 지금은 지폐 중에서 '신사임당'을 가장 좋아한다. 자기가 좋아하는 장난감을 2개나 살 수 있기 때문이다(요즘에는 이만 원대 장난감에 꽂혀있다) 용돈을 받으면 90도로 인사를 하고 자신의 지갑에 고이 넣어 둔다. 얼마 전에는 지갑을 가방에 넣고 그 가방을 자기 전까지 매고 다니기도 한다. 이제 잃어버릴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다.



"아들아 은행은 무슨 일을 하는 곳이지?"

"은행은 돈을 저금하는 곳이야" 역시나 돈을 저금만 하는 곳으로 알고 있다.

이제부터 아이에게 새로운 이야기들을 해본다.

"은행에 돈을 저금하고 나서 네가 일곱 살이 되면 은행이 돈을 더 준단다. 만약에 천 원을 맡긴다면 천 백원이 될 수도 있어"

"정말? 왜 돈을 더 줘?" 아들은 눈이 커지면서 신기해한다. 어려운 이야기를 꺼냈으니 최대한 쉽게 설명하는 것이 관건이다.

"그건 아들이 저금한 천 원으로 은행이 일을 하거든, 일을 하고 돈을 더 벌게 되면 고맙다고 조금 더 주는 거야"

"그래? 그럼 은행에 돈을 많이 주면 많이 줘?" 역시 똑똑하다.

"당연하지 돈을 많이 저금할수록 은행이 더 일을 열심히 하고 고맙다고 돈을 더 준단다"

이미 아들은 신이 났다. 돈을 있는 대로 다 모아서 은행에 저금하겠다는 비장한 표정이었다.


"그런데 아들아 은행이 어떻게 열심히 일을 할까?"

"몰라" 아들의 당연한 대답이 돌아왔다.

"음.. 은행은 돈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돈을 빌려주고 그 사람들에게서 돈을 더 받아. 그렇게 하면서 돈을 버는 거야. 아들이 저금한 은행 돈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에게 빌려주는 거지" 그리고 잠시 뜸 들이다가 다시 이야기를 했다. "아빠도 은행에서 돈을 많이 빌려놨어"

"뭐라고? 왜 그랬어 아빠~?!" 여섯 살 아들의 놀란 표정은 너무 귀엽다.

"응 우리가 살고 있는 집 있지? 이거 사려면 돈이 더 필요했거든"

다행인지 아들은 아빠의 대출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었다. 자신의 소중한 돈만 신경 쓴다.




이번에는 더 어려운 주식 이야기를 해보았다.

"은행에 돈을 맡기면서 돈이 많아질 수 있었고, 이번에는 회사에 돈을 맡기는 방법이 있어"

"회사? 아빠 다니는 회사?" 회사의 개념부터 알려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들아 이 세상에 회사는 몇 개가 있을까?"

"천 개? 만개?" 아들이 자기가 알고 있는 최고 숫자를 말했다.

"그래 세상에 회사는 엄청 많아. 지금 아들이 앉아있는 의자를 만드는 회사도 있고 아들이 들고 있는 펜을 만드는 회사, 물컵을 만드는 회사 등 셀 수가 없지"

"그럼 그 회사들한테 돈을 맡길 수 있어?" 역시 이해가 빠르다.

"맞아, 우리는 이렇게 많은 회사들에게 돈을 맡길 수 있어"

아들이 어려워할 수도 있어 주식이라는 용어를 꺼내지는 않았다.

"그래도 나는 은행에 맡길래!" 누굴 닮았는지 안정적인 재테크는 예금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 듯하다.

"그런데 회사에 맡기면 은행보다 돈을 더 많이 준단다" 슬슬 유혹을 해본다.

"왜 회사가 더 많이 주는데?"

다시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다.

"왜냐면 회사가 은행보다 돈을 더 잘 벌거든, 우리가 맡긴 돈으로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고 우리에게 고맙다고 돈을 더 준단다"

"그래? 그럼 나는 회사에 맡길래!"

"그런데 아들, 회사가 셀 수 없이 많은데 모든 회사가 다 좋지가 않아. 어떤 회사는 천 원을 맡기면 이천 원을 주기도 하고 천 원을 그대로 주는 곳도 있고 오백 원만 주는 곳도 있어. 그러니 어떤 회사에 넣어야 할지 잘 생각을 해보고 골라야 해"

"응 알았어 아빠 잘 생각해볼게"


아들과의 유익한 대화는 이렇게 끝이 났다. 이 정도면 내가 해줄 수 있는 이야기는 다 한 것 같다. 이젠 여섯 살 아들과 같이 좋은 회사를 고르고 투자를 해는 것을 해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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