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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위한 명절인가

피할 수도 즐기지도 못하는 명절

by 추월차선

요즘 흔한 명절 풍경

연말에 회사에서 달력을 받으면 가장 먼저 빨간 날(휴일)부터 확인한다. 징검다리 휴가는 몇 개나 있는지 혹여나 주말이랑 겹치지는 않는지 걱정 반 기대 반이다. 그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나라 최대 명절인 설날과 추석이 언제 있느냐이다.

코로나가 이전에는 해외여행의 제일 성수기는 명절이었다. 해외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명절 찬스 때, 본인의 휴가를 더 붙여서 긴 여행을 갈 준비를 한다. 비행기표 예매하기 바쁜 주변 동료들도 매우 많았다. 명절이 시작되면, 뉴스마다 여행객들로 가득 차 있는 인천공항을 실시간으로 보여주다. 해마다 여행자 수가 역대 최고란다.

나는 보통 그런 뉴스들을 시골 할머니 댁에서 봤다.


보수적인 우리 집안

어릴 때는 잘 몰랐다. 우리 큰집은 산골짜기에 있는 초가집이었다(지금은 새로 지어서 좀 더 커졌다). 할머니는 6남 1녀를 낳으셨다. 그래서 명절때 식구들이 총출동하면 25명이 넘어서 항상 잘 곳이 부족했다. 그래서 아버지와 삼촌들이 차에서 자거나 마당에 텐트를 치고 잠을 잤다. 내가 살던 집이 시골집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어 명절 때마다 차를 4시간씩 타고 가야 했다. 그래서 어릴 때는 차 안에서 멀미도 많이 했고 힘들었던 기억이 있다. 차례는 항상 이른 새벽부터 지냈다. 그다음에 아침을 먹고 산마다 1개씩 있는 산소로 등산을 가야 했다. 너무 힘들고 하기 싫었지만 그런 분위기가 아니었기에 묵묵하게 했다.

명절이 끝나고 집으로 갈 때 부모님들은 많이 싸우셨다. 나는 그 이유를 잘 몰랐고 별로 알고 싶어 하지도 않았다.

명절 때 여행? 우리 집안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집안 어른들이 뭐라고 하시는 것도 당연하고 나보다는 부모님이 곤란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결혼 후 더욱 쉽지 않은 명절

결혼을 하고 나니, 그나마 혼자일 때가 더 편했다고 느껴졌다. 명절 때 찾아뵈어야 할 곳이 부모님 댁과 할머니 댁 외에 처갓집도 추가가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도 이제 '며느리'를 데리고 가야 했다.

나도 명절 때 찾아뵙고 친척들에게 일일히 인사하고 부담스러운 대화를 나누었던 것들이 너무 번거롭고 피곤했는데 그 와중에 며느리들은 음식도 준비해야 하고 설거지나 기타 자잘한 일들 때문에 더 힘들었다.

숙모나 큰어머니들도 좋은 시각으로 봐주시지 않는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 하던 내가 괜히 나서면 아내가 혹여나 시킨 것으로 오해를 사서 더 곤란해질 것 같아 난감하다. 결혼 전에 좀 허드렛일도 많이 도와드릴걸 하는 후회도 든다.

어머님도 자기가 하던 일들을 며느리에게도 시키고 싶어 하지 않아 계속 쉬라고 이야기를 해주시지만 아내의 마음도 편하지 않다.

아내도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나에게 불평불만을 한다. 도 아내에게 너무 미안했다. 날 보고 시집을 왔는데 이런 고생을 시키니... 그냥 멀리 떠나서 살아야 하나 이런 고민만 했다.



부부간의 배려

위에서도 이야기를 했지만 우리 부모님도 명절 때 많이 다투었다. 결혼을 하고 나니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여자들은 날카로워질 수밖에 없고 남자들도 눈치 보느라 마음이 편하지가 않다. 서로 답답한 마음에 티격태격하다 싸움으로 번지는 것이다.

명절? 나라에서 부부간에 싸우라고 지정한 날은 아니다. 태어난 집안을 탓하는 것 방법이 아니다.

부부간의 힘든 일은 잘 들어주고, 서로 배려해주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정말 아내가 힘들어하면 한 번쯤은 패스도 하고 그래도 가야 한다면 눈치는 좀 받더라도 아이와 아빠만 가보는 건 어떨까. 무슨 일을 해도 최선이라는 것은 없지만 부부관계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올 추석은 코로나 문제도 있어 명절 전에 조용히 부모님 댁만 다녀왔다. 시골에도 가지 않을 생각이다. 한두 번은 더 가능할 것 같다.

부모님이 적적한 명절을 보내실 것 같아 마음이 편하지는 않다. 조금이라도 더 자주 뵙고 전화통화라도 자주 드리면서 부모님이 서운하지 않게 해 드리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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