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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크로치 Jul 04. 2023

지옥철을 곁들인 출근의 가치를 이해한다면

퇴사 이후의 일상이 그리워진다



오늘도 출근은 계속된다.


그리고 지각하지 않기 위해 열불 나게 뛰었다. 9시 1분 전인, 8시 59분에 출입증을 리더기에 댔다. 이로써 지각은 면했다. 오늘은 다른 날보다 더 일찍 일어나 준비했음에도 불구하고, 되려 일찍 일어났다는 안도감에 미적거린 탓에 평소보다 늦은 시각에 집을 나섰고, 웬일인지 탑승한 지하철에서도 앞선 열차에 민원신고가 들어와 한 정거장에서 오래 머물러 평소보다 더 늦은 시각에 회사에 도착했다.   


이리저리 시간을 아끼려 지하철 역내에서, 신호등 앞에서, 회사 건물 내에서 뛰어다녔던 탓에 일찍 일어났다고 아침으로 라면 하나를 든든히 챙겨 먹었던 게 속에서 뒤섞여 올라오고 있는 중이다. 하필 매운 라면을 먹어서 식도가 아리고 맵다. 소화제라도 가방에 넣어 다닐걸 하고 후회가 되는 지금 이 순간, 어쩔 수 없이 여름대비용으로 회사 캐비닛 안쪽에 처박아둔 오뚜기 매실맛 아이스티를 꺼내든다. 진하게 한 잔 타서 글을 쓰기 위한 원료로 사용해보려고 한다.


나 자신이 야근이 잦다거나 주말근무도 불사한다거나 쉴틈 없을 정도로 업무강도가 높은 직종에 근무하는 것이 아니라서 더더욱 잡생각에 빠지기 쉬운 환경에 놓여있다. 어느 날은 지각을 겨우 면할 정도로 빠듯하게 준비해서 집을 나서기도 하고, 또 어느 날은 30분에서 1시간 정도 더 먼저 출근하여 여유를 만끽하기도 한다. 지금 작성하려는 출근에 대한 짧은 고찰은 출근길에서의 모든 순간들을 모아낸 것이다. 별다른 이야기 일지는 모르겠다.



평일카페



만약 내가 백수라면, 아침 8시부터 18시 사이의 시간에 가고 싶은 곳에 갈 수 있다. 즉 나는 지금, 직장인이기 때문에 놓치는 기회비용을 모색하고 있는 것이다. 백수 신분의 나는 당연히 잠도 더 잘 것이고, 충분히 느지막이 자고 일어나서 서늘한 아침공기를 제치고 카페에 가서 빵 하나와 함께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여유를 누릴 수 있다. 상상만으로도 여유롭다. 학교를 갓 졸업한 작년의 나는 당장 서울에서 지내려면 돈을 벌어야 했기 때문에 백수를 꿈꾸지 않았다. 갓 1년도 지나지 않았지만 지금의 나는 작년의 나와 다르다.


지금의 나는 얼마 안 되지만 가진 것에 만족하고 살 수 있다면 쉬어가도 좋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두고 보니, 사람 마음 참 간사하다. 물론 간사한 나라고 해서 당장 회사를 그만두지는 않을 테다.


두어 달 전 채용면접을 보았을 때, 면접관께서 계약기간을 다 채울 수 있느냐고 물으셨었고 당연히 나는 그러겠노라 답했다. 정말로 당장 특별한 계획이 없기에 계약기간 동안 근무가 가능할 것으로 판단되었으니까. 누군가는 면접을 위해 거짓말이라도 불사해야 하는 것이라 말할지도 모르겠지만, 나와 비슷한 계열의 전공자들이 모두 모인 곳이자 높으신 선배님들이 계시는 이곳에 입사하면서 나로서는 거짓말을 할 이유는 없었다. 일하던 중간에 내가 빠지게 되면, 다시 복잡한 채용공고 과정을 짧게는 몇 주, 길게는 몇 달을 거쳐야 하므로 이러한 번거로움을 제공하게 되는 일은 만들지 않는 것이 여러모로 모두에게 유익하다.


그렇기에 계약기간까지는 어떻게든 몸과 정신을 다스려 가면서 출퇴근을 반복할 예정이지만,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매너리즘에 빠지고 특별할 일 없는 매일이 지겨워지는 건 우려에서 사실로 변모해 갔다. 정규직처럼 매년 15개 이상의 연차휴가가 나오는 것도 아니며, 야근 시 보상휴가가 생기는 것도 아니기에 겨우 한 달 만근 시 생겨나는 1개씩의 월차로는 지겨워지는 일상을 다스리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남들처럼 쉬고 싶을 때 하루 연차 내고 서울 내 맛집이나 카페를 오픈런을 한다거나, 오전 시간대에 공원을 걷는다거나, 드라이브를 다녀올 수 있다면 지금보다는 더 여유롭게 직장생활을 즐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은 남는다. 지금의 지긋지긋한 출퇴근 일상에 대한 기회비용이라고 한다면, 나에게는 평일에 대입하는 주말 루틴일 것이다.  



지옥철은 사라질까



지금의 내가 그 무엇보다 직장생활이 지긋지긋한 이유는, 출퇴근 길의 지옥철에서 마주하는 여러 에피소드 때문이다. 나에게 일어난 건 그다지 심각한 일이 아니지만, 나는 또 다른 사건들의 목격자로서 제3자로서 그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전해진 충격이 적지 않다.


요즘같이 살이 부대끼고 습하고 더운 여름이 아닌 때에는 잠을 선택하고 가장 지하철이 붐비는 시간대를 이용해 왔다. 그렇게 가다 보면 꼭 며칠에 한 번 걸러 바로 옆에서 싸우는 소리가 들린다. 주요한 패턴은 나이대를 불문하고 남성과 여성이 언성을 높이는 것인데, 대략적인 사건 개요는 이렇다. 사람이 워낙 많다 보니 급정차나 커버길을 지날 때 여러 사람들의 힘에 의해 혼자 버틸 수 없게 되어 옆 사람에게 닿게 되고, 여차하면 밀치게 된다. 여기에서 밀고 밀치는 주체의 성별이 고정되어 있지는 않으나, 대개 밀치는 상대가 남성, 밀처치는 상대가 여성인 경우에 고성이 들려왔던 적이 많다. 밀쳐진 주체는 밀지 말라고 하는 것이고, 밀친 주체는 어쩔 수 없이 밀쳐지는 걸 어쩌냐는 거냐라는 것이다.


밀쳐지는 상대도 힘들겠으나 짜증 섞인 목소리로 언성을 높이지 않았다면 밀친 상대도 미안한 마음이 있으니 제대로 사과를 할 것 같은데, 다짜고짜 기분 나쁘다는 티를 대놓고 내니까 고의가 아닌 밀친 상대의 기분도 언짢게 되는 것처럼 보였다. 또 다른 날에는, 할아버지와 젊은 여성이었다. 처음에는 여성 분께서 최대한 화를 내지 않고 조용히 해결하려던 것 같았는데, 몇 분 후에는 큰 소리로 번져있었다. 할아버지가 젊은 사람이 어쩌고, 여자가 어쩌고, 여러 가지의 쌍욕을 곁들이시며 읊조리고 계셨던 것이다. 바로 옆에서 자기를 겨냥한 쌍욕을 듣는 사람 입장에서 기분이 나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여성 분이 결국 화가 나서 욕하지 마시라며 승을 내시고 있던 도중, 나는 내려야 했기에 하차했다.


이른 아침에 달갑지 않은(?) 회사를 가는 마당에 예민하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으랴 싶으나, 서로 조금 더 배려하고 양보하고 참는다면 발생하지 않았을 일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만성적으로 화를 잘 내지 않는 나조차도 지옥철에서는 참을 인을 마음속으로 여러 번 그렸다.


대체로 사소한 것들이지만, 상당히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경험들이다. 예를 들면,


- 바로 옆(말 그대로 바로 옆, 10센티 간격도 안 되는)에 있는 쇠봉을 잡지 않고 나한테 기대어 중심을 잡던 중년 아줌마. 그런데 바로 옆에 있는 쇠봉은 놔두고 팔꿈치를 90도 가까이 세워서 내 옆구리를 찍으면서 중심을 잡는 건 정말 이기적으로 보였다. 사람들 틈에 끼어 본인이 쓰러질만하면 날카로운 팔꿈치로 내 옆구리를 찍어댔다.


- 주로 중년에서 노인 분들 몇몇 중에서 보였던 모습인데 노약자석 근처에 서있다가 타시는 분들 중에서는 그 주변마저 비키라고 팔로 미시는 분들이 계셨다. 노약자석에 자리가 나면 빠르게 앉으시려는 생각이었지 않을까 싶지만, 노약자석에 앉은 것도 아니고 주변부에 서있는 것까지 억척스럽게 팔꿈치를 들어 밀어내어야 하는 이유가 뭔지 궁금해지는 순간.


- 이 또한 중년에서 노인 분들이다. 자신의 짐을 내 옆에 내려놓으면서 내가 자신의 짐에 닿지 않게 가만히 서있던 나를 손바닥으로 때리던 분도 계셨다. (순간 나를 찰싹 때리실 때 '어? 이게 뭐지? 왜 때려?'라는 생각이 드는데 너무 어이가 없어서 아무 말도 안 나왔다.)


- 이 외에 환승역에서 정말 안간힘을 써서 사람들을 밀고 밀어 타시려는 분들, 적당히 밀었다가 안 밀리면 타지 않는 게 모두의 안전을 위해서 정말 중요하다. 압사사건의 위험성에 대해서라면, 매일의 지하철 탑승을 통해 간접체험을 하는 중이다.


팔꿈치로 밀고 어깨로 밀고 발로 밟고... 정말로 어쩔 수 없는 힘에 의해 실수로 다른 사람들의 몸을 건드리게 되는 일들이 비일비재하지만, 알면서도 조심하지 않고 핸드폰만 보고 있는 분들도 많다는 것을 봐서 알기에. 이런 모습들을 자주 보게 되다 보니 누적이 되어 출퇴근 시간대 바글바글한 사람들을 보고 있노라면 토가 나올 지경이다. 이래서 출근시간을 30분에서 1시간 정도 앞당길 수밖에 없었다.


옷이 얇아지는 여름에는 특히 더 껄끄럽다. 내가 모르는 타인의 살이 닿는 것도 불쾌하지만, 타인의 체취가 너무 강렬하게 난다. 이 또한 여러 번 다니다 보면 땀냄새야 익숙해질지 모르겠다. 그러나 애초에 땀냄새가 좋은 향기가 아니기 때문에 이로운 기억으로 남지는 않는다. 땀냄새뿐만 아니라, 여러 사람들이 모이면 해당공간의 온도도 올라가기에 여러모로 내 몸에는 좋지 않게 된다.


출근길만 앞당겼을 뿐만 아니라 퇴근길도 똑같이 30분에서 1시간을 뒤로 미루었다. 어차피 회사에 나와서 더 개인공부를 하면 좋을 것이란 생각으로 시작하게 되었다. 다만, 그만큼 집에서 쉬는 시간이 줄어들고 잠을 못 자게 되는 날도 더러 있어 평소대로 나오는 날도 있기도 하다. 아직은 1시간 일찍 출근하는 루틴이 몸에 배지는 않았기에 앞으로 7~9월 간 습관을 제대로 들여야 할 것 같다. 그러다 보면, 지옥철이 사라지길 바라는 나의 마음도 덜해지지 않을까.



경력



그렇게도 싫어하는 지옥철을 거치면서 내가 회사를 다니는 가장 큰 이유는 생활비 마련이겠다. 일을 하지 않고서야 돈이 나올 구석이 없으니까 어쩔 수 없이 회사를 다니는 것이다. 곧 학교로 들어갈 터이니 잠시동안의 직장생활을 견뎌내는 것이랄까. 물론 잠시라기에는 몇 주, 몇 달도 아니고 곧 1년째가 되어가지만. 돈과 함께, 전공분야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 경력을 쌓을 수 있는 것은 부차적이다.


이번 계약이 만료되면 최소한 한 두 달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볼까 한다. 벌써부터 계약 이후의 생활을 그리는 나, 이런 걸로 위안을 삼는 나를 보면, 어지간히 서울에서의 출퇴근이 싫었나 싶다. 서울에서 경기도로 잠깐 출퇴근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에는 이루 말할 것도 없이 예민한 상태였다. 잠이 덜 깬 채로 정신이 몽롱한 상태로 두 달을 지속했다. 일상생활이 제대로 될 리가 없었고, 회사에서 일하는 도중에 나도 모르게 책상 앞에 앉아서 잠이 들어 코를 곤 적도 몇 번 있을 정도였다. 그래, 이 정도면 어지간히 싫은 게 아니고, 그냥 완전 너무 싫은 거다.


어찌 됐든 1시간 앞당기고 뒷당긴 출퇴근 시간이 지금으로서는 대안으로 보이므로 이 생활을 계약만료 때까지 유지하도록 해야겠다. 그래야 지하철 속에서도 인류애를 발견할 수 있고, 개인공부할 시간을 더욱 확보할 수 있을 테니. 다행인 건 계약만료 시점이 머지않았다는 것.


퇴사하고 나면, 평일 오전에 카페에 가서 여유를 즐기고 싶다. 그리고 카페에서 커피를 마신 뒤에는 공원을 걸으며 고요한 세상의 소리를 듣고 싶다. 그때즈음이면 겨울일 테니 남들 일할 시간에 나는 집에서 귤 까먹으며 보고 싶었던 드라마와 영화를 보고, 배가 고파지면 평소에는 사 먹어보지 못했던 음식을 사 먹거나/시켜 먹고, 허기진 배를 채운 후에는 사람들이 붐비지 않는 시간대에 근처 공원에 나가 러닝을 하고 들어와야지. 러닝을 하고 들어오면, 개운하게 씻고 침대에 누워 읽고 싶었던 전자책을 읽는다. 적어도 하루는 이렇게 살아보고 싶다. 이 하루를 위해 앞으로의 몇 개월을 천천히 버텨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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