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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믈리연 Sep 16. 2022

8시간 이상 잘 수 있는 이유...

나에게 30분이란...

"언니, 전자책 한 번 써보는 게 어때요? 언니가 꼭 썼으면 하는 주제가 있어서요."

"그게 뭔데?"

"언니 시간 관리하는 거요. 맨날 8시간 이상 잔다면서, 언제 그 많은 걸 다하는지 예전부터 신기했거든요.

나는 매일 미라클 모닝 하고 시간 배분한 거 일일이 기록 다하는데도, 언니처럼 그 많은 걸 다 하진 못하거든요."


단 한 번도, 시간관리를 잘한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주변 사람들에게 전해지는 내 시간은 아니었나 보다. 몇 년째 이런 이야기를 자주 듣지만, 들을 때마다 낯설다. 10분, 30분이라도 움직여서 그런가, 기억 속 필름을 되감아 보았다.


25살. KTX 승무원으로 입사하며 부산으로 발령을 받았다.

대구에 있는 우리 집에서 부산역까지 출근 시간만 2시간이 소요됐다.

버스 타고 동대구역까지 50분, 부산역까지 1시간 10분.(그땐 이 구간이 고속철 구간이 아니었다.)

마냥  위에, 철길 위에 버려지는 시간이 기회였다. 버스에서는 서서 가는 일이 많으니 어쩔  없이 50분을 버렸지만, 기차에서의 1시간 10분은 꾸미기 좋은 시간이었다. 사람들이 선호하지 않는 역방향 출입구 안쪽 자리에 앉아, 화장을 하고 머리를 정돈하면 30분이 훌쩍 지난다. 남은 30 동안, 출입구 구석 모퉁이에 머리를 끼워 넣고 쪽잠을 잔다. 입사 초반   달은 그렇게 시간을 썼다. 그런데, 손님들은 같은 시간 다르게 쓰고 있었다.


KTX 첫차가 대전-서울, 천안아산-서울 구간에 다다르면 17,18호차의 자유석 객실은 출퇴근 손님으로 만석을 이룬다. 객실과 통로에 서있는 고객과 자리에 있는 고객들의 행동이, 나를 반성하게 했다. 그들은 30분, 50분이 소요되는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았다. 많은 이들이 독서를 하고, 신문을 읽고, 노트북으로 업무를 봤다. 더 신기한 건, 서 있는 손님들조차 그런 자세에 익숙해있었다. 나도 그들처럼 기차를 타고 출근하는데, 나는 왜 화장을 하고 쪽잠을 자는데 쓰는 것일까.


그때부터였던 거 같다. 시간을 쪼개 쓰는 거.

손이 빨라지면서 화장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단 10분. 나머지 한 시간 동안은 굿모닝팝스를 들었다. 입사 3개월 차 때, 사내 온라인 사이트에서 갖고 싶은 추석 선물을 고르라고 했다.

그날이 내 생애 처음으로 애플을 영접한 날이다. 손바닥 안에 쥘 수 있는 아이팟을 받았고, 우연히 팟캐스트를 듣게 되었다. 고등학생 시절 EBS 방송에서 보던 이근철 선생님이 진행하는 굿모닝 팝스의 '스크린 잉글리시'를 들으며, 심장이 터지는 줄 알았다. 매일 방송하는 굿모닝팝스를 들으며, 출퇴근 시간의 농도는 서서히 진해졌다. 부산으로의 출퇴근은 대구지사로 옮기면서 3년 만에 끝이 났지만, 굿모닝팝스는 7년 동안 거의 매일 함께 했다.


아이가 한 명일 때만 해도 틈틈이 배움을 이어가긴 했다.

재취업 준비를 위해, 아이가 하루 2번 낮잠 자는 틈을 타서 온라인 강의를 들으며 토익공부를 했다.

아이가 두 명이 되자, 낮 대신 늦은 밤에 독일어 기초 특강을 듣거나 영어회화를 시청했다.

그때만 해도 이렇게 시간을 흘러 보내는 게 아까워서 뭐라도 하고자 하는 마음에 했던 거라

지금은 머릿속에 남는 게 하나도 없다.


두 아이 모두 어린이집, 유치원에 가면서부터는 5시간 정도가 매일 생겼다. 한 시간 이상의 여유가 있으면, 오히려 느슨하게 움직였다. 독서, 공부, 학원, 블로그, 인스타, 운동을 매일 같이 했고 최대 효율로 시간 분배를 한 지 4년 차다. 지금도 내가 앉아있는 주방 뒤 벽면에는 전지 크기의 포스트잇이 붙여져 있다. 다이어리에 쓰거나, 작은 메모지에 할 일을 쓰면 일일이 펼치지 않아 건너뛰는 것들이 꼭 있어 방법을 바꿔 냉장고보다 더 많이 지나는 곳에 붙여 오며 가며 수십 번씩 보고 체크한다.

블로그, 인스타, 스픽, 브런치, 독서, 필사, 운동이 매일 할 일이다.

하나씩 할 때마다 줄을 긋는다. 줄을 긋는 찰나의 행위가, 잘하고 있는 중이란 신호체계다.


친구들과 부산을 다녀온 날, 아이들이 오기까지 30분이 남아있었다.

"그동안 뭐하지? 연습장이나 가야겠다."며 혼잣말을 내뱉었는데, 옆에 친구가 놀랐나 보다.

"나는 30분은 안된다고 버리는데, 굳이 또 뭐라도 하는구나!"

세상 부지런한 친구가 나에게 하는 말을 들으며, 내가 정말 시간을 쪼개고 비틀어 쓰고 있나 보다 했다.

이제는 이렇게 사는 게 익숙하다. 눈을 뜨고 있는 동안, 최대한 부지런히 사는 것.

그게 바로 침대를 가장 좋아하는 내가, 8시간 이상 잠을 잘 수 있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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