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7월의 마지막 날. 이제 막 자정을 지난 00시 28분.
한방에는 5학년 두 명, 다른 한방에는 3학년 한 명 그리고 4학년 한 명이 있다.
침대에 누운 지 1시간이 지났지만, 소곤대는 말소리가 닫힌 문틈 사이로 흘러나온다.
열흘 전부터,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이래저래 신경 쓸 일이 많아 몸에 탈이 났나 보다. 오른쪽 눈 밑에 염증이 생겼다. 항생제를 먹어야 하지만, 부작용을 가진 터라 복용을 자제했다. 의사 선생님은 안약만 넣는 대신 무조건 쉬어야 한다고 했다. 알면서도 움직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지난주 금요일. 엉망이 된 집을 더는 두고 보기 힘들어 청소를 했다. 조금만 하려 했는데 구석구석 밀고, 닦고, 화장실 청소까지 해버렸다. 원래 락스 냄새만 맡아도 눈물이 찔끔거리는데, 그날따라 눈물이 엄청 쏟아졌다. 소량만 쓰고, 문도 다 열었는데 무리가 됐나 보다. 항생제 안약과 인공 눈물을 넣어도 뿌옇게 보였다. 다음날, 아프다가 괜찮길 반복했다. 약만 잘 넣으면 되겠거니 하며 정리를 마치고 산책을 나섰다. 갑자기 오른쪽 눈이 잘 떠지지 않았다. 부어오르는 게 느껴졌다. 휴지를 꺼내 눈두덩이에 올리니 피가 묻어났다. 그대로 집으로 돌아왔다. 거즈 손수건으로 눈을 눌렀다. 멎을 듯 멈추지 않았다. 주말 밤이라 갈 수 있는 병원이 없었다. 간다고 해도, 진료를 받을 수 있을지 알 수도 없다. 여기저기 수소문해도 지혈하는 게 우선 이랬다. 거즈 손수건으로 20분, 30분 간격으로 눌렀다. 세 시간이 지나서야 멈췄다.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을 수도 있는 양이 두 개의 손수건을 적셨다. 긴장이 풀렸는지 그대로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손수건에 물을 묻혀 굳은 피 때문에 붙은 눈꺼풀을 위아래로 조심조심 뜯었다. 그러고는 뒤통수가 납작해질 만큼 종일 누워 있었다. 밤새 자고 또 자고 월요일을 맞이했다. 일주일 정도 더 쉬는 게 좋겠다는 의료진에 말에, 외부 일정을 전부 취소하고 집에만 있기로 했다.
오후가 지나자 점점 컨디션이 좋아졌다. 간단한 외출 겸, 학원에 있는 아이를 데리러 나섰다. 휴가철이라는 게 절로 느껴질 정도로 도로가 한산했다. 뒷좌석에 앉은 첫째가 구시렁거렸다. 방학인데 방학 같지 않다고. 여행 가는 기분도 안 난다고.
그러던 중,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둘째 딸이 악기를 하는데, 대회 연습하러 4일 동안 서울에 가 있을 거라 했다. 그럼 첫째 아들은 어떻게 할 거냐 하고 하니, 데리고 가고 싶은데 아이는 안 가려고 해서 고민 중이라 했다.
"그럼, 우리 집으로 보내."
"너 아프잖아?"
"그러니까. 우리 애들만 집에 있으니까 그것도 안쓰러워.
이번 주는 애들 아빠도 집에 있고, 원래 잘 지내는 애들이라 내가 할 일도 없을 거 같은데."
고민해 본다는 말에, 그냥 보내라고 했다.
오늘 오후 2시. 친구 아들이 집에 왔다. 두 달 만에 만나는 아이들은 쌓인 말이 많은지 끊임없이 수다를 떨었다. 축구공으로 한참을 놀다가 저녁으로 돼지국밥을 먹으러 나섰다. 맛있게 배 채우고 돌아와 다시 놀던 중에, 첫째 아들이 친구 한 명만 더 불러도 되냐고 했다. 아이의 절친이자 원래 다 알고 지내던 사이라서 그러라고 했다.
저녁 9시. 남학생 네 명이 모였다. 그들만의 즐거운 소리가 집안을 채웠다.
한 시간 뒤, 배고프다며 모인 아이들. 식탁에 도란도란 둘러앉아서 컵라면을 먹으며 새로운 대화를 이어갔다. 포도, 요구르트, 칸쵸를 먹으며 올림픽 경기를 보고 있으니 어느덧 11시다. 씻고, 잠잘 준비를 마치니 11시 반. 5학년들은 5학년끼리, 동생들은 동생들끼리 헤어졌다. 닫힌 방문 사이로 새어 나오는 그들의 대화와 웃음소리. 누운 지 한 시간 반이 지나서야 조용하다.
덥고, 습하고, 사람 많은데 있는 것보다 이렇게 노는 게 더 좋다는 아이들.
일주일 내내 집에만 있어야 했다면 얼마나 심심했을까. 나는 또 얼마나 미안했을까.
내일은 뭐 하고 놀 거냐고 하니 나름의 계획이 있단다. 아침 10시 반에 일어날 거고, 오후에는 도서관에 갔다가 저녁에는 또 다른 거 하고 놀 거란다. 오늘이 그들에게 오랜 추억으로 남길 바라며, 쉬이 잠 못 이루는 아이들처럼 나도 잠 못 이루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