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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대로, 엄마대로 좋았던 장소

아이는 아이대로, 엄마는 엄마대로 가장 좋았던 장소

by 소믈리연

내가 살고 있는 도시는 수도권만큼 높은 빌딩과 건물로 둘러싸여 있진 않지만, 높은 건물과 빌딩이 밀집되어 있고 교통량이 많은 편이다.

사방으로 길이 잘 연결되어있어 도심지뿐 아니라 외곽지로의 접근도 용이하다. 한적할 여유가 없는 도로와 무언가에 쫓기듯 바쁘게 걷는 사람들 속에서, 놀이터에서 깔깔거리고 웃는 아이들의 모습은 흔하지 않다. 촌각을 다투듯 빠르게 움직이는 사람들, 특히 이 도시의 사람들 대다수가 말투며 속도며 늘 빨리빨리를 외친다. 나도 별반 다를 바 없지만...

치앙마이에 왔을 때, 아이들은 지천에 널린 허허벌판과 동식물의 냄새에 당황해했지만 행인들은 그러지

않았다. 사람들은 대개 여유로웠고, 인사성이 밝았으며 미소 가득한 친절이 가득했다. 높은 건물보다는 낮고 넓은 주택가들이 많았고, 오토바이나 자전거를 많이 만났다. 길에 있는 커다란 개들 조차 움직임이 느렸고, 사람을 봐도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


아이들을 데리고 키즈카페라는 곳을 처음 갔던 날, 잘 못 찾아온 건가 싶어 입구에서 한 참을 두리번거렸다. 내가 생각하는 키즈카페는 화이트나 파스텔 톤의 밝고 깔끔한 실내공간에 다양한 부피와 크기로 만들어진 장난감으로 가득 차 있어야 하고, 커피타임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이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다.

입구에서부터 흙과 지푸라기, 나무판자 같은 것들이 있었다. 숲 유치원을 다닌 첫째는 매주 한 번씩 산으로 숲으로 체험을 다녔기에 이런 공간이 익숙했고 고팠다. 오랜만에 자연을 만난 아이처럼 신발을 벗고 이내 흙속으로 뛰어들어갔다. 모래놀이할 수 있는 것들이 준비되어 있어, 가까이에 있는 수돗가를 찾아 물을 틀고 받아 옮기며 진흙으로 터널 만들기 놀이를 했다.

직사광선으로 내리쬐는 햇볕에 모자와 선글라스 둘 다 쓰고 있는 게 자칫 과해 보일까, 둘 중하나 만 걸친 채 아이들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내가 어린 시절에 타던 것처럼, 직사각의 반듯한 네모 판자로 된 그네 의자에 앉아 줄을 잡고 앞 뒤로 이동했으며, 엉성하지만 커다랗게 만들어 놓은 정글짐 안에도 들어가면 나올 줄을 몰랐다. 자연 속에 있으니 아이들은 심심할 겨를이 없었다. 또 다른 키즈카페는 머드체험이 있었다.

팬티 하나 달랑 입고 슬라이드 위에 올라가서 내려오면 어깨까지 내려오는 머드가 가득 채워진 곳으로 떨어진다. 엄마 눈에는 살갗이 다 타버리면 어쩌나 싶지만, 머드 안이 차라리 시원하다며 타고 또 타고를 반복한다. 간이 샤워장이 있어, 나오기 전에 아이들을 대충이라도 씻긴다. 치앙마이에 있는 동안은 가방 속에 늘 여벌의 티셔츠와 코끼리 바지를 넣어 다녔다.

부피도 작고 가벼워 휴대하기 편했다.

아이들에게는 자연 속의 키즈카페가 있었다면,

나에게는 자연 속의 카페가 있었다.

당시만 해도, 커피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몸이 카페인에 적응을 잘하지 못할 때라, 에스프레소나 아메리카노를 먹는 대신 늘 라테 한 잔을 주문했다. 놀이터에서 아이들이 노는 동안에도, 나는 커피 한잔을 주문해서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바라보거나 책을 읽곤 했다. 님만해민이나 올드시티, 치앙마이 대학교 부근은 나름 번화가여서 인테리어가 멋지고 분위기가 좋은 카페가 많다. 라테아트 대회에서 세계 챔피언쉽을 거머쥔 운영진이 있는 카페는 그야말로 관광객들로 인산인해다. 그런 곳도 좋지만 진주알 속에 숨은 보석이라도 찾는 것처럼, 번화가를 지나 골목이 나오면 조금만 더 안쪽으로 들어간다. 그러면 대개 숨어있는 작은 카페를 만날 수가 있다. 한국에서 내가 살고 있는 지역도 카페가 가장 많은 도시이긴 하지만, 치앙마이에 있는 카페 수도 만만치 않다. 대부분 '라 발라 조코'라는 한 대에 2000만 원에 가까운 커피머신이 있는 것만 봐도 이 도시 사람들의 커피사랑과 전문성을 짐작할 수 있다. 초록 초록한 자연에 둘러싸여 작은 테이블에 자리 잡는다. 커피 한 잔을 주문하고 노트북을 켠다. 어제 일을 포스팅하고, 책을 읽는다.

모기가 많아도 개의치 않는다. 잔잔히 흘러나오는 음악도 좋지만, 자연의 소리도 백색소음처럼 좋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앉아있는 것만으로도 행복이라는 감정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골목 안으로 조금 더 들어왔을 뿐인데, 의외로 자리가 없는 경우도 많다.

여행책자에 나와있는 곳을 크게 선호하지 않는 나 같은 사람이 많은 것인가, 아니면 현지인들에만 유명한 곳인가 싶을 정도로 괜찮은 곳이 많다.

수제 케이크, 수제 마카롱, 수제 간식 등 카페에서 직접 디저트를 만드는 곳도 많다. 숨은 카페를 찾아가는

발걸음은 언제나 통통 튈 수밖에 없었다.

다시 치앙마이 여행을 앞두고 뭐가 가장 하고 싶을까 적어내려 갔다.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이 바로 일렬로 들어서 있는 나무들과 거리, 그리고 카페였다.

여유와 쉼을 선물해줄 조용한 카페를 찾아다닐 생각만 해도, 충만한 설렘이 다가온다.

자연 속 키즈카페와 카페, 여기가 바로 가장 좋은 추억을 만들어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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