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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떠난 이유

그 중 한 가지

by 소믈리연

2018년 여름, 아이 둘과 함께 떠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현실도피였다.

유치원과 어린이집에서 돌아오는 두 아이들을 데리고, 저녁까지 시간 보내는 게 쉽지 않았다.

하루를 보내는 게 아니라, 버틴다고 해야 하나.

남편은 매일같이 늦게 들어왔고, 주말에도 나갔다.

마치 혼자 낳은 것처럼 3인 1조로 함께 하는 날들의 버거움이 차곡차곡 쌓여갔다.

주말에 놀이터에 나가면, 친구 아빠들이 있다. 그 모습을 보면, 둘 중 하나는 꼭 말한다.

" 아빠가 집에 있어서 좋겠다. 우리 아빠는 주말에도 일하는데"

어떤 날은, 다른 가족 나들이에 끼기도 한다. 엄마 둘에 아빠 하나, 엄마 셋에 아빠 둘, 엄마 넷에 아빠 셋.

많은 인원이 모인 날은 그나마 아이들끼리 어울려 다니느라 아빠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질 틈이 없다.

그것도 한두 번이지, 아이들 데리고 나타나는 나 자신이 너무나 자그마해졌다.


그즈음, 한 달 살기가 유행이었고 특히 치앙마이 한 달 살기가 유독 그랬다.

5-6시간의 멀지 않은 비행거리, 저렴한 물가, 치안이 잘 된 도시, 숙소 등 엄마 혼자 아이들을 데리고 여행해도 안전할 만한 장점이 많았다. 휴가철에는 다들 가족들과 떠나기도 쉽지 않으니, 우리도 멀리 떠나보자는 마음이 먼저, 열 걸음 앞섰다. 그렇게 장소만 바뀐 독박 육아를 택하며 치앙마이로 떠났다.


사전에 많은 정보를 탐색하고, 공부했다 하지만 책을 통해 상상하던 것과는 사뭇 달랐다.

도시라 하기엔 한 창 개발 중인 변두리 느낌이 강했다. 땅덩어리는 어찌나 넓은지, 가 볼 것도 많았다.

한국인뿐만이 아니라 미국 유럽 관광객들도 넘쳐났다. 오지 않았다면 몰랐을 텐데, 머물수록 매력 있었다.

명품 매장이 즐비한 쇼핑몰이나 놀이공원 같은 게 없다 보니 심심함을 토로하는 이들도 많았다.

어떤 이들은 한 달 계획하고 왔다가, 지루함과 무료함을 견디지 못해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아 돌아간다 했다.

여행을 할 때, 어디에 목적성을 두더냐에 따라 여행의 질이 차이가 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의 목적성은 단 하나. 오로지 장소가 바뀐 독박 육아였다.

매일 아침 눈뜨면, 어딜 갈까 뭘 할까에 대한 고민으로부터 벗어났다.

머무는 시간이 30일로 정해져 있으니, 매일 계획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이들이 로컬 유치원에 4시간 머무는 동안, 나는 요가 수업을 가고 카페에 앉아 독서를 하고 글을 쓰고 브런치를 먹었다. 오가는 시간을 포함하면 유치원에 있는 4시간과 얼추 맞아떨어진다.

2시에 마치는 아이들을 데리고 여기저기 돌아다닌다. 동물원, 곤충박물관, 코끼리 보호센터, 나이트 사파리, 공룡공원, 현지 키즈카페, 님만해민의 맛집과 쇼핑몰, 올드시티의 맛집과 사원, 마사지샵 , 도심지 및 외곽 카페 투어 등 하루가 쉴 틈 없이 빼곡하다. 게다가 겨울에 갔을 때는 서머 크리스마스도 보내고, 12월 31일 마지막 날 풍등을 띄우며 소원을 비는 러이 끄라통 행사에도 참여하며 특별한 경험을 쌓아갔다.


한국에서 매일 보내는 일상은 체감되는 마지막 날이 없지만, 30일이라는 주어진 날짜는 하루하루 지날수록 떠날 날이 가까워진다. 매일 달릴 수는 없으니 하루 정도 쉼을 허락할 때도 있다. 그런 날은, 콘도 안에 있는 수영장에서 실컷 물놀이를 하며 오후를 보낸다. 매일이 그렇게 알차기만 하다면, 아이들이 심심할 겨를이 없지 않을까. 여기는, 엄마 혼자 아이들을 데리고 온 가족들이 많기에 아빠의 빈자리도 당연시되었다. 한국으로 돌아갈 날이 가까워오면, 남편이 들어온다. 4박 5일 정도의 일정으로 들어와 남은 시간을 함께 보내면, 아이들에게는 완전체로 꽉 채워진 한 달이 된다. 남편이 있는 동안은, 긴장의 끈을 조금 내려놓고 편안한 마음으로 남은 날들을 대한다.


2018년 여름과 겨울 두 차례에 걸쳐 머무른 치앙마이.

뒤이어 2019년 여름, 발리, 쿠알라룸푸르, 조호바루, 싱가포르에 40일을 머물렀지만 아직도 아이들은 치앙마이에 있었던 이야기를 더 많이 한다. 많은 경험을 한 탓일까.

그동안 다녀온 곳 중에 어디가 가장 기억에 남느냐고 하면 단연코 치앙마이라고 한다.

외로운 현실의 독박 육아 세계에서 벗어나고자 도망치듯 간 곳이지만, 나와 아이들에게는 잊지 못할 소중한 추억으로 저장되어 있다. 누군가는 말했다. 이렇게 아이들이 어린데 굳이 갈 필요가 있느냐고 말이다. 그렇지만 지금도 간간이 그때의 이야기를 하는 아이들을 보며, 아이들의 기억의 수명에는 연연하지 않기도 했다.

어떠한 연유로 떠나게 되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어떤 날들을 보냈으며, 어떤 것을 배웠는지가 중요하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던 날, 세상이 바뀌어 있을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서운하리 만큼 모든 것은 제자리였죠. 그러나 괜찮습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제 자신이 변했기 때문입니다."


by. 도서 <나는 더 이상 여행을 미루지 않기로 않기로 했다>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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