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절은 끝났습니다

by 소믈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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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지금 어디쯤이에요? 언제 와요?"

2019년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글쓰기 모임도 생기고, 동네에서 친해진 엄마들도 생겼습니다. 아이들이 저녁을 먹고 나면 7시쯤, 많으면 주 2회도 맥주 타임을 가졌습니다. 그게 유일한 낙이라 여겼지요.

처음엔 보고 싶어서 전화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느낌이 싸했습니다. 질문 뒤에 숨겨진 뭔가가 감지됐습니다. 여러 차례 반복되면서 눈치챘죠. "엄마 언제 와?"가 아니라 "엄마 귀가시간까지 얼마나 남았어?"였다는 걸요. 유튜브, 게임하면서 나름 불안하긴 했나 봅니다.


얼마 전에 릴스 하나를 봤습니다. 아들 셋을 키우는 집이었는데, 거실 인터폰에서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소리가 나자마자 거실에 있던 아이들이 흩어지더군요. 순식간에 각자 방으로 들어가서 책상 앞에 앉는 장면에 이미 수백 개의 공감과 댓글이 달려있었죠. 우리 집엔 그 알람이 없으니, 수화기 너머로 확인했나 봅니다.

올해 첫째가 중학교에 올라갔습니다.

학원 수업이 8시, 9시에 끝납니다. 제 얼굴만 보면 배고프다고 합니다. 밥, 간식 차리느라 주방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났습니다. 둘째는 숙제도 같이하자고 합니다. 작년까지만 해도 혼자 영어 단어 외우고, 숙제하더니 자꾸 엄마를 부릅니다. 혼자 할 때보다 집중 잘 된다며 옆에 있으라 합니다.

중학생이 된 첫째에게는 매주 수행평가가 있습니다. 중간, 기말고사만 쳤던 저의 세대랑은 다릅니다. 이삼일 간격으로 평가가 있는 것 같습니다. 뭘 준비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하기도 하고요. 미리 알려주고, 시기를 넉넉하게 줬다는 건 그만큼 준비가 필요하다는 뜻이 아닐까 싶어 같이 찾아봅니다. 혼자 해도 될 법한데, 같이 해야 하니 저녁 맥주 타임은 절로 끊겼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저한테만 온 게 아니더군요. 같이 맥주 마시던 엄마들도 다들 비슷한 상황입니다. 같은 또래 아이들을 키우다 보니, 집집마다 돌아가는 패턴도 닮아갔습니다. 새 학기 시작과 동시에, 엄마들도 새로운 학기에 적응하고 있습니다.


집에 있어야 하는 또 다른 이유도 있습니다. 아직은 순수한 둘째가 그러더군요. 인스타 앱 사용시간을 걸어도, 휴대폰 제한 시간을 걸어도 다 푸는 방법이 있다고요. 메시지로 접속하면 인스타그램 접속이 가능하고, 자녀 보호 기능 앱을 삭제하면 제한 시간이 풀린다고요.

"다들 그렇게 쓰고 있으니, 엄마도 형아 폰 확인해 보세요!"

아이들에게는 숙제, 간식을 챙겨주려고 안 나간다고 말하지만, 실상은 감시 아닌 감시를 하기 위함인 거죠. 맥주 타임을 내려놔야 하는 이유가 하나 더 생긴 셈입니다.


디데이를 카운트하듯 날짜를 세면, 요즘 들어 아이들이 크는 게 아쉽기도 합니다. 조금 더 잘해줄걸, 그때 덜 혼낼걸, 함께하는 시간을 더 많이 가질걸 하고요.

5학년인 둘째가 대학생이 되기까지 8년. 저는 다시 미취학 아이를 키우는 엄마처럼, 밤 외출은 삼가려 합니다. 지금부터는 아이들과 같이 성장하려 합니다. 수행평가도 같이 고민하고, 영어 단어도 같이 외우고, 간식도 함께 먹으면서 같은 공간에서 머무는 시간을 늘리는 거죠. 그동안 저에게도 다른 종류의 좋은 시절이 열릴 수 있지 않을까요.

수,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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