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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믈리연 Feb 02. 2023

마음의 핫팩

당근과 3천 원


"안녕하세요, 판매하고 계신 상품을 구매하려는 게 아니라 다른 부탁 한 가지를 드리려 채팅드립니다..! 미리 양해를 구합니다.ㅡ.ㅜ 제가 오늘 1년 전에 000님과 거래 한 적 있는 ***님과 여행가방을 거래를 했습니다. 제가 거래 직후 탈퇴하는 바람에 그분께 가방 비밀번호를 알려드리지 못했어요. 다시 연락을 하려니, 그분이 현재 거래 중인 상품이 없어 채팅이 불가한 상황이라 요청을 드립니다.ㅠㅠㅠ 귀찮은 부탁드려 죄송합니다.!!ㅡ.ㅜ 그분께 가방 비밀번호가 ###이라고 전해주실 수 있을까요?



평소와 달리 여유 있게 안마의자에 누워있었다. 당근마켓에 일 년 전에 올린 신발 게시물에 메시지가 왔다. 드디어 팔리나 했는데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글이었다. 여느 때처럼 바쁜 저녁시간이었다면,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글에 호기심이 일었다. 보이스 피싱? 낚시? 사기? 음산한 기운이 가득한 단어가 쓰나미처럼 몰려들었다.

깔끔하게 정돈된 글이었다면 한눈에 다 담겼을 텐데, 두서없이 쓴 글이라 쉽사리 이해가 되지 않아 다시 읽을 수밖에 없었다. 문장 속에 들어있는 느낌표와 마침표의 집합이, 메시지를 보낸 이의 초조함과 다급함을 설명해 주었다. 바로 대답하지 않고, 나와 정말 1년 전에 거래한 사람 중에 ***이 있는지 확인해 봤다. 

구매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냄비를 거래한 기록이 나왔다. 당시, 코로나가 심해서 비대면 거래였기에 얼굴은 알지 못했지만 기록이 남아있으니 발뺌하기도 곤란했다.

"이 내용을 그대로 캡처해서 보내드리도록 할게요."라고 메시지를 보내고 ###에게 간단한 인사말과 함께 대화내용을 캡처한 화면을 보냈다.

곧이어 CU편의점 모바일 금액권 3천 원짜리와 본인의 연락처를 알려주었다.

"이 기프티콘은 000님에게 드리는 거예요."라는 메시지와 함께.

분명 감사의 표시였을텐데, 의심의 더듬이가 또 발동했다.

'저 바코드를 누르면 스팸으로 넘어가는 건가?' 뭐라고 말해야 할지 난감했다.

"그분이 제 채팅을 확인 안 하시면 돌려드리겠습니다."라고 답했다.

"아니에요, 확인 안 하셔도 쓰시면 됩니다. 혹시 답장 오면 연락 한 번 주세요. 감사합니다.ㅠ"

이 메시지를 주고받는 와중에 ###님의 채팅이 들어왔다.

그렇지 않아도 그분이 바로 탈퇴를 하셔서 무슨 일인가 했다며, 중간에서 연락해 줘서 고맙다 했다.

1년 전에 판매한 냄비의 안부와 더불어 새해 인사까지 주고받았다. 얼떨결에 일면식도 없는 두 사람 사이에서 감사인사 세례를 받았다. 짧은 메시지가 오가던 10분. 중간에서 연락만 취해줬을 뿐인데 가슴이 따뜻해져 갔다. 뭘 했다고, 뭐 한 게 있다고 고맙단 인사도 연신 받고 3천 원 금액권까지 받은 것일까.


나는 당근홀릭이다. 생필품을 제외한 대부분 물건은 중고거래 사이트에서 확인하고 구매한다.

비매너거래에 얼굴을 붉히는 날도 없지는 않지만, 대부분 물건에 '정'이 덤으로 담긴다.

비대면이 아닌 대면거래, 사람과 사람이 하는 거래, 가까운 곳에 사는 사람과 하는 거래이다 보니 사심이 담기지 않을 수 없다. 어떤 분은 마스크를 넣어주기도 하고, 아이들 책을 덤으로 주기도 한다. 거래한 지 몇 년이 되었는데도, 아이가 그만 읽는 책이 또 생겼다며 경비실에 맡기고 가는 이웃도 있고, 언제 커피 한잔 하자며 채팅을 거는 이도 있다. 그들로부터 받은 정에 보답하고자, 나도 다른 이들과의 거래에 마스크, 코로나 자가 진단키트, 커피 티백, 빵 등을 챙겨주기도 한다. 따뜻한 마음은 파도타기를 하며 이웃을 넘어 다른 이웃에게 넘어간다. 정다운 거래를 한 물건을 볼 때면, 그 이웃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하루가 다르게 살기 힘들어지는 세상에 인심이 각박하다고 하나, 여기저기서 情을 찾아볼 수 있다.

오늘도 운동을 마치고 동네 CU편의점을 지났다. 그들이 떠오르며 마음에 핫팩을 댄 듯 따뜻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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