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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믈리연 Jan 12. 2023

이른 기상의 필요성을 깨달은 하루


12월부터 수영을 시작했다.

나에게는 '새벽'이란 기준안에 있는 6시 수업이, 센터스케줄에는 '오전'으로 분류되어 있었다.

모든 게 고요하다 여긴 이 시간, 피트니스센터는 정오의 브런치 카페만큼 북적였다.


작년 9월, 어느 챌린지를 통해 14일 동안 5시 기상을 목표로 했다. 7일을 성공했으니 절반의 성공을 이뤄냈다.

매일 일어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새벽기상을 목표로 하는 온라인 모임에 가입했다. 가입 금액이 부담되긴 했지만 독한 마음으로 결제했다. 참여비는 차치하고라도 보증금이라도 받자며 꾸역꾸역 일어났다. 더 자고 싶어서 꾸물거리다가도, 본전 생각에 이불을 박차고 나왔다. 폰돈일수도 있는 보증금이 강제적인 장치가 되어 준 덕분에, 10월부터 세 달을 연이어 성공했다. 5시 10분, 냉장고소리, 윗집 베란다에서 물이 떨어지는 소리, 쓰레기차 소리를 백색소음 삼아 필사, 독서, 영어공부, 데일리플랜 작성 등을 루틴을 이어갔다.

그즈음, 하루가 다르게 살이 찌고 체력이 떨어졌다. 루틴을 이어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운동이 시급했다.

이른 기상 성공에 자신감이 붙었다. 이번참에 물공포증도 극복하고자 했다.

머리가 가장 맑은 시간, 필사를 하며 몸을 깨운 후 출발한다.

처음 며칠은 그렇게 피곤할 수가 없었다. 낮잠을 두 시간이나 잤다.

서서히 적응하며, 낮잠 시간도 차츰 줄였다.




문제는, 강습이 없는 수요일이었다.

화요일 저녁은 정신이 해이해진다. 다음날 일찍 일어날 필요가 없다는 것만으로 게으름이 밀려온다.

5시를 알리는 벨소리가 울리지만, 가볍게 무시한다.

어제도 그랬다. 알람이 울렸지만, 단호박처럼 끄고 다시 잤다.

눈을 떴다. 8시 20분. 아뿔싸! 아이들이 수영 갈 시간이다. 전 날 같은 시각, 오전 수영을 마치고 카페에 앉아 필사하고 독서까지 마쳤었다. 어제와 같은 시간인데, 여태 아무것도 한 게 없었다.

늦게 일어난 아이들에게 밥대신 시리얼을 먹이고 같이 나왔다. 책을 읽겠다고 가방에 넣어두곤, 현관에 그대로 두고 나왔다. 아이들이 수영할 동안 어쩔 수 없이 센터에서 골프 연습을 했다. 목표한 양만큼의 독서를 해야 하는데 시작부터 꼬였다. 10시에 글쓰기 수업이 있었지만 정말 잊어버렸다. 수영장에서 나온 아이들을 데리고 예전에 살던 아파트에 갔다. 잘못 배달온 택배를 찾고, 아이 친구 엄마가 주는 과일을 받아왔다. 갈증 나는 아이들을 데리고 커피와 바나나우유를 사러 갔다. 저녁에 시댁식구들이 올 예정이라 마트에 가서 장을 보고 도착하니 11시 20분. 카톡알람을 보니 10시에 참여해야 했던 수업은 절반이상 진행 중이었다. 속에서 불덩어리가 솟구쳤다. 아침부터 모든 게 꼬였다는 것과, 이런 중요한 일을 잊어버렸다는 나에게 화가 났다.


첫째가 영어학원에서 한 달에 두 번 있는 발표준비를 해야 한다 했다.  3시 40분에 시작인데 벌써 11시 30분. 그거 외우는 거 말고도 할 게 많은데, 시간이 부족하다. 저녁에는 시댁 식구들이 우리 집에 모이기로 한 상황이라 오후 시간은 모조리 반납해야 하기에 일 분 일초도 아까웠다.

목표한 루틴을 다하는데 최소 1시간 30분이 소요된다. 이제 막 필사를 하려 책을 펼쳤는데, 첫째가 외운 걸 체크해 달라 한다. 나머지 하나 더 외우라고 하고 돌아서니, 둘째가 수학 학원 오답노트 작성한 걸 봐달라 한다. 봐주고 돌아서니 카톡이 온다. 가입된 오픈카톡방이 여러 개인 상황인데, 그중 한 곳의 운영진 분이 자기를 대신해서 공지사항을 확인해 달라고 연락이 왔다. 나에게도 중요한 공간이라, 확인 후 띄우고 나니 첫째가 나머지 발표할 내용은 잘 외워지지 않는다고 도와달라 한다. 문장별로 나눠주고 한국말로 해석해 주며 함께 외웠다. 뒤이어 둘째가 오답노트 작성을 잘 못했다고 부른다. 나의 필사노트는 한 줄 겨우 채웠는데, 아이들이 밥은 언제 먹느냐 한다. 밥대신 빵을 달라해서 바게트 빵을 잘라 우유와 주었다. 바둑학원 선생님께 둘째의 차량시간을 확인하고, 첫째 학원에는 태워준다고 연락했다. 아이들이 점심을 먹는 동안 필사 하나 겨우 마무리했다. 점심식사를 마무리하고 나니 1시 30분. 첫째는 수학 학원 숙제를 하고, 둘째는 방학 숙제를 했다. 2시 30분에 바둑학원차량이 도착해서 아이를 태워 보냈다. 5시에 수업 마치면, 학원차를 타고 곧장 수학학원으로 가라 했다. 집에 들어오니 현관에 학원 가방이 그대로 있었다...

첫째에게 책을 읽어주었다. 4학년이 되면 어휘도 어려워지고, 배경지식도 풍부해야 하다 보니 같이 읽는 걸 택했다. 과학과 관련된 책을 1장 읽는데 30분이 걸렸다. 영어학원에 갈 시간이다. 차 시동을 걸었고, 학원에 아이를 데려다주었다. 케이크를 찾아오는 길에 둘째에게 전화를 걸었다. 가방이 없으니 한 시간만 수업하고 집으로 오라 했다. 오후 4시 10분, 나와 둘째가 동시에 도착했다. 미역을 불리고 쌀을 씻었다. 집을 정리하는데 둘째가 툴툴거린다. 그냥 두 시간 다하고 다섯 시에 바둑학원차 타고 바로 수학학원으로 갈걸 그랬다 한다. 엄마가 가방을 갖다 주면 되지 않았냐는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축구를 하자는 아이를 설득해 책을 읽어주었다.  '걸리버 여행기'를 읽다 보니 어느덧 학원 갈 시간이다. 5시 15분에 가방을 들고 걸어갔다. 도착하니 5시 40분. 6시까지 오시기로 했으니 20분이 남았다. 짬 내서 블로그에 글을 쓰고 있는데 어른들이 도착했다. 그때부터 '며느리'모드로 전환했다.




일찍 일어난 날과 그렇지 않은 날의 하루는 왜 이리 다를까.

낮잠을 자더라도 이른 기상이 나았다.

집중할 수가 없었고, 그럴 수 없으니 마음이 촉박했다. 일 분 일초도 허투루 쓰고 싶지 않은데...

한가할 거라 예상한 것과 달리, 정신이 흩뿌려져 버렸다. 강습 없는 수요일이라 해도 느슨함을 버리자 결심했다. 하루를 알차게 쓰고 여유를 가질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이른 기상뿐임을 다시금 깨달은 수요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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