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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믈리연 Dec 05. 2022

달콤하지도 쓰지도 않은 기다림의 시간

흔들리는 엄마의 개똥철학


지난주 수요일 저녁.

저녁을 차리는데 학원 선생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어머님, 혹시 통화 가능하세요?"

"네, 괜찮아요. 아직 아이 도착 안 했어요."

 "어머님, 아이 공부 좀 봐주세요...

오늘 시험 쳤는데, 많이 울었어요. 

눈시울이 뻘게지는데 마음이 너무 아팠어요.

집에 오면 잘 다독여주세요."



둘째가 8년 인생 처음으로 '시험'이란 것을 쳤다.

매일 한두 시간씩 바둑학원에 다니는 것이 아이가 받는 사교육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작년 이맘 즈음, 첫째가 다니는 사고력 수학학원에 보냈다.

6세 때부터 바둑학원을 보내서 그런지, 지면 수학 문제집을 푼 게 아님에도 암산은 곧 잘하는 편이었다. 

항상 다음 수를 생각하는 게 습관이 되어서인지, 한글을 제대로 읽지 못함에도 사고력 수학학원 테스트를 거뜬히 통과했다.  비슷한 나이 때에 시작한 첫째와 비교하면 문제해결력도 나은 편이기에 크게 개의치 않았다. 


둘째는 초등 입학에 임박해서 한글을 배웠고, 1학년 2학기가 마무리되는 이제야 제대로 글을 깨쳤다.

한글이 느려서인지 책 읽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고, '마법천자문' 같은 만화책만 주로 읽었다.

공부하는 것도 좋아하지 않았다. 숙제는 더더욱 그랬다.

둘째이기도 하단 생각에 재촉하지 않았다. 

모든 아이가 다르듯, 내 아이들도 다르다 했다.

싫다는 걸 강요할 수도 없었고, 굳이 그러고 싶지 않았다.

학습지를 하며, 하나둘씩 더 내려놓게 되었다.

숙제 시간만 되면 갑자기 잠이 오고, 배가 고프단다.

목도 마르고 화장실도 가고 싶다 한다.

한 곳에 앉아 쉼 없이 이어가는 모습은 좀처럼 보기 어려웠다. 

그런데도 바둑은 어떻게 하는지 신기할 따름이었다.

학교에서 내주는, 1주일에 한 번 쓰는 그림일기는 난리도 아니었다.

맞는 단어 찾는 게 더 어려웠다. 띄어쓰기는 당연했다.

그러나 간섭하지 않았다. 선생님께도, 조금 느리게 가더라도 기다려달라 했다.

한글이 느린 대신 글자는 또박또박 썼다. 경필 대회를 나가도 될 정도였다.


3개월간 공부한 것을 마지막 주에 시험 친다는 것에 대해 둘째가 부담스러워했다.

객관식과 서술형이 반반 나오니까, 서술형은 아는 단어로 최대한 적어보고 오라 했다.

다 잘할 수 없다고, 최선을 다해 풀라 했다. 시험 치러 가기 직전까지도 배운 것을 복습하지 않았다.

총정리 문제가 2페이지에 가지런히 정리되어있음에도, 호기롭게 들어간 아이였다.

불과 두 시간 후, 아이의 온도는 냉탕으로 떨어져 있었다.

시험시간은 한 시간. 서술형 2 문제를 푸느라 25분을 다 썼다. 남은 시간 동안, 나머지 서술형도 풀고 객관식도 풀어야 했다. 여기저기서 다 했다고 손을 드는 아이들이 있었다. 조급했나 보다. 문제도 안 읽히고, 그나마 풀었던 문제도 답이 엉망이었다. 아이들이 다 돌아가고 난 후, 선생님과 마주 보고 앉았다.

적은 답을 설명해 보라 했다. 설명하는 걸 들어보니 대부분이 알고 있는 것이라 했다.

이제 막 한글을 마쳤고, 적는 게 서툴다 보니 마음이 조급했나 보다.

학원밖에 기다리고 있는 아빠를 보자마자, 시험을 망쳤다며 눈물 한 바가지를 쏟아냈다.


선생님과 통화 중인데, 아이가 들어왔다. 

다급히 전화를 끊고,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엄마, 나 시험 망했어요. 다 틀렸어요. 쫄딱 망했어요."

8세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가 기가 막혔다. 마음이 울렸다.

괜찮다고 했지만, 아이의 표정은 그렇지 않았다.

평소 같으면 오자마자 배고프다고 아우성 칠 아이가, 종이접기를 한 다며 이따가 저녁을 먹는단다.

저녁상을 차리며 아이를 보았다. 거실에 쪼그리고 앉아 종이접기를 하는데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더는 못 본 척할 수가 없어, 아이를 불렀다.

고개를 들어 끔뻑거리는 커다란 눈동자 윗선까지 가득 담겨있던 눈물이 장대비처럼 쏟아 내렸다. 

괜찮다는 말밖에는 해줄 말이 없었다. 그렇게 한동안 말없이 안았다.

한 참뒤, 기분이 나아졌는지 밥을 먹으러 왔고 여느 때처럼 해맑은 아이가 되어있었다.

그러고는, 이제 책을 좀 읽어야겠다고 한 마디 덧붙였다.




잠을 자는 아이를 보며, 머릿속에 꽈배기처럼 꼬이기 시작했다.

조기교육 대신 적기교육을 하자는 나의 철학이, 아이의 앞날에 장애물이 되는 것이 아닌가 했다.

나름 교육열이 높은 동네에 살면서, 내 아이를 그 키높이에 맞춰 키우지 않는 나의 철학이 개똥철학 같았다.


이날, 나의 마음은 정확히 반반이었다.

아이가 준비될 때까지 기다려주자 하다가, 너무 늦은 거 같아 미안한 마음 반.

스스로 독서의 필요성을 깨달아, 책을 읽게 된 고마운 마음 반.

일주일이 지난 지금도, 아이의 커다란 눈에서 떨어지던 눈물이 잊히지 않는다.

그날 흘린 너의 눈물만큼, 너도 나도 함께 성장하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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