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11시 동네 카페. 고등학교 1학년 때의 절친과 마주했다. 간간이 통화를 하긴 했지만, 몇 년에 한 번이 전부였다. 주차하러 들어선 순간, 멀리서 걸어오는 그녀를 알아차렸다. 내려서 인사하면 될걸, 버선발로 나갈 순 없으니 창문을 내리고 이름을 불렀다. 주변 소음 때문에 닿지 않을 걸 알면서도 여러 번 부르는 내 모습에 웃음이 났다. 십 년 만에 만나도 반가운 친구. 짧은 시간, 격한 반가움을 표하고 마주 앉았다. 최근까지도 만난 사이 같았다. 서로 결제하겠다고 카드를 들이대는 모습도 우스웠다. 그동안 쌓인 말들을 모으면 태백산맥 줄기와 맞물리지 않을까. 두서없이 쏟아내는 근황과 살아온 이야기, 가족들 안부까지 이야기보따리는 끊이지 않았다.
마음이 편했다. 몇 년 만에 만나도 반가운 사람이 있다. 그녀가 그랬다. 1학년 11반 교실에 앉아, 쉬는 시간 동안 수다를 떠는 기분이었다. 두 시간 동안은 '엄마'가 아닌 17세 '소녀'로 돌아간 듯했다. 또래보다 이른 결혼을 한 친구는 아이를 낳고 키우는 동안 공감대를 나눌 데가 없었다. 그녀가 육아에 허우적거릴 때, 다수의 친구들은 이십 대 후반의 꽃잎을 펼치기 바빴다. 남편은 남편대로 사회에 적응하느라 바빴고 외로웠다 했다. 충분히 이해했다. 차이가 있다면, 그녀가 나보다 먼저 겪은 시기의 차이였을 뿐. '아내', '엄마'로 살아오며 겪은 고충과 갈등의 스토리도 비슷했다. 이야기를 나누는 내내 잊고 있던 지난날들이 떠올랐다. 밀린 수다로 배를 채우느라, 커피와 함께 주문한 크로크뮤수는 차갑게 식어갔다. 소위 말하는 '아무 말 대잔치' 보따리를 늘어놓았고, 순서도 두서없었다. 아이들 이야기하다가 가족의 안부를 묻다가, 하던 일에 대해 묻다가, 앞으로 할 일에 대해 묻다가 온갖 주제가 공중에서 엎치락뒤치락했다. 고해성사도 이보다 마음이 편할 수 있을까. 마주하는 두 시간, 모든 게 평화로웠다. 쓸데없는 생각을 할 필요도 없었고, 예의 바른 척, 나이에 맞는 어른인 척할 필요도 없었다. 내 모습 그대로 앉아 있음. 단지, 자비 없이 흘러가는 시간만 안타까울 뿐이었다. 더 밀린 수다는 조만간 다시 이어가자 하고 헤어졌다. 오랜만에 진짜 내 친구, 내 편을 만난 개운함을 느꼈다. 돌아오는 차 안, 일부러 창문을 내려 따스한 바람을 맞았다. 봄의 시작을 산뜻하게 열어준 그녀가 고마웠다.
매일 만나도 가끔씩 만나도 불편한 사람이 있다. 정확히 말하면, 나를 불편하게 하는 사람이다. 자기감정과 이야기에 충실한 나머지 듣는 이의 입장을 헤아리지 않는 사람, 연락할 때마다 본인과 본인이 처한 상황에 대해 토로만 하는 사람, 열 번 잘하다가 한 번 서운하게 한 걸로 오랫동안 힘들게 하는 사람 등이 있다. 마흔 번까지만 해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다 들어주고 맞춰주려 했다. 이제는 아니다. 매일을 살아가는 나도 예상치 못한 상황과 감정을 맞닥뜨려야 할 때가 있다. 혹여나의 부정적인 감정이 타인에게 스며들까 나만의 해소법을 찾아다닌다. 등산을 하거나, 기도를 하거나, 청소를 하거나, 무작정 걷거나, 글을 쓰며 푼다. 나와 달리 타인에게 자신의 부정적인 감정을 그대로 전달하는 이들을 하나, 둘 피하다 보니 내 틀 안에 있던 인간관계는 점점 좁아졌다. 다른 시각에서 보면, 나와 성격, 환경, 처지 등 공감대가 맞는 사람 위주로만 남은 것이다. 오늘 만난 친구도 그중 한 명이었다.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었던 십 대. 한창 예민할 때 친했다는 건, 우리만의 공감대가 있었던 게 아닐까. 그때 형성된 우리의 유대관계가 질기고 단단하게 유지되어 있었기에, 십 년 만에 만나도 편안함을 가질 수 있지 않았을까. 먼저 연락해 줘서, 함께 나눌 수 있는 추억이 있어 고마웠다. 예전 기억에, 앞으로 더 쌓아갈 우리의 추억을 생각하며, 다음번 그녀를 만날 날을 기다리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