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청곡

네 번째 노래

by 소믈리연






2년 전 겨울. 라디오를 틀었다. 어떤 노래가 흘러나왔다. 멜로디와 가사, 가수의 음성까지. 끝나고도 한참 동안 여운이 남았다. 분명, 이소라 음성인데 제목은 모르겠다. 검색해 봐야지 하고선 가던 길을 따라갔다.


한 시간 남짓 한 시간이 흘렀다. 아이들을 체험 교실에 내려다 주고 근교카페로 이동하러 나섰다. 외곽에 있는 도로여서 드라이브하듯 느긋이 움직였다. 라디오를 듣는데, 아까 나왔던 음악이 다시 나온다. 지역 방송프로그램으로 넘어가서일까. 같은 노래가 이어 나온다니. 신청한 사람은 분명, 나와 같은 시간에 같은 주파수를 켜고 있었으리라.








요즘은 원하는 곡만 스트리밍 해서 들을 수 있다. '라테' 시절에는 좋아하는 노래가 라디오에서 나오는 것만으로도 감동이었다. 집에서 카세트테이프나 CD플레이로도 들을 수 있었음에도, 내가 좋아하는 노래가 전국에 있는 크고 작은 스피커를 통과한다는 것만으로도 로또와 로맨스 이상의 감동이었다.


일 년 전쯤일까. 아는 동생차를 타고 차 한잔 하러 나섰다. 멜론에서 다운로드한 음원리스트에는 그녀의 애창곡으로 가득했다.

"언니, 우리 오빠(남편)는 운전할 때 라디오 들어요. 진짜 촌스럽죠? 요새 누가 그래요?"

"어? 나도 그래."

"......"

그 남편과 나랑 같은 나이여서 그런 건가. 나는 아직도 아날로그만의 감성이 좋다. 좋아하는 곡이 나오면 추억에 젖게 되고, 신청자들의 사연을 듣고 울고 웃고, 무의식적으로 외우게 된 광고 BGM을 따라 부른다. 때론, 아직도 특정노래의 가사를 기억하는 것이 놀랍기도 하다.


어릴 적, 나도 수 차례나 사연을 보냈었다. 혹시라도 내가 신청한 노래가 나올까 봐 그 시각만 되면 작은 라디오와 한 몸 된 채 살았다. 야간자율학습 시간에는 선생님한테 걸리지 않으려 한쪽에만 이어폰을 끼고 들었다. 글 쓰는 재주가 부족해서일까, 운이 없어서일까. 겉 봉투를 눈에 띄게 꾸며서 보냈음에도 단 한 번도 나온 적이 없었다.


그러다 몇 달 전, 지역 프로그램에서 첫 소절만 듣고 가수와 제목을 맞히는 이벤트가 있었다. 이번만큼은 자신 있었다. 갓길에 차를 세웠다. 정말, 첫 소절만 나왔다. 반주구간인데, 바로 눈치챘다. 정답자를 발표하는데 내 번호 끝자리가 나왔다. 2차전이 시작됐다. 이번에는 1등으로 도착한 청취자한테 3만 원짜리 초밥식사권을 준단다. 오타를 치지 않으려 손가락에 긴장을 더했다. 한 소절이 나왔다. 역시, 바로 알겠다. 메시지를 보냈다. 그 사이, 아이 학교에 도착했다. 누가 당첨됐는지 궁금하지만 어쩔 수 없이 내렸다. 멀리서 걸어오는 아이가 보인다. 손을 들어 흔드는데 뒷 주머니에서 진동이 울린다. 초밥 식사권을 보내줄 테니, 주소를 보내란다. 앗싸! 처음이다. 아마, 처음이자 마지막이겠지.




여전히 운전 중에 라디오를 들으며 다른 이들의 사연과 신청곡을 듣는다. 아는 노래가 나오면 괜히 반갑고, 집에 와서 찾아서 또 듣는다. 지난주인가, 그날따라 뒷좌석에 앉은 첫째가 조용하다. 라디오 광고 BGM이 나오면 흥얼거리고, 사연이 나오면 이내 조용하다.

"라디오 듣는 거 재미있어?"

"응. 재미있어요. 노래만 듣는 거보다 나아요."

다행이다. 우리 같이 좋아할 수 있어서. 머지않아 너도 음악 신청하는 날이 오지 않을까. 그 노래가 나오는 날을 반갑게 맞이하길 기대하며, 오늘도 운전대를 잡고 주파수를 맞춘다.




가사:<이소라-신청곡>

창밖엔 또 비가 와
이럴 땐 꼭 네가 떠올라
잠이 오지 않아
내방엔 이 침묵과
쓸쓸한 내 심장 소리가
미칠 것만 같아
So I turn on my radio
낯선 목소리가 들려오고
And on the radio
슬픈 그 사연이 너무 내 얘기 같아서
Hey DJ play me a song to make me smile
마음이 울적한 밤에 나 대신 웃어줄
그를 잊게 해줄 노래
Hey DJ play me a song to make me cry
가슴이 답답한 밤에 나 대신 울어줄
그를 잊게 해줄 노래
치열했던 하루를 위로하는 어둠마저 잠든 이 밤
수백 번 나를 토해내네 그대 아프니까
난 당신의 삶 한 귀퉁이 한 조각이자
그대의 감정들의 벗 때로는 familia
때때론 잠시 쉬어 가고플 때
함께임에도 외로움에 파묻혀질 때
추억에 취해서 누군가를 다시 게워낼 때
그때야 비로소 난 당신의 음악이 됐네
그래 난 누군가에겐 봄 누군가에게는 겨울
누군가에겐 끝 누군가에게는 처음
난 누군가에겐 행복 누군가에겐 넋
누군가에겐 자장가이자 때때로는 소음
함께 할게 그대의 탄생과 끝
어디든 함께 임을 기억하기를
언제나 당신의 삶을 위로할 테니
부디 내게 가끔 기대어 쉬어가기를
So I turn on my radio
낯선 목소리가 들려오고
And on the radio
슬픈 그 사연이 너무 내 얘기 같아서
Hey DJ play me a song to make me smile
마음이 울적한 밤에 나 대신 웃어줄
그를 잊게 해줄 노래
Hey DJ play me a song to make me cry
가슴이 답답한 밤에 나 대신 울어줄
그를 잊게 해줄 노래
창밖엔 또 비가 와
이럴 땐 꼭 네가 떠올라
잠이 오지 않아
난 어쩔 수 없나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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