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번째 노래
요즘 AI가 찍어주는 미국졸업사진이 화제다. 인스타그램에 올라오는 다른 사람들의 사진을 보며, 나는 어떤 모습으로 담길까 궁금한 마음에 관련 어플을 다운로드했다. 무료인 줄 알았는데 5,500원이나 8,800원을 내야 한다. 그마저도 솔드아웃이다.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는 걸 깨닫고 창을 닫았다.
조금 전, 집에 온 아이들이 방문 선생님과 수업을 하고 있었다.
책을 보러 앉았다가, 습관처럼 휴대폰을 들어 인스타그램을 열었다. 알고리즘의 결과인지 또, AI관련 졸업사진이 뜬다. 어제 깔아 둔 어플을 열었다. 5,500원짜리 스탠더드 상품은 품절이지만 8,800원짜리 익스프레스는 여분이 남아있다. 셀카사진 9개를 골랐다. 어제 품절 사태를 경험한 터라 여러 절차를 거쳐 결제하는 데 성공했다. 여기까지만 해도 십 분은 소요된 듯.
결제 후 60장 사진의 결과를 기다리는 데 27분이나 걸린다고 떴다. 빨리 나오는 상품으로 결제했는데도 이 정도라니. '빨리빨리'의 후손 아니랄까 봐 한숨이 나온다.
방문수업이 끝난 첫째가 영어학원까지 데려다 달라한다. 걸어가라고 하고 싶지만, 여러 권의 책이 든 가방의 무게를 알기에 폰은 그대로 두고 차키를 들고 나왔다. 왕복 10분 걸려 다시 집에 도착했다. 아직도 진행 중이다. 다른 볼일을 보고 있으니 점점 시간이 단축된다. 27분은 최대치를 말하는 거였나 보다. 5분 남았다더니 1분 전이다. 로또 당첨 결과를 기다리는 것도 아닌데 심박수가 빨라진다.
드디어 나왔다. 여러 가지 카테고리가 있다. 기본, 가장 성공할 것 같은, 가장 똑똑한, 가장 음악적인, 가장 운동을 잘하는, 가장 패셔니스타인 등 '가장'이라는 이름을 붙인 60장의 사진이 나왔다. 재밌다. 웃음이 난다. AI는 피부의 주름도 펴주고, 주근깨도 없애주고, 탄력 있고 선명하고 건강한 피부로 만들어준다. 하얗거나 구릿빛이거나 다양하게 피부색도 입혀준다. 없는 가슴과 근력도 만들어주고, 없는 앞머리도 생기게 해 준다. 평소에는 입지 못하는 과감한 옷도 입혀주고, 유연성 없는 나를 치어리더의 세계로도 이끌어준다. 이쯤 되면 미국 졸업사진을 넘어, 살아보지 못한 삶을 살게 해 주는 게 아닌가.
여러 나라에서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접속하는가 보다. '비디오 저장', '모두 저장' 탭을 눌러도 다운로드되지 않는다. 전체사진을 담는 건 포기하고, 마음에 드는 사진만 골라 담는데 그마저도 쉽지 않다. 재시도하라고 뜨고, 실패라고 뜬다. 와이파이를 켰다가 껐다가 하면서 데이터만 낭비하고 있다. 이러고 앉아있는 내가 한심하고, 무심하게 흘러가는 시간도 아깝다. 알면서도 손에서 놓지 못하고 있다. 온전히 나를 위해 쓸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을 인공지능이 만들어준 내 모습을 받는 데 다 써버렸다.
시간, 돈, 에너지를 낭비한 것 같아 허무한 날이 있지만, 오늘은 그렇지 않다. 20년 전으로 돌아갈 수 없고, 돌아간다 해도 개성 있게 졸업 사진을 찍을 거란 보장도 없다. 현실에서는 보여줄 수 없는 나를 꺼내주는 어플 덕분에, 이런 스타일로 연출만 한다면 이렇게 될 수 있을까 즐거운 상상도 해본다.
본디 사진 찍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잘 웃다가도 카메라만 들이대면 표정이 굳는다. 좌우 비대칭인 얼굴도 한 몫한다. 그런데, AI가 편집해 주는 사진은 그럴 필요가 없다. 내가 가진 장점만 빼서 담아준다. 이렇게 되면 앞으로도 사진어플 의존도가 높아질 거라 걱정도 되지만, 오랜만에 기분 좋게 내 모습을 보며 웃어본다.
가사: <사진-드래곤플라이>
바쁜 생활 속에 널 잊고 지냈지
아니 난 그렇게 믿고만 있었지
그랬지만 아니었나봐
그냥 달라졌다고 느꼈을 뿐
먼지 쌓인 나의 방을 정리하다
오래된 우리의 사진을 보았지
나도 몰래 흘러내린 눈물
그때까지도 난 몰랐었지
너였단 걸 그랬단 걸
많은 시간이 흘러간 지금에도
내가 다른 어떤 누구도
다시 사랑할 수 없던 이유
잘 있는지 그런 건지
가끔 전해 듣던 너의 소식만큼
다시 시작할 수가 없다면
세상 누구보다 행복하기를 바랄게
눈에 익은 거릴 지나칠 때마다
느끼던 가슴을 저미는 아픔도
그저 쉽게 생각했었지
막연한 외로움 때문이라고
좀 더 일찍 깨달아야만 했는데
모든 게 외로움 때문이 아닌걸
가슴속에 쌓여온 그리움
너를 보고 싶은 마음인걸
너였단 걸 그랬단 걸
많은 시간이 흘러간 지금에도
내가 다른 어떤 누구도
다시 사랑할 수 없던 이유
잘 있는지 그런 건지
가끔 전해 듣던 너의 소식만큼
다시 시작할 수가 없다면
세상 누구보다 행복하기를 바랄게
사진 속의 난 너의 곁에 난
이렇게 행복한 얼굴이었단 걸
그때 왜 몰랐는지
너였단 걸 그랬단 걸
많은 시간이 흘러간 지금에도
내가 다른 어떤 누구도
다시 사랑할 수 없던 이유
잘 있는지 그런 건지
가끔 전해 듣던 너의 소식만큼
다시 시작할 수가 없다면
세상 누구보다 행복하기를 바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