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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믈리연 Jul 15. 2024

1층 살이, 12년 차입니다.

2013년 여름. 2주간의 산후조리원 생활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기질적으로 예민한 아이는 들릴 듯 말 듯 한 소리에도 경직됐다. 낮잠을 한 시간 이상 잔 적 없으며, 밤에도 세 시간 이상 자질 못했다. 한창 자야 하는 신생아인데도, 윗집에서 울리는 소리에 여러 번 깼다. 큰 소리가 난 날이면, 그 작은 몸으로 낼 수 없을 만큼 우렁찬 울림을 가득 실어 울었고, 세차게 운 날은 목이 쉬기도 했다.

무덥디 무더웠으나, 푹 재우려면 아기 띠로 안고 나가야 했다. 양산을 쓰고 조용한 골목길이나, 아파트 내 공원을 오갔다. 한 몸이 된 채 땀 범벅되어 잠든 아이 얼굴을 보며 손으로는 부채질을 해대고, 두 발은 느린 속도로 쉼 없이 움직였다.

집에 도착하면 또다시 울리는 발소리. 윗집에는 초등생 남아 두 명이 살고 있었다. 부모님이 맞벌이를 하는 집이라, 낮에는 친할머니가 돌보고 있다고 했다. 매일 전쟁놀이를 하는 건지, 발소리가 '후다다다닥' 빠르고 신속했다. '나중에 내 아들도 저렇게 되겠지.'라며 버티고 버텼건만, 도저히 안 되겠다 싶을 땐 경비실에 도움을 요청했다. 어느 날부터는 그마저도 되지 않았다. 초인종을 누르면 인기척이 없었다.

만삭 때까지만 해도 그러려니 했던 소리가 출산과 동시에 소음으로 들릴 줄이야.




그러는 사이, 내 아이도 자랐다. 어느덧 돌이 가까워져 오고 있었다. 여기저기서 선물이 들어왔다. 당시, 수입 마크를 단 장난감 자동차가 유행했다. 우리 집에도 벤* 마크가 달려있는 차가 도착했다. 돌잔치 때 태워서 입장하려고 했는데, 아이가 집에서 타고 싶어 했다. 아이를 태워 리모컨으로 전진과 후진을 하면서도 불안했다. 아무리 거실 바닥 전면에 매트가 깔려있어도, 이 소음이 내려가지 않을 수 없었다.

돌잔치를 끝내고, 둘째 임신 사실을 알았다. 몇 주 뒤에 '아들'임을 확인한 후, 여러 고민이 몰려왔다. 더는 윗집 두 아들을 나무랄 수 없었다. 머지않아 우리 집 일이 될 것 같단 확신이 들었다. 남편과 급히 상의하고, 부동산에 집을 내놓았다. 일주일도 걸리지 않아 집이 팔렸다. 조건과 예산에 맞는 1층 집만을 찾아 나섰다. 당장 이사 가능한 집은 두 곳. 집을 팔았던 날 오후에 둘러보고, 다음 날 한 곳을 계약했다. 충동구매도 아니고 무슨 집을 물건 사듯 사냐고들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처음 이사 올 때만 해도, 몇 년만 살겠거니 했다. 신혼집, 두 번째 집 각각 2년 정도만 살고 이동했기에 이 집에서도 길어야 4년 정도 살겠거니 했다. 그랬던 곳에서 9년을 살았다. 천정부지로 솟는 부동산 값도 발목을 잡았지만, 아이를 키우기에 이보다 좋은 환경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필로티 층이라 완전 1층도 아니었고, 지상 주차가 불가한 곳이라 아이들 안전도 확보됐다. 하루 종일 뛰어도 눈치 볼 필요 없었고, 단지 내에 어린이집도 있어 등 하원도 편했다. 그러한 이유들로 한 해, 두해 살다 보니 만 8년이 지났다. 사사사삭 걷는 발걸음, 후다닥 뛰는 발소리, 다다다다 달려가며 아이들이 만드는 소리 반, 소음 반 속에 사는 일상에 익숙해졌다.




첫째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후, 새로운 곳으로 이사 가고 싶은 마음이 수시로 꿈틀댔다. 둘째 아이 초등 입학을 앞둔 몇 달 전, 마음은 결심으로 변했다. 아이들 학교와 학원이 인접한 곳 위주로 정했다. 문제는, 또다시 1층에 살 것이냐, 아니냐였다. 아이들 의견에 따라 1층으로 정하니, 그때처럼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이 거의 없었다. 한 달 뒤, 땅과 붙어있는 1층으로 이사했다. 이번 집은 오래된 빌라이지만, 지하실과 화단이 있다. 날씨와 계절에 상관없이 지하에서 공놀이하고, 화단에 있는 텐트에서 홈 캠핑을 즐긴다. 온갖 벌레, 곤충, 길 고양이 출현도 커버할 만큼 아들을 키우기에 적합한 환경을 갖춘 곳이라 여전히 층간 소음 고민과는 먼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

계약기간이 있어서 짧으면 1년, 길어도 3년 뒤면 이 집을 떠나야 한다. 그땐 더는 1층을 고집해야 할 필요가 없다. 여기를 떠나는 날부터, 어제까지 보낸 모든 날은 추억이 될 테지. 그래서일까. 요즘 들어 더욱, 살면서도이 집이 그리울 거라는 말이 절로 부쩍 자주 나오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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