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계속 덥다고 했다. 11월이었다. 밖은 좀 쌀쌀했지만 병실 안은 온기가 돌았다. 옆에서 종이 따위로 엄마에게 부채질했다. 성에 차지 않았는지 엄마는 환자복을 걷어올렸다. 야윈 정강이를 드러내고 오랜 투석으로 울퉁불퉁해진 팔을 드러냈다. 그래도 더위를 참을 수 없었는지 배를 드러내보였다.
빵빵하게 부풀어올라 보는 이를 당황스럽게 만드는 배를 병실 안 사람들이 모두 다 볼 수 있도록 옷을 들어올렸다. 처음에는 배를 물티슈로 닦아줬다. 물이 증발되면서 열이 좀 날아갈까봐. 그걸로 부족한 듯해서 냉팩을 배에 올렸다. 그제야 엄마는 좀 참을만 했던 것 같다. 이쪽으로 앉았다가 반대쪽으로 앉았다가 자세를 바꾸면서도 냉팩은 꼭 잡았다. 냉팩의 냉기가 사라지면 새 걸로 바꿔주고, 또 바꿔줬다.
엄마는 남보기에 부끄러운 일은 절대 하지 않으려고 했다. 나에게도 항상 그걸 강조했다. ‘남우사시키지 말라고’ 그러니까 내가 부끄러운 것보다 나로 인해 엄마가 부끄러울 일을 저지르지 말라는 얘기였다. 남의 시선을 상당히 신경썼고, 남의 평에 대단히 휘둘렸다. 옛날엔 그런 엄마 모습이 못 견디게 싫었지만 지금에서 보면 평범한 중장년층의 모습이었다.
그런 엄마가 배를 드러냈을 때, 나는 좀 많이 당혹스러웠다. 그런 모습을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하게 1인실 병실로 옮기고 개인 요양보호사를 고용했다면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뒤늦게 든다. 그게 엄마가 바라는 것이었을 텐데.
엄마는 대변이 잘 안 나와서 너무 힘들다고 올 때마다 사과를 달라고 했다. 나는 집에서 사과를 깎아와서 엄마에게 한 조각씩 줬다. 엄마는 혼이 빠져나간 사람이 여물을 씹는 것처럼 사과를 씹었다. 엄마에게 사과를 줄 때마다 옆 침대 보호자 아주머니는 질겁을 했다. 투석 환자한테 생과일을 주면 어떡하냐면서. 나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이미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몸이라면 먹고 싶은 걸 먹는 게 낫지 않겠냐는 생각이었다. 엄마가 치킨에 피자, 맥주가 먹고 싶다고 했으면 그것도 갖다줬을 것이다.
병원에서 DNR 서명을 할 건지 물어봤다. DNR은 목숨이 위급한 상황에서 심폐소생술 등 조치를 하지 않는 것이다. 병으로 고통받는 환자가 무의미한 생명 연장을 거부할 수 있는 권리이다. 나는 막냇동생이 와서 엄마를 보고 나면 싸인하겠다고 했다. 엄마에게 귀한 아들이었다. 물론 나와 둘째도 귀한 자식이었겠지만 막내는 유독 귀한 자식이었다.
엄마는 어린 나이에 나와 둘째를 낳았다. 녹록치 않은 삶 가운데 도피하듯이 한 결혼이었을 것이다. 아이를 갖는다는 게 무엇인지도 잘 모르고 낳고 키웠을 것이다. 나를 임신했을 때 엄마는 라면을 엄청 먹었다고 했다. 그렇게 라면이 맛있더라고. 나는 10대 때부터 신장에 물혹이 있었는데 아마 이 영향도 있지 않을까 싶다. 우리가 어릴 때는 엄마도 너무 어렸고, 게다가 삶에 지쳐 있어서 엄마는 우리가 예쁜 줄도 몰랐을 것이다.
나도, 둘째도 딸이라서 엄마는 압박을 받았던 것 같다. 실제로 압박을 받았던 건지, 무언의 압박을 받았던 건지, 사회적으로 더 우월한 모성이 되고 싶은 마음에 혼자서 압박을 받았던 건지, 엄마가 받은 압박이 어느 것인지는 사실 잘 모르겠다.
엄마는 아들을 낳기 위해서 반복적으로 임신을 했고, 성별이 여아로 판별되면 임신중절수술을 했다. 듣기로는 세 번 정도 했다고 했다. 이 과정에서 다낭신이 많이 나빠지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드디어 아들을 임신했을 때 엄마는 주변에 딸이라고 말했다. 아들 임신하려고 셋째를 가졌다는 말을 듣기 싫어서. 나도 여동생이 태어나는 줄 알았다.
막내가 엄마를 보러 왔다. 어디, 어디 면접을 보게 됐다면서 열심히 준비를 하고 있다고 했다. 막내에게 엄마를 맡기고 나는 마음 편하게 집에서 하루 쉬고, 출근을 했다. 일을 마치고 와서 막내와 밥을 간단히 먹고, 막내는 돌아갔다. 엄마는 막내에게 가지 말라고 졸랐다고 했다. 막내는 그때가 자신에게 너무 중요한 기간이라 그럴 수가 없었다. 마음이 영 무거웠는지 내게 털어놨다.
“너무 중요한 때인데…”
“엄마가, 지금 엄마가 온전치가 않다”
멀리 사는 막내도 엄마 얼굴을 봤다. 나는 DNR 서명을 하고 병실 요양보호사에게 인사를 하고 집으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