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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상희 Dec 29. 2021

글을 마치며

 고등학생 때 방광염에 걸려서 간 내과에서 ‘다낭신인 것 같다’라는 말을 들었다. 의사는 뭐 그리 자세히 얘기해주지 않았고 나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엄마가 혈뇨가 나와 다낭신 판정을 받은 후 같이 서울대병원을 갔을 때 의사는 물 많이 마시고, 과로하지 말고, 스트레스 받지 말고, 짜게 먹지 말라고 했다. 관리를 잘 못하면 신부전이 와서 투석을 해야 한다고 했다. 이후로 술 마시기 싫을 때나 일하기 싫을 때 다낭신 핑계를 댈 수 있어서 좋았다. 하지만 이때도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스트레스 받으면 떡볶이를 먹고, 짜장면을 먹었다. 


 엄마가 몸이 꽤 나빠지고, 옆에서 그 과정을 다 보고, 나 역시도 몸이 나빠진다는 걸 느낀 이후로는 몸관리를 시작했다. 식단을 조절하고 힘든 일은 삼가고 스트레스는 피한다. 엄마가 돌아가신 후부터는 더 무서워졌다. 죽는 건 괜찮은데 엄마처럼 죽고 싶진 않다. 


 책의 앞 부분과 뒷 부분의 분위기가 달라서 글을 적으면서도 고민했다. 내 이야기를 적는 부분은 발랄하게 적으려고 노력했다. 애초에 나는 진지한 걸 선호하지 않는다. ‘인생은 시트콤처럼!’이 좌우명이다. 그런데 뒷 부분, 엄마 이야기는 그러기가 쉽지 않았다. 특히 엄마의 죽음에 가까워지면서 더더욱 그랬다. 우울한 얘기고 고통스런 얘기라 같은 병을 겪는 많은 다낭신 환자에게 악영향을 끼칠까봐 적지 말까도 생각했다. 


 그래도 적은 이유는, 내가 10대, 20대일 때 누군가 다낭신이면서 관리를 하지 않아 상태가 점점 나빠지면 이렇게 된다고, 엄마의 죽기 전 모습을 알려줬다면 그때부터 관리를 시작해서 지금보다 물혹이 더 작고, 신장도 더 작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왜 의료진들은 경과에 대해 두루뭉술하게 얘기 했을까? 다낭신 때문에 엄마처럼 나빠진 환자는 본 적이 없었던 걸까? 몇 십년 후의 일을 미리 겁먹을 필요는 없다고 판단했을까? 내 몸인데, 겁먹든 말든 내가 판단할 일인데.  

 엄마가 돌아가시고 나는 마치 내 미래를 본 것 같아 한동안 꽤나 우울했다. 지금도 스트레스를 받아서 허리나 배가 벙벙한 느낌이 들면 금방이라도 엄마처럼 배가 부풀어 오를 것 같아서 죽고 싶어진다. 그래도 누워서 ‘괜찮다, 괜찮다’를 되뇌이면서 시간이 흐르기를, 부른 배가 가라앉기를, 걱정과 불안, 공포가 떠나기를 기다린다. 


 사는 데 사명이 있고, 열정이 있으면 얼마나 좋겠냐마는 내 삶은 그런 케이스가 아니다. 그저 하고 싶은 걸 하고, 좋아하는 걸 맘껏 좋아하는 데 집중하기로 했다. 이런 지향점을 갖게 된 것은 다낭신의 역할이 크다.


 물혹이 없는 신장이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이미 나는 물혹이 가득한 포도송이 콩팥이랑 함께 산다. 내 몸을 금 간 유리 그릇처럼 손대면 부서질까 소중히 다룬다. 콩팥이 화나지 않도록 상처받지 않도록 사이 좋게, 이왕이면 오래오래 함께 지내야지. 이 글을 읽은 분들도 자신의 몸과 사이좋게 알콩달콩 행복하게 오래오래 지내셨으면 좋겠다.

  그동안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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