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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상희 Dec 27. 2021

엄마 이야기_마지막 그날

 화요일 밤이었다. 남편과 가볍게 야식을 먹고 평소보다 조금 늦게 잠자리에 들었다. 잠에 설핏 들어서려는데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엄마가 찾는다고. 새벽 1시였다. 이런 상황을 맞닥뜨리지 않으려고 요양보호사가 있는 병실로 옮긴 거였는데 소용이 없었다. 밤에는 요양보호사도 자야했고, …… 엄마 성질을 감당하기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앞으로 이런 날이 얼마나 이어질까 생각이 들었다. 잘 자야하는데, 내가 잘 자야 내 신장 물혹들은 더 커지지 않을 텐데. 이렇게 스트레스 받고, 밤에 잠도 잘 못 자면 내 신장 물혹도 엄마 물혹처럼 커질텐데. 

 한편으론 이게 마지막 날일 수도 있다, 엄마는 언제 죽을지 몰라, 라는 생각도 동시에 들었다. 


 남편과 옷을 챙겨 입고 택시를 탔다. 병동은 조용했다. 간호사 병동은 환히 밝혀져 있었지만 병실 불은 다 꺼져있었다. 엄마는 상반신 쪽 침대를 90도 가까이 세워서 옆으로 기대 앉아 있었다. 엄마 심장 박동에 따라서 파형을 그리는 심전도계도 옆에 있었다. 숨을 내쉴 때마다 엄마는 끙끙 앓았다. 


 “엄마, 왜?”

 “아파 죽겠다. 아파서 잠을 못 자겠다. 수면제든 진통제든 빨리 다 달라고 해라”


 엄마는 손가락에 끼고 있던 산소포화도 측정기를 빼서 집어 던졌다. 나는 간호사에게 가서 엄마가 너무 힘들어하니까 수면제나 진통제를 놔달라고 했다. 병실에는 산소포화도 측정기와 연결된 기계에서 나는 삑삑거리는 소리가 시끄럽게 울렸다. 산소포화도 측정기를 엄마 손가락에 다시 꽂았다. 꽂자마자 엄마는 다시 빼서 집어던졌다. 꽂고 던지고, 꽂고 던지고, 반복하다가 내 손에 꽂았다. 내 산소포화도는 92%. 그제야 소리는 멈췄고 병실은 엄마의 신음 소리만 빼면 조용했다. 


 간호사가 와서 수면제 주사도 놓고, 진통제도 정맥에 연결했다. 엄마가 산소포화도 측정기를 계속 빼서 기계에서 소리가 너무 크게 나는데 이 소리 안 나게 할 수 없냐고 물었다. 간호사는 버튼을 몇 개 누르더니 소리를 끄고 나갔다. 그제야 내 손에 꽂힌 산소포화도 측정기를 뽑았다. 


 엄마는 혈압이 너무 낮은 상태라 수면제를 맞는 건 위험했다. 옆 침대 환자의 보호자는 환자가 잠을 잘 못 자겠다고 수면제를 달라고 하면 극구 말렸다. 죽을 수도 있는데, 왜 그걸 찾느냐고. 절대 안 된다고. 당신 죽으면 어떡하냐고. 

 나는 엄마에게 수면제를 놔달라고 했다. 위험하다 한들 어쩌겠으며 엄마가 저 상태로 살아간다 한들 어쩌겠냐는 심정이었다. 오만한 생각이 아니었을까, 지금도 의심한다. 엄마의 생은 엄마가 판단해야 하는데 엄마가 판단하지 못할 거라고 지레짐작해서 내 식대로 결정한 게 아닐까. 


 엄마 침대 옆에 놓인 등받이 없는 의자에 앉아 엄마 숨소리가 잦아들길 기다렸다. 하지만 엄마는 잠들지 못했고 계속 아프다고, 아파 죽겠다고 고함을 질렀다. 뭔가 잘못됐다고, 뭔가 잘못됐다고, 왜 이렇게 아프냐고. 진통제가 안 들어가나 싶어서 핸드폰으로 주사 줄을 비춰봤다. 주사가 잘못 꽂혔는지 진통제가 엄마 몸으로 들어가지 않고, 엄마 몸에서 나온 피가 주사 줄을 따라 나오고 있었다. 좀더 일찍 볼걸. 


 간호사가 와서 손을 봤다. 이번에는 진통제가 잘 들어갔다. 나는 야윈 엄마 등을 쓰다듬으면서 이제 괜찮아 질 거야, 괜찮아 질 거야, 반복했다. 좀 편해졌는지 엄마가 더 이상 아프다고 하지 않았다. 신음소리도 내지 않고 숨소리가 일정하게 반복됐다. 엄마가 꿈을 꾸는지 조그맣게 뭐라뭐라 말했다. 잠꼬대이거나 정신착란으로 인한 헛소리일 거라 생각하고 알아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그저 기다렸다. 안정된 상태가 조금 더 이어지기를.

 이 정도면 됐다 싶어서 남편과 함께 집으로 돌아갔다.


 집에 도착하니 2시 30분쯤이었던 것 같다. 침대에 몸을 뉘고 눈을 감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전화가 왔다. 3시쯤이었다. 엄마가 돌아가셨다고 했다. 


 병실에 도착하니 엄마가 침대에 반듯이 누워있었다. 엄마가 죽은 게 분명했다. 엄마는 반듯이 누울 수 없었으니까. 간호사가 다가와서 병실 돌 때 와봤더니 그때 이미 돌아가신 상태였다고 했다. 내가 심전도계에서 나는 소리를 꺼달라고 해서 아무도 몰랐던 것 같다. 


 엄마 손을 잡아봤다. 아직 따뜻했다. 엄마, 하고 한번 불렀다. 사람이 죽을 때 마지막으로 살아있는 감각이 청각이기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이 죽으면 옆에서 울지만 말고 사랑한다고, 고맙다고 말해주라는 글을 읽었고 그 순간에도 떠올렸지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하긴 그때는 이미 돌아가신지 꽤 시간이 흘러서 청각도 기능을 다했을 것 같다. 


 고생이 더 이어지지 않고 여기서 마무리 되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엄마는 마지막까지 외로웠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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