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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상희 Dec 22. 2021

엄마 이야기_마지막 입원1

 돌아가시기 몇 년 전부터 복수가 계속 찼다. 처음에는 몇 달에 한번씩 복수 천자*를 해서 복수를 뽑았다. 주기가 점점 줄어들더니 한 달에 한 번이 됐다. 복수를 제거해도, 제거해도 또 다시 복수가 차고, 복수를 빼도 물혹 때문에 커진 배는 작아지지 않았다. 

*복수 천자 : 복강에 구멍을 내서 비정상적으로 고인 복수를 제거하는 시술.


 투석을 하다가 혈압이 너무 떨어져서 투석을 다 진행하지 못했다는 말도 몇 번 들었다. 그럴 때는 그 다음 날 가서 다시 투석을 했다.


 기억력이 좋아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전후 상황, 인과 관계를 명확히 기억하면 좋으련만 아쉽게도 나는 기억력이 좋지 않다. 특히 과거에 있었던 일은 이야기로 기억하지를 못하고 장면, 장면으로만 기억을 해낸다.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가 앞뒤가 안 맞거나 사실과 다를 수도 있다. 


 일하는데 엄마가 입원을 했다고 연락받았다. 엄마가 투석을 다 하지 못했고, 복수도 너무 차서 움직이기 곤란해서 입원했다고. 보호자가 옆에 상시 있어야 되는 상황이라고. 

 가서 보니 엄마는 힘 없이 누워있었다. 혈색이 좋지 않았다. 어두운 황색. 진짜 엄마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과 이 상태로 오랜 기간 버텨야 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마침 금요일이었던 것 같다. 병실 침대 옆, 보호자 용 침대에서 주말을 보냈다. 둘째 동생을 부르고, 막냇동생도 불렀다. 둘째는 주말에 왔고, 막내는 졸업 준비, 취업 준비로 바빠서 1주일만 있다가 오겠다고 했다. 


 둘째는 엄마와 화기애애하게 얘기를 나눴다. 둘째가 낮동안 엄마를 돌봐줘서 나는 집으로 가서 쉬었다. 둘째는 집으로 돌아갈 때 엄마를 꼭 안아줬다. 참 착한 아이다. 항상 엄마를 떠날 때 엄마를 안아줬다. 나는 엄마를 안아준 적이 별로 없다. 아마 아예 없을 것이다. 가끔 엄마가 기분 좋을 때 나를 안으면 떨떠름하게 등을 토닥였던 기억은 있지만 내가 엄마를 안은 기억은 없다. 착한 딸이 하나 있으니 나 같은 딸도 하나 있는 거지. 


 나는 출근을 해야 해서 엄마 옆에 계속 붙어있을 수가 없었다. 요양보호사가 상주하는 병실이 하나 있다고 간호사가 말했다. 거기 자리가 나면 바로 병실 이동시켜달라고 부탁드리고 나는 출근했다. 일하다 보면 전화가 왔다. 엄마가 찾는다고. 그러면 병원으로 갔다. 무슨 일이었는지 생각나지 않는 여러 가지 이유로 나를 찾았다. 엄마는 낮동안 나를 한번은 꼭 찾았고 나는 일하다말고 병원에 왔다. 엄마의 용건이 끝나면 다시 직장으로 돌아갔다가 일이 끝나면 병원으로 다시 돌아왔다. 피곤했지만 다행히 며칠 지나지 않아 요양보호사가 상주하는 병실 자리가 나서 그곳으로 이동할 수 있었다. 


 그 병실에 50대는 엄마 하나뿐이었다. 다른 사람은 70대, 80대, 90대. 환자 보호자들이 엄마 나이였다. 아니, 엄마보다 나이가 더 많았다. 처음 병실을 옮기고 엄마가 대변 보기가 너무 힘들다면서 사과를 좀 깎아오라고 해서 사과를 깎아 갔다. 엄마는 사과를 손에 쥐고 질겅질겅 씹어먹었다. 영혼이 날아간 눈이 뭘 보는지 멍하게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그 앞에서 울었다. 어쩌다가 엄마가 이 모습이 됐는지, 이렇게 되려고 그렇게 악착같이 살아온 건지 한스러웠다.


 내가 우는 모습이 너무 안쓰러워 보였는지 다음날 맞은편 보호자가 나를 슬쩍 불러서 봉투를 하나 쥐어주었다. 깨끗한 5만원권 지폐가 든 봉투였다. 내가 화들짝 놀라면서 괜찮다고, 정말 괜찮다고 거절했지만 내 야상 주머니에 봉투를 기어코 밀어 넣으셨다. 내 생각엔 내 차림이 너무 어려 보였던 것 같다. 그분이 보기엔 이런 상황을 감당하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로 보였던 것 같다. 옷을 나이에 맞게 입어야겠다는 다짐을 하고, 다음날 병실 냉장고에 청포도를 사서 넣어두었다. 모두 함께 드시라고 넣어두었는데 드셨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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