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단편소설
언니가 집 밖을 안 나간 지 10일째다. 내가 등교를 하고, 친구들과 놀고, 술을 마시고, 쓰러져 잘 동안 언니는 거실 바닥에 요를 깔고 항시 같은 자세로 누워서 텔레비전만 봤다. 항시 같은 자세라니, 농담이라고 생각하겠지? 농담이 아니다.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어서 확인해봤다.
“언니야, 바깥바람 좀 쐬라.”
“응? 안 나가도 된다.”
언니는 리모컨을 쥔 손을 흔들면서 자신은 괜찮다는 의사를 표시했다. 나는 산책을 하려고 외투를 두툼히 입고 장갑을 끼고 혹시라도 너무 추울까 봐 마스크까지 챙겼다. 바닥에 등가죽이 붙은 마냥 떨어지지 않는 언니를 처연히 바라보다가 ‘나는 저러지 말아야지.’하고 결심했다.
“그럼 나는 나간데이.”
하고 나가려는데 언니가 벌떡 일어나 앉더니 내 바짓가랑이를 붙잡았다. 잡는 거로는 부족했는지 내 다리를 두 팔로 꼭 감싸고 놓지를 않았다.
“오늘 일요일이잖아. 어디 가네?”
“집에만 있기 심심해서. 밖에서 좀 걷고 카페라도 가려고.”
“집에 있어라. 집에서 쉬는 날도 있어야지. 니는 맨날 바깥으로 나가더라.”
언니가 손을 위아래로 격렬히 흔들며 앉아보라고 했다. 장갑을 벗으며 자리에 앉으니 언니는 얼토당토않은 얘기를 시작했다.
“지금 밖에 무슨 난리가 났는 줄 아나? 외계 생명체가 지구를 부수고 있다.”
“부수고 있는 거 치고 밖이 너무 조용한 거 아이가?”
“에이그, 우리가 못 듣는 파장대의 소리가 나는 폭발물을 쓰니까 그렇지. 이미 밖은 초토화돼서 끝장났어.”
“언니야,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라.”
내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자 언니는 내 손을 잡으면서 다급히 말했다. 이불 속에만 들어있었던 손은 어찌나 따듯한지 잡은 순간 내 손도, 몸도, 마음도 녹아버리는 것 같았다.
“사실은 외계 생명체가 아이다. 밖에는 거대 바퀴벌레가 돌아다니고 있다.”
“언니야, 텔레비전 너무 많이 봐서 미친 거 아이가?”
“방사능에 노출돼서 바퀴벌레가 엄청 커졌다니까. 자동차만 한 바퀴벌레가 지금 땅을 뒤덮고 있다.”
“언니야, 아무래도 월요일에 나랑 병원을 가보는 게 안 낫겠나.”
“걔네가 갑자기 너무 커져서 못 날아다니는 걸 우리는 다행으로 생각해야 된다. 우리 집은 다행히 3층이잖아.”
“기어오르면 되지.”
언니는 뜨아하는 표정을 지으면서 나를 쳐다봤다. 그 생각은 못 했다는 얼굴이다. 내가 맞장구칠 때가 아니었는데. 언니는 흥분해서 발바닥을 마구 비비기 시작했다. 눈을 희번덕거리면서 빠르게 말을 이었다.
“그래, 기어오를 수가 있잖아. 그 생각을 못 했네. 큰일인데. 바퀴벌레약은 듣지도 않을 텐데.”
“언니야, 방사능에 노출돼서 커진 바퀴벌레는 지금도 우리 집에 돌아다닌다. 지난번에 음식물 쓰레기통에서 튀어나와서 기겁한 적 있잖아. 됐고, 나는 갑갑해서 좀 걸을래.”
한쪽 무릎을 곧추세우고 일어나려는데 언니는 다시 내 정강이를 잡았다.
“그래. 이제는 진실을 말해줄 때라는 생각이 든다.”
“응? 또 무슨 쓸데없는 얘기를 할라고.”
언니는 한껏 진지해지려는 표정을 짓고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말했다.
“사실은……, 니가 내 딸이다.”
“언니야, 언니는 제정신이 아이다. 내일 우리 꼭 병원 가자? 언니 누워서 텔레비전 봐라. 언니 좋아하는 거 하네.”
나는 손가락을 들어 텔레비전을 가리켰다. 언니는 그렇게 나를 붙잡더니 볼륨을 높이고 텔레비전 리모컨을 다시 손에 쥐어주자 순한 양처럼 바닥에 누웠다. 나는 “그렇지, 그렇지. 착하네.”하고 추임새를 넣으며 언니를 눕혔다.
장갑을 다시 끼고 현관문을 열었는데 하늘에서 거짓말처럼 분홍색 함박눈이 내리고 있었다. 회색빛 뿌연 구름 아래로 주먹만 한 분홍색 솜사탕이 하늘하늘 떨어지고 있었다. 나는 흥분해서 언니에게 소리쳤다.
“언니야, 하늘에서 분홍색 눈이 내린다! 나와 봐봐!”
손을 휘저으면서 나오라고 했지만, 언니는 발을 꼼지락거리면서 고개도 들지 않았다.
“뭐라노. 니 시력이 어찌 된 거 아이가. 나 병원 가기 전에 니 안과부터 들러야 되겠다야.”
“언니야, 농담이 아니라니까, 나와 봐봐.”
아무리 손을 휘저어도 언니는 쳐다보지 않았다. 열어놓은 현관문 때문에 추운지 깔고 있던 이불 끄트머리를 잡더니 홱 돌려서 이불의 반을 몸 위로 덮었다.
“춥다, 문 닫아라.”
“아이 참, 언니야, 분홍색 눈이라니까!”
언니는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못 믿겠다는 듯이 한쪽 눈썹을 잔뜩 올리더니 말했다.
“핸드폰으로 찍어줘.”
나는 장갑을 벗고 두툼한 외투 속에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하늘에서 내리는 분홍색 눈을 동영상으로 찍으면서 ‘언니가 이걸 보면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집 밖으로 뛰쳐나오겠지.’라는 생각에 웃음이 절로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