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단편소설
“왜 자꾸 고집을 부리는 거야!”
신부 화장을 받는 중에 혜수가 고함을 질렀다. 키가 쪼그매서 한복 안에 하이힐 좀 신겠다는 게 그렇게 큰 잘못인가?
“아니, 사돈어른이 너무 크잖아. 나는 그렇지 않아도 너무 작고. 박나래랑 장도연처럼 보이겠어.”
“누가 엄마를 봐! 내 결혼식에 다들 나 보러 오지, 엄마 보러 와?”
“내 친구들도 와!”
혜수에게 지지 않으려고 나도 같이 큰 소리를 쳤다. 혜수는 눈을 치켜뜨더니, “엄마 마음대로 해!” 앙칼지게 말하고 눈을 감아버렸다. 메이크업하는 아가씨가 나를 봤다가 혜수를 봤다가 눈동자를 굴리며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웨딩홀 신부 대기실에 들어서자 매니저가 활짝 웃으면서 다가왔다.
“어머, 신부님 너무 아름다우세요. 이쪽으로 오시고요. 어머, 어머니. 누가 보면 신부님 언닌 줄 알겠어요.”
“아이고, 참 말씀두…….”
후후하고 웃는데 나를 노려보는 혜수가 눈에 들어왔다. 상견례 할 때부터 계속 나보고 나이 들어 보여야 한다면서 어찌나 괴롭히던지. 내 평소 스타일로는 절대 안 된다며 혜수는 굳이 나를 백화점에 데리고 가서 60대나 입을 법한 스타일로 나를 입힌 후 상견례 자리로 데리고 갔다. 그런들 뭐, 사돈들 눈 커지는 거 보니 다 알아차리는 거 같던데.
“장모님, 30대 같아 보이세요.”
신부 대기실로 사진 찍으러 온 사위가 또 칭찬을 했다.
“호호호, 이서방, 나 40대 된 지 얼마 안 됐어. 그거 그리 큰 칭찬 아니다. 다음에 더 좋은 걸로 해줘.”
“조용히 해!”
혜수가 비명을 지르듯 소리쳤다.
“혜수야, 너 신부가 왜 그렇게 고함을 지르니? 좀 고상하게 있어.”
“엄마 때문이잖아! 다른 엄마들처럼 의젓하게 좀 있으면 안 돼?”
혜수는 인상을 잔뜩 찌푸린 채 울먹거렸다. 이서방은 중간에서 어쩔 줄 몰라했다. 아유, 저 분위기 안 살피는 성깔머리. 나랑 똑같네.
“알았어. 나는 나가서 품격 있게 하객들 맞이하고 있을 테니까 너나 잘하셔.”
한복 치마를 끌어 모으면서 밖으로 나왔다.
사돈들은 벌써 나와서 인사를 하고 있었다. 사돈과 어색한 인사를 나눈 후 웨딩홀을 들어서는 내 친구들을 맞았다. 중학생인 딸 과외비에 등이 휘어지고 있는 진태, 아들이 초등학생인데 벌써부터 대학 입시 준비에 열을 올리는 시원이, 유치원생 쌍둥이 둘을 키우느라 나날이 야위어가는 영란이, 최근에 늦둥이를 낳은 미경이까지 다들 아이를 데리고 함께 왔다.
“아유, 서준이도 왔어?”
“응, 떨어지려고 해야 말이지. 우선 데리고 왔어. 예식할 때는 시끄러울지 모르니까 뷔페에 가 있을게. 폐백 끝날 때까지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천천히 하고 와.”
“응, 고마워. 먼저 가서 먹고 있어.”
하객이 많지 않은 터라 곧 심심해졌다. 치마 밑단을 잡고 하느작하느작 몸을 흔드는데 다행히 매니저가 와서 식이 시작된다고 알렸다.
높은 천장 아래로 하얀 천을 늘어뜨린 입구 쪽에 사돈과 섰다. 회색 치마에 빨간 저고리를 입은 사돈은 늘씬하니 보기가 좋았다. 내가 빨간 저고리를 입고 싶었는데. 혜수가 빨간 저고리는 어려보인다며 한사코 말려서 군청색 저고리를 입었다. 빨간색이 얼굴을 화사하게 해줘서 더 예쁜데. 11cm 하이힐을 신었지만 사돈이 워낙 키가 커서 내 머리는 사돈의 어깨 밖에 닿지 않았다. 그래도 어깨를 펴고 등을 곧추세웠다. 혜수 엄마로서 당당한 모습을 보여줘야지. 신랑 친척 쪽에서 신부 어머니가 너무 젊은 거 아니냐고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사돈이 이서방을 느지막한 나이에 가져서 나이 차이가 더 두드러져 보일 거다. 젊은 게 죄도 아닌데, 뭐 어쩌라고. 어두운 조명이라 내 빨간 귀는 보이지 않을 거다. 단상까지 천천히 걸은 후 단상 양 쪽에 올라 촛불을 켜고 내려가서 내 자리에 앉으면 된다.
사돈의 손을 잡고 걸으려니 지나간 날들이 카펫 위로 펼쳐진다. 고등학교 졸업도 안 했는데 덜컥 애가 생겼다. 같이 키우자고 약속했던 남자는 도망가 버렸다. 엄마, 아빠와 함께 혜수를 키우기로 했다. 젖을 뗀 후 엄마에게 혜수를 맡기고 일을 나갔다. 혜수가 초등학생 때는 내가 너무 어려 이모라고 하고 엄마, 아빠와 함께 입학식, 운동회, 학예회를 갔다. 혜수가 너무 예뻐서 남자 생각도 안 났고, 다른 욕심도 안 났다. 내 인생의 여름이 다 지나고, 가을이 다가오는 줄도 몰랐다. 하지만 이제 혜수가 떠나니까. 혜수가 떠나고 나면 독립해서 작은 원룸이라도 하나 얻어야지. 포근하게 내 인생의 가을을 보내야지. 연애도 하고, 여행도 가고 재밌게 살자.
“양가 어머님이 입장하시겠습니다!”
그래, 이 길이 끝나면 이제 나도 자유롭게 날아가자. 힘차게 한 발 내딛는 데 휘청하면서 구두가 벗겨졌다. 내 몸이 허공을 가르는 게 느껴졌다. 아, 다행이다. 혜수가 못 봐서. 봤으면 또 엄청 짜증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