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톱을 깎으려다가

#초단편소설

by 옥상희

투석하는 순금 옆으로 익숙한 아주머니가 지나갔다. 아주머니는 옆 침대에 누우면서 순금에게 말을 걸었다.


“우리랑 같은 시간에 오는 할아버지 있잖아.”

“네. 그분 그제 안 오셨죠?”

“응, 지난 금요일에 그 할아버지 칠순인데 자식들 아무도 안 왔다고 했던 거 기억나?”

“네. 그랬죠.”


순금과 아주머니처럼 그 할아버지도 화, 목, 토 오전 시간에 투석을 했다. 지난 토요일 할아버지는 간호사들이 생신 축하한다며 건넨 인사에, “그게 축하할 일이었어? 자식새끼들이 코빼기도 안 비쳐서 축하할 일인지 몰랐네.”하며 퉁명스레 대꾸했다. 원래가 불퉁한 성격이라 간호사들은 그러려니 여기고 할아버지의 굵은 혈관에 주삿바늘을 꽂았다. 화요일에는 할아버지가 보이지 않았다. 가끔 일이 있으면 오후 시간으로 바꾸기도 해서 순금도 아주머니도 별 걱정하지는 않았다.


“할아버지가 많이 속상하셨나 봐. 돌아가셨다네?”

“아, 돌아가셨어요?”


몇 번 안 보이면 떠났거니, 하고 받아들이는 게 투석 받는 사람들의 일상이라 둘 다 그리 슬퍼하지는 않았다.


“시원하게 추어탕 한 그릇 드시고 돌아가셨다네? 그 얘기 들으니까 나도 추어탕 먹고 싶더라. 먹고 나서 바로 투석하러 오면 안 되려나?”


‘추어탕…….’


순금도 좋아하던 추어탕을 못 먹은 지 7년이 넘었다. 칼륨 수치가 높아서 신장이 제 기능을 하지 않는 투석환자에게는 치명적인 음식이었다. 마지막 만찬으로 추어탕을 삼켰을 할아버지를 생각하면서 순금은 눈을 감고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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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시간이 넘게 걸리는 투석을 끝내고 신발을 신으려는데 발톱이 길어서 발톱 뿌리가 너무 아팠다. 발이 아파오기 시작한 게 벌써 한 달이었다. 이제까지는 어찌저찌 신발을 신기는 신었지만, 이제 한계점에 다다른 것 같았다. 순금은 신발의 뒤축을 발뒤꿈치로 구겨 눌렀다. 슬리퍼 모양이 된 신을 신고서 한 발짝 내디뎌 봤다. 여전히 아프긴 했지만 못 걸을 정도는 아니었다. 병원을 나가는 길, 병원 로비에 걸린 대형 거울 앞에서 순금은 멈춰 섰다. 가느다란 머리카락에 파마 기운이 빠져서 머리가 휑해 보였다. 하얀 두피가 훤히 보였다.


‘미용실을 가야겠네. 우선 오늘은 쉬고, 내일 가자.’


머리 아래쪽으로 눈길을 내리자 팔다리가 삐쩍 곯고 배가 남산만 한 거미 같은 자신의 몸이 보였다.


‘인생은 왜 이리 잔인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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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요일 내내 투석 때문에 지친 몸을 뉘고만 있었던 순금은 금요일 오후 겨우 일어났다. 세수만 간단히 하고 발톱이 신발 끝에 닿지 않게 조심하면서 신발을 구겨 신고는 단골 미용실로 향했다. 머리를 마는 중에 미용사는 조용히 순금의 남편 얘기를 꺼냈다.


“언니, 원래 이런 얘기는 사람들이 다들 모르는 척해서 당사자가 제일 나중에 알잖아요. 사실 나라면 누가 빨리 얘기해 주는 게 좋겠다 싶더라고요. 그래서 말하는 거예요. 언니 신랑, 저 앞에 미용실 있잖아요. 거기 아줌마랑 연애하는 거 같아요. 나는 최근에 알게 됐는데 알고 나서 보니까 주변에 모르는 사람이 없더라고요. 아픈 마누라 두고 어떻게 그럴 수가 있나. 너무 하죠. 내 신랑이 그랬다고 생각하면, 나 같으면, 이 년놈들을 당장에 끌어와 가지고…….”


어느 정도 예상한 일이었지만,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 명확히 들으니 온몸의 땀구멍에서 힘이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순금은 머리를 만져주고 있는 미용사처럼 년놈들을 끌고 와서 악다구니를 할 힘이 조금도 남아 있지 않았다. 어젯밤, 남편은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몇 년 전 순금의 배가 부풀어 올라 남편의 술배보다 커지기 시작한 뒤로 남편은 순금을 멀리하기 시작했다. 지금 순금의 배는 다섯 쌍둥이라도 가진 것 마냥 부풀어 있었다. 간에 생긴 낭종 때문이었다.


‘심하지 않을 때 간을 잘랐어야 했는데…….’


남편이 수술비 문제로 여차저차 미루다 보니 손을 댈 수 없는 지경이 돼버렸다. 자신이 남편이라도 멀리했을 거라고 순금은 자신의 몸을 탓하며 멀어지는 남편을 욕하지 못했다.


다음 날 아침, 순금은 손톱깎이를 들고 오랜만에 만난 남편에게 다가갔다.

“투석하러 가기 전에 발톱을 좀 깎았으면 하는데 깎아 줄래?”


양말을 신던 남편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대꾸했다.


“니가 깎아.”

“배가 너무 불러서 손이 잘 안 닿아. 좀 깎아 줄래?”


남편은 일어나서 순금을 쳐다보지도 않고 지나치며 던지듯이 내뱉었다.


“아이, 귀찮아.”


그대로 남편은 현관문을 열고 나갔다. 순금은 손톱깎이를 들고서 가슴이 무너지는 것을 온전히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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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금은 혼자서 발톱을 깎기로 했다. 거실에 앉아 손톱깎이를 쥔 손을 앞으로 쭉 내밀고 발을 당겨봤다. 부풀어 오른 배 때문에 좀처럼 닿지 않았다. 손을 쭉 내밀어 새끼발가락 발톱을 손톱깎이 안에 넣고 손가락 끝에 힘을 줘서 “딸깍, 딸깍.”하고 잘라냈다. 다리를 쭉 펴고 한숨을 내쉬었다. 다리를 구부리면서 숨을 들이켜고 네 번째 발가락에 손톱깎이를 들이미는데, ‘툭, 툭’하는 소리가 몸속에서 울렸다.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순금은 그대로 옆으로 쓰러졌다. 잔숨을 들이쉬고 내뱉으면서 고통을 참아보려고 애썼다.


‘내가 남편이라도 싫었을 거야.’


통증 때문에 눈물을 흘리면서 순금은 생각했다. 오랫동안 아픈 것이, 배가 부풀어 오른 것이 순금의 잘못이라고 볼 수는 없었다. 타고나길 유전병을 가졌고, 모른 채 결혼을 했고, 유전병이 발병해서 아픈 것뿐이었다. 순금은 입술을 깨물면서 자신이 죽지 않는 것을 원망했다. 죽음은 생의 반대, 저쪽 끝에서 여생의 실 끝을 잡고 조금씩 조금씩 사람들을 당겼다. 어떤 사람은 확 잡아끌어서 한순간에 먹어버렸다. 하지만 순금에게는 10cm도 남지 않은 실을 손톱 끝으로만 야금야금 잡아 당겼다. 모든 원인은 순금 자신이 죽지 않는 데 있는 것 같았다. 순금은 정신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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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금이 눈을 떴을 때 거실 한가득 햇빛이 들어차 있었다. 커텐을 치려고 몸을 일으켰다.


“헉!”


‘데엥…….’하고 옆구리부터 온몸으로 통증이 퍼져갔다. 쓰러진 동안 땀을 흘려서 옷이 축축했다. 오늘은 순금이 투석하는 날이었다. 고장난 신장을 대신해서 기계가 일 해주는 날이었다. 순금은 통증을 참으려고 입을 앙다물면서 몸을 일으켰다. 커텐을 치러가는 한 걸음, 한 걸음마다 거실 바닥에 눈물이 떨어졌다. 커텐을 치고 소파에 앉기 전, 탁자 위에 놓여 있는 배달음식 카탈로그를 펼쳤다. 한 손에는 핸드폰을 들고, 한 손에는 쫙 펼친 카탈로그를 들고 잔숨을 들이마셨다가, 내쉬었다가, 다시 들이마시면서 전화를 걸었다.


“네, 여기 추어탕 한 그릇만 배달해주세요.”


*


순금은 부들부들 떠는 손으로 추어탕을 한 숟갈 떠서 입안에 넣었다. 고소한 맛이 입 안 가득 퍼졌다. 눈시울이 금세 붉어지고, 눈물이 추어탕 그릇 안으로 떨어졌다.


‘남편이 잘못한 걸까?’


남편은 몇 년을 견뎠다. 20대에 고른 짝이 40대부터 언제까지고 계속 아프다면, 그것을 하염없이 함께 해야 한다면, 너무 가혹하지 않을까. 일이 흘러가다 보니 이렇게 된 것이지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다.


‘잘못이 있다면, 아프면서도 죽지 않고 계속 꾸역꾸역 살아가게 만든 투석기계에게 있지. 살아갈 아무 이유도 없는데, 내가 무슨 대단한 사람이라고 계속 살아가기를 권한 의사에게 있지.’

오랜만에 먹는 추어탕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맛있었다. 종소리처럼 퍼져가는 통증을 참으며 또 한 숟갈 크게 퍼서 입안으로 집어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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