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단편소설
맞은 편에서 걸어오는 어린 아이의 눈이 커진다. 엄마 손을 잡아 당기며 나를 빤히 쳐다본다. 아이 엄마는 나를 힐끗 보고는 힐난하는 눈길로 아이를 쳐다본 후 아이 손을 잡아당기며 바삐 지나간다. 아무렇지 않은 척 표정을 유지하기 위해 애쓴다. 표정에 신경쓰느라 발 아래를 신경 못썼다. 푹 꺼진 타일을 잘못 밟아 휘청하면서 0.1톤에 가까운 내 몸이 바닥에 쿵하며 쓰러진다. 세상이 한번 펄쩍 뛴다.
“여어, 아파트 무너지는 줄?”
부끄러워 빨개진 얼굴로 일어나는 나를 바라보며 하늘하늘 남편이 다가온다. 왜 같이 먹는데 이 인간은 이렇게 날씬한가. 뚱한 표정을 짓고 선다. 남편이 빙글빙글 웃으며 내 주위를 빙글빙글 돈다. 저 가녀린 목을 TV만화에서 본 것처럼 양손으로 조르고 싶다.
눈을 내리깔고 한 걸음 내딛는다. 남편이 옆에서 팔짝 뛴다.
“어이쿠, 땅이 울리네?”
남편을 향해 주먹을 휘두른다. 요리조리 상체를 쏙쏙 피하면서 좀처럼 입을 다물지 않는다.
“공격은 스피드가 생명이지!”
니 몸은 윗도리만 있니. 발로 다리를 걷어찬다. 아이고,하더니 다리를 감싸안고 땅 위를 구른다. 너무 세게 찼나? 다가가니 갑자기 벌떡 일어나 소리친다.
“지진이다! 지진이야! 땅이 흔들린다!”
뒤돌아 걷는데 코끝이 시큰해진다. 코를 훌쩍이는데 남편이 다가온다.
“삐졌어? 삐졌어? 아이, 왜 그래, 삐졌어?”
남편을 집안으로 들여보내고, 혼자서 조금 더 산책한다.
우리 아파트는 가로등이 많지 않아 좋다. 시각의 여백을 후각이 채워준다. 흙냄새, 나뭇잎 냄새, 밤 냄새. 가을 냄새. 겨울이 들어서지 않은 늦가을 밤. 선선한 바람이 분다. 하얀 가로등 불빛 아래, 하루살이 몇 마리가 헤엄친다. 걸음을 조금 빠르게, 아파트 단지를 한바퀴 돌아 집 앞 가로등으로 다시 돌아왔다. 빠른 걸음 때문에 가빠진 숨소리가 더욱 크게 들린다. 어느 집에서 ‘백조들의 춤’이 흘러나온다. 이 대목 동작은 ‘아쌍블레’. 한때는 나도 하얀 발레복을 입고 발끝을 한껏 세워 도약했었다.
그때는 항상 배가 고팠다. 엄마는 간장 종지에 밥을 담아줬다. 밥을 다 먹고 반찬을 더 먹으려고 하면 수저를 치워버렸다. 밥을 먹어도 배가 고팠다. 내가 중딩이 되었을 때, 엄마는 내 불어나는 체중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엄마는 학교에 있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하루 종일 나를 쫓아다녔다. 학교에 있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우리 학교는 급식이 잘 나왔다. 엄마는 급식을 많이 먹으면 안 된다고 나에게 당부하고, 담임에게, 영양사에게까지 찾아가 나를 굶겨달라고 했다. 덕분에 나는 담임과 영양사에게 불쌍한 아이라는 인상을 얻게 되었다. 점심을 마음껏, 정말 마음껏 먹을 수 있었다. 친구들은 쉬는 시간마다 간식거리를 나눠줬다. 아침, 저녁을 굶어도 점심, 간식을 마음껏 먹으니 기아 상태에서 저체중 상태가 되었다. 엄마는 나를 붙들고 울었다. 왜 살이 찌냐며. 나는 발레는 내 길이 아닌 것 같다고 했다.
여기선 ‘바뜨망 데벨로빼’. 동작은 다 떠오르는데, 지금도 할 수 있을까?
‘드미 쁠리에’, 도약, 다시 ‘드미 쁠리에’
나 방금 예쁘지 않았나? 조금 더 과감하게 ‘씨쏜느 우베르뜨’를 해보자. ‘드미 쁠리에’, 도약, ‘꾸드삐에’, 다리를 옆으로!
“발목 다쳐! 그만하고 들어와!”
언제부터 보고 있었던 건지, 베란다 창문을 열고 머리만 삐죽 내민 남편이 내게 소리친다. 벌리고 있던 팔을 얌전히 내린다.
현관을 들어서자 남편이 다가온다.
“야식 먹을래?”
뚱한 표정으로 대답을 않고 서 있으니 한 손에 마데카솔과 대일밴드를 들고 다가온다. 내 바지를 걷어 올리더니 무릎을 살핀다.
“이것 봐. 이럴 줄 알았어. 이 무게에 그렇게 심하게 넘어졌는데 안 긁히고 배겨?”
마데카솔을 무릎에 문지르고 대일밴드를 야무지게 붙인다.
“땀 안 났지? 대일 밴드 붙였으니까 샤워하지 마. 비빔면 먹을까?”
고개를 끄덕인다.
“그럴 줄 알고 냄비에 물 올려놨지!”
남편은 부엌으로 가고, 나는 거실에 앉아 티비를 켠다. 산책했으니까 괜찮아. 살이 조금 빠지면 성인 발레 교습이나 들을까? 괜히 발가락 끝을 세워 앞으로 길게 발을 뻗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