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단편소설
사무실 건물에서 나오자마자 지나가는 택시를 잡았다.
“새영병원이요!”
터널을 빠져나온 도로 가에는 벚꽃이 흐드러지게 펴있었다. 바깥 날씨가 이렇게 좋았구나. 형광등 아래서만 일하다보니 햇빛이 이렇게 따뜻한 지, 봄바람이 이렇게 따스하게 부는 지도 몰랐다. 이렇게 좋은 날에도 사람이 죽을까. 엄청 추운 날, 을씨년스럽게 바람부는 날,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날에 보통 사람이 죽지 않을까, 하고 통계적으로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했다.
“이인희님께서 따님을 보고 싶어 하세요. 오늘 부쩍 힘드신가봐요.”
일하는 중에 걸려온 요양보호사의 전화. 괜찮을까? 나는 속으로 벌써 엄마의 장례절차를 생각했다. 나쁜 년. 못된 년.
병실은 햇빛이 가득해서 따스한 기운이 감돌았다. 베드에 엄마가 눈을 감고 가만히 누워있었다.
“엄마…….”
천천히 다가가니 엄마가 고개를 돌려 나를 보고 살짝 웃었다. 눈을 천천히 깜빡 거리면서 샴고양이처럼 손을 천천히 내밀어 옆에 앉으라고 손짓했다. 옆에 앉으니 엄마는 다시 눈을 감았다. 이대로 엄마의 숨결이 모두 빠져나가버릴까봐 조마조마했다. 그때, 엄마가 힘없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나이가 들면 어디 갈 데가 없어서 그런지, 너희 아빠는 그리도 나를 쫓아다녔다. 거실로 가면 거실로 오고, 안방으로 가면 안방으로 오고, 시장 가겠다고 챙기면 자기도 시장 가겠다고 나서고. 나는 혼자서 쉬고 싶은데 그렇게 사람 꽁무니를 쫓아다녔어.”
엄마는 힘에 부쳤는지 크게 한숨을 쉬었다. “후후”하고 코웃음을 살짝 친 엄마는 말을 이었다.
“하루는 옆집 아줌마랑 고스톱을 치러 가려는데, 눈치도 없이 따라가겠다는 거야. 내가 고함을 지르면서 사람 귀찮게 그만 좀 쫓아다니라고 그랬더니 현관에 돌처럼 굳어서는……. 너희 아빠 죽고 나니까 그게 얼마나 미안하던지. 미안하고, 안쓰럽고……”
엄마의 깊은 눈가 주름 사이로 얇은 눈물이 따라 흘렀다. 이게 엄마와의 마지막 대화라면, 엄마를 웃게 해주고 싶었다. 아빠와 약속했던, 지금껏 숨겨왔던 비밀을 털어놓아도 될 것 같다. 엄마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담을 수 있겠지. 나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활짝 웃으며 말했다.
“엄마, 그날 아빠는 엄마 고스톱 치러 가는 거 싫어서 쫓아가려고 했던 거야. 며칠 있다가 경찰한테 잡혔잖아. 그거 아빠가 신고한 거야.”
아이고, 후후, 그랬구나, 라고 힘없이 웃을 줄 알았는데. 엄마가 눈을 번쩍 뜨고 고개를 돌려 나를 똑바로 쳐다보면서 말했다.
“아니, 망할 할배가!”
엄마는 에구구구, 에구구구, 죽는 소리를 하면서 몸을 일으켰다. 베개가 밀리면서 그 아래 있던 화투짝들이 우르르 쏟아졌다.
“엄마, 아프다고…….”
“아니, 너네 아빠는 내가 집을 거덜내기를 했어, 빚 보증 서달라고 했어? 내가 재밌어 하는 일은 죽어도 못 보지. 나는 무조건 집에서 살림하고, 가만히 집 지켜야 되는 사람이야, 너네 아빠한텐. 아이고, 죽어서 속이 시원하다. 냉장고 안에 있는 요쿠르트 좀 꺼내와 봐.”
아직도 어안이 벙벙해서 가만히 앉아 있는 내게 “요쿠르트 가져오라고!”라며 엄마는 힘찬 음성을 내질렀다. 냉장고로 향하면서 요양보호사가 전화했을 때 ‘위독하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는 걸 뒤늦게 떠올렸다.
“망할 영감탱이, 사람이 재밌게 사는 꼴을 못 봐.”
등뒤에서 엄마가 궁시렁거렸다. 목적을 잃은 눈물이 볼을 따라 흘렀다. 병실 안이 따뜻해서 인중에 송골송골 땀이 맺혔다. 한 손으로 땀을 훑으면서 한 손으로는 냉장고에서 시원한 요쿠르트를 꺼냈다. 엄마 하나, 나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