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불이 타오른다

#초단편소설

by 옥상희

자동차가 뒤집히면서 언덕 아래로 굴러내려갔다. 가벼운 에이미 머리가 연신 창문에 부딪혔다. 몸에서 튕겨 나간 영혼은 그 길로 몸과는 다른 방향을 향했다. 끌어당겨지듯 하늘로 올라간 영혼은 어딘지 알 수 없는 허공에 안착했다. 곧 깨어나 앉은 영혼은 자신이 ‘에이미’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가만히 앉아서 살아있을 때처럼 곰곰이 생각했다. 손이 보였고, 다리가 보였다.


‘시각 체계는 몸에 달라붙어 있을 텐데, 죽은 내가 어떻게 손을 보고 다리를 볼 수 있지?’


에이미는 살아 있을 당시 영혼이 있을 리 없다며 교회 다니던 친구를 비웃었던 것을 반성했다. 오른손으로 왼손을 때려봤다. 왼손이 아프진 않았지만, 오른손이 정확히 왼손과의 경계를 느꼈다.


‘영혼도 분자로 이루어진 건가.’


한껏 미심쩍은 표정을 지으며 일어났다. 일어나니 왠지 걸어야 할 것 같았다. 처음 해보는 게임인데도 숲속으로 들어가야 보물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듯이. 에이미는 천천히 한 걸음 내디뎠다. 한 걸음 내딛는 순간 발끝에서 살아 있을 때의 기억이 잉크 방울 퍼지듯 몸을 물들였다.


여덟 살 에이미는 우는 동생 옆에서 엄마에게 대들었다.


“왜? 왜 그래야 되는데? 내가 왜 잭한테 다 양보해야 되는데?”

“니가 누나잖아.”

“누나는 다 양보해야 돼? 엄마는 삼촌한테 왜 양보 안 해? 삼촌한테 엄마 돈도 주고, 화장품도 다 줘!”


에이미는 엄마에게 맞았다. 맞으면서도 두 눈을 부릅뜨면서 커서 복수하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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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미는 누가 보지도 않는데 어깨를 으쓱했다. 또 한 걸음.


열 살 에이미는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했다. 몇몇 남자애들이 빨간 머리라며 머리카락을 잡아당기고, 짱구라며 이마를 때리고 도망갔다. 에이미는 속으로 ‘하나, 둘, 셋’하고 참은 후에 일어나 남자애들에게 의자를 들어 던졌다. 남자애들이 도망가면서 놀리자 주변에 있는 책을 던지고 남자애들의 책상 위에 있는 교과서를 박박 찢었다. 남자애들은 자리에 서서 사색이 됐다. 교실로 들어온 선생님은 에이미를 야단쳤다. 에이미는 선생님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대꾸했다.


“쟤네들이 먼저 안 그랬으면 저도 안 그랬어요!”

“그래도 선생님한테 와서 얘기를 하면 되지, 왜 애들 교과서를 찢어?”

“선생님한테는 말해도 해결이 안 되니까 그렇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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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은 에이미를 노려봤다. 에이미도 지지 않고 눈을 치켜떴다. 학교로 엄마가 불려오고 에이미는 집에서 엄마에게 맞았다. 이놈의 집구석을 벗어나고야 말겠다고 결심했다.


또 한걸음.


열두 살 에이미는 주말마다 가는 교회에서 목사에게 질문했다.


“하느님은 왜 아브라함한테 아들을 죽이라 그래요? 할 말이 있고 못 할 말이 있지.”


목사는 웃으면서 친절하게 설명해주었지만, 에이미는 목사 말은 듣지 않고 목사 뒤쪽에 친구들과 서 있는 잘생긴 크리스 얼굴을 감상했다. 예배가 끝나고 집에서 에이미는 엄마에게 맞았다. 에이미는 다시는 교회에 가지 않으리라 결심했다.


열네 살 에이미는 월경을 시작했다. 에이미는 잭에게 자신이 죽을 병에 걸려 피가 나온다고 거짓말했다. 죽기 전 마지막으로 동네 옷가게에 걸려 있는 옷을 입어보고 싶다고 지금까지 잭이 착실하게 용돈을 모아둔 저금통을 달라고 했다. 잭은 누나가 불쌍하다고 울면서 에이미에게 저금통을 내밀었고, 에이미는 저금통을 들고 가 옷을 사 왔다. 방에서 새 옷을 입고 춤을 추다가 엄마에게 들켜 맞을 뻔했지만 에이미는 재빠르게 도망쳤다.


열여섯 살 에이미는 페미니스트가 되었다. 수업시간에는 페미니스트 동아리방에서 친구들과 계획을 짜고, 수업이 끝나면 길거리에서, 시청 앞에서, 광장에서 피켓을 들고 시위했다. 시위 중 지나가는 남자들과 시비가 붙어 경찰서도 자주 왔다갔다했다. 경찰서에 불려올 때마다 엄마는 혀를 찼다.


“너처럼 제멋대로 산 애가 무슨 불공평한 대우를 받았다고 이렇게 난리야?”

“모든 여성이 나처럼 살라고 하는 거야.”


까까머리를 한 에이미는 껌을 씹으며 엄마에게 대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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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여덟 살 에이미는 아르바이트를 했다. 낡은 중고차라도 한 대 사려면 돈을 모아야 했다. 돈은 하늘에서 떨어질 리 만무하고 잭에게 뺏을 수도 없는 노릇이어서 에이미는 집에서 가까운 카페에서 일을 시작했다. 하지만 점장이 월급 지급을 미뤘다. 에이미는 근무 시간에 일을 하고, 근무 시간이 끝나자 ‘이곳은 월급 지급을 미루는 사업장입니다’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가게 문앞에 섰다. 점장은 얼굴이 뻘게져서 앞으로 나왔다.


“뭐 하는 짓이야?”

“월급 안 주셨잖아요!”

“좋게 얘기하면 될 일을 왜 이렇게 크게 벌려?”

“좋게 얘기하면 브렌다처럼 돈도 못 받고 쫓겨나잖아요! 이왕 쫓겨날 바엔 점장님 쪽팔리게라도 해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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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장은 안으로 들어가 돈다발을 들고 나왔다. 에이미에게 돈을 집어 던지고 “내일부터 출근하지마!”라고 했다. 에이미는 땅에 떨어진 돈을 줍고, 피켓을 가게 옆에 얌전히 놓아두고 집으로 돌아갔다. 이후 어디서도 아르바이트 자리를 얻을 수 없었다.


스무 살 에이미는 새로 사귄 친구가 몰고 온 차를 얻어 탔다. 그 친구는 어디서 구했는지 모를 대마초를 한가득 들고 와서 에이미에게도 권했다. 그날은 차 안이 연기로 뿌옇게 되도록 한껏 취한 상태였다. 친구가 운전을 시작했다. 달리는 차 안에서 목청이 터져라 라디오에서 나오는 노래를 따라 부르는데 차가 언덕 아래로 굴러떨어졌다.


“에이미, 지옥!”


웅장한 소리가 들렸다. 에이미는 살짝 겁이 났다. 입고 있던 옷이 사라지고 벌거숭이가 된 에이미는 바닥이 푹 꺼져서 밑으로 떨어졌다. 엉덩이가 바닥에 부딪쳤다. 에이미는 어안이 벙벙해서 가만히 앉아 있었는데 엉덩이가 순간 확 뜨거워졌다. 화들짝 놀라 일어나니 엉덩이가 빨갰다. 바닥이 뜨거워 계속 깨금발 질을 했다. 그때 저 앞에서 불꽃이 치솟아 올랐다.


“소리 질러어어!”


환호성이 들렸다. 에이미는 불꽃 쪽으로, 환호성 쪽으로 향했다. 화염 앞에서 얼굴에 시커먼 칠을 한 벌거벗은 가수들이 고함을 지르며 노래를 불렀다. 가수들과 마찬가지로 벌거벗은 주변 사람들은 발이 뜨거워서인지 흥에 젖어서인지 끊임없이 뛰었다. 한쪽에서는 남들이 보든 말든 섹스를 하고, 다른 쪽에서는 한껏 약에 취한 것처럼 풀린 눈으로 바닥을 뒹굴었다.

에이미가 어리둥절해서 어떡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고 있을 때, 처음 보는 사람이 다가왔다.


“온 지 얼마 안 됐지? 즐겨! 여기는 신이 없어!”


그 사람은 신이 나 고함을 지르면서 불꽃 속으로 뛰어갔다. 에이미는 발바닥이 뜨거워 펄쩍펄쩍 뛰면서 소리 질렀다.


“죽이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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