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 준 선물

드골공항

by 옥상평상

11살 일기

혁우를 잃어버렸다. 혁우를 볼 수 없다고 생각하니 너무 슬펐다. 한국에 돌아가면 혁우에게 잘해줘야겠다.


9살 일기

아빠를 잃어버렸다. 무섭고 창피했다.




나름 기대를 하고 먹었던 호텔 조식은 형편이 없었다. 이번 여행의 마지막 조식이어서 그랬는지 서운한 마음이 더했다. 지난번 파리에 들렀을 때 먹었던 바게트 빵은 까르푸 마트에서 산 것조차도 맛있었는데, 오늘 조식은 바게트 빵까지도 눅눅하기 짝이 없었다. 어쩌면 이곳에 오기 전 먹었던 런던 호텔 조식이 워낙에 훌륭해서였는지도 몰랐다. '요리가 맛있기로 유명한 파리'와 '음식이 맛없기로 소문난 런던'이라는 공식은 적어도 이번만큼은 사실이 아니었다.


드골 공항에서의 최대 미션이었던 소비세 환급을 무사히 마친 후, 탑승 게이트에 도착했다. 신기하게도 탑승 대기장 근처에 비디오 게임기인 플레이스테이션들이 설치되어 있었다. 유럽시장에 자사 제품을 홍보하기 위한 일본 기업의 전략으로 보였다.


"와, 게임이다."

"아빠, 나 이거 하고 있을게요."


워낙에 게임을 좋아하는 아이들인지라 모처럼의 체험 기회를 놓칠 리가 없었다. 게임을 하는 아이들을 그곳에 둔 채 근처 공항 서점으로 향했다. 하지만 그것이 화근이 될 줄은 그때까지 전혀 몰랐다.


한 삼십 분가량 서점 근처를 돌아봤을까? 돌아와서 보니 혁우의 모습이 보이지가 않는 것이었다. 형에게는 가타부타 말도 않고 좋아하는 게임을 찾아 나선 것이 분명했다.


혁우를 잃어버린 건 바르셀로나의 구엘공원 사건 이후 처음이었다. 그 뒤로는 줄곧 신경 쓰며 혁우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아 왔었는데 결국 여행 마지막 날에 사단이 나 버리고 만 것이었다. 가장 신경이 쓰였던 소비세 환급에서부터 항공권 발급까지 무사히 끝마치자 긴장이 풀려버린 것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


혁우를 찾아 넓은 공항 탑승 대기장 이곳저곳을 헤매기 시작했다. 한 가지 다행이었던 것은 이곳이 외부와 단절된 공간이라는 점이었다. 이미 출국 심사도 마친 상황이라 다시 공항 바깥으로 나갈 방법은 없었다. 분명, 혁우는 이 넓은 공간 어딘가에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가슴을 두드리며 올라오는 불안한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공연히 영화 같은 데서 보았던 범죄의 장면마저 떠오르며 등에는 식은땀까지 흘렀다.


얼마나 찾아 헤매었을까?
갑자기 멀리서 낯익은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아빠, 혁우예요!"


울음소리의 방향으로 있는 힘껏 달려갔다. 한국인으로 보이는 젊은 신혼부부 옆에서 엉엉거리며 서럽게 울고 있는 혁우가 보였다. 달려가 울고 있는 혁우를 와락 안았다.


"아이가 많이 놀란 거 같아요."

"정말, 감사합니다."


곁에서 낯 모르는 아이를 애써 달래준 신혼부부가 고마워 넙죽 감사 인사를 했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혁우에게 한소리를 퍼부으려는데 막상 혁우의 얼굴을 보니 화보다는 웃음부터 터져 나왔다. 눈물과 콧물로 범벅된 시커먼 혁우의 얼굴은 그야말로 웃기고 슬펐다. 생각해보면 구엘공원 사건 때는 화부터 쏟아내던 나였다.


여행 마지막 날이라서일까?


오랜 여행을 하며 내게도 여유란 것이 생긴 모양이었다.


어쩌면, 이번 여행이 준 가장 큰 선물일지도 몰랐다.

뭘 잃어버렸지 그림.jpg




2017.4.27.파리-서울.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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