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끝나지 않은 여행

by 옥상평상

에필로그: 끝나지 않은 여행





처음에는 여행의 기억을 정리하고 아이들이 추억을 되새길 수 있으면 좋겠다는 소박한 생각으로 출발했다. 글을 써서 책으로 엮는다는 것이 이토록 힘든 일 일 줄 몰랐기 때문에 나올 수 있었던 무모한 용기였다. 형편없는 글 솜씨에 한 줄도 채우지 못한 채 멍하니 모니터만 바라보다 책상에서 일어났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렇게 좌절의 날을 보내던 어느 날 문득 '대단한 문학작품을 쓰려는 것도 아니잖아?' 하는 생각이 내 머리를 후려쳤다.


그 후부터는 조금씩 마음이 편해지며 한 줄 두 줄 채워나갈 수 있게 되었다. 엉덩이로 글을 쓴다는 생각으로 시간이 날 때마다 무조건 의자에 앉았다. 어색한 문장 하나하나를 억지로 이어가는 노력을 계속했다. 쓰고 지우고, 고치고 쓰고 하는 고된 작업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고된 점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책 쓰기는 나를 다시 즐거웠던 여행의 날들로 데려가 주었다. 자칫 기억의 저편에 묻히게 될 뻔했던 여행의 기억들이 책을 쓰기 위한 공부로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책을 쓰는 동안 나는 다시 한번 아이들과 유럽에 있었다. 무심코 지나쳤던 건물의 이름과 의미를 새로이 알게 되면서 도시의 역사와 문화를 새로이 체험할 수 있었다. 어쩌면 책을 쓰지 않았다면 머릿속을 의미 없이 떠돌아다니다 흔적없이 사라지고 말았을 기억들이었다.




세상에 있는 용도를 알 수 없는 물건 중의 하나로 '아빠'를 이야기하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그만큼 ‘아빠’라는 위치가 현재를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애매하게 인식된다는 뜻이리라. 어릴 적 내게 아빠는 아빠가 아니라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우리 가족을 힘들게 먹여 살리는 가장이었고 항상 내게 따끔한 가르침을 는 무서운 존재였다. TV를 보던 우리 형제들은 아버지의 발소리가 계단을 통해 들려오면 얼른 TV를 끄고 방으로 들어가 교과서를 보는 시늉을 했다. 아버지가 일찍 들어오는 날은 좋아하는 TV를 보지 못하는 슬픈 날이었다. 아버지는 존경의 대상이기도 했지만 그만큼 무서운 존재였다.


시대가 많이 바뀌어 ‘프렌디(firendy)’ 즉, ‘친구 같은 아빠’가 대세인 요즘, 주위에서 그런 옛날의 아버지를 찾기란 힘들 것이다. 아버지의 아들이어서일까? 나는 여전히 아들들에게 친구로 다가서진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어쩌면 아이들이 조금 더 자라 친구가 되어주기를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한 가지 다행스러운 점은 이번 여행으로 그 시기가 임박해 오고 있음을 알게 된 것이었다. 여행을 통해 아이들이 부쩍 성장했음을 온몸으로 느꼈기 때문이었다. 이번 여행을 계기로 아이들의 성장만큼 나 또한 성숙해지길 바라며, 조금 더 아이들에게 솔직하고 편안한 아빠로서 다가설 수 있었으면 좋겠다.


여전히 나와 아이들의 앞에는 함께 할 여정이 많이 남아있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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