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뚝 모양을 닮아 '굴뚝 빵'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뜨레들로 몇 개를 푸드트럭에서 사 먹었다. 아이들은 초코 같은 토핑이 입혀지지 않아서인지 그렇게 맛있어하는 표정은 아니었다. 푸드트럭이 세워진 도로 건너로 알폰소 무하의 그림이 그려진 입간판이 보였다. 지난번 여행 때 들렀던 무하 박물관이었다. 무하의 그림은 일본 애니메이션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그래서였을까? 전체적인 그림의 느낌이 어릴 때부터 일본 애니메이션을 우리나라 만화영화로 오해하며 봐 왔던 나에게 매우 친숙한 그림체였다. 하지만, 우리 형제들은 별다른 감흥이 없는 모양이었다. 일본의 애니메이션에 비해 헐리우드 대작 애니메이션이 인기 있는 요즘, 아이들에게는 미국의 디즈니나 픽사 스튜디오의 애니메이션 캐릭터가 훨씬 익숙했기 때문이었다.
"잠깐 들렀다 보고 갈까? 무하 그림은 만화를 보는 것 같아서 재미있을 거야."
"아빠, 저녁에 공연도 보기로 했잖아요. 박물관은 지금 별로 가고 싶지 않은데."
일우가 반대했다. 반면, 혁우는 아무 생각 없는 표정으로 굴뚝 빵만 입안 가득 물고 있었다.
어제 못 보았던 비투스 대성당의 스테인드 글라스부터 이곳 무하 박물관까지 아이들과 알폰소 무하는 인연이 없는 모양이었다. 무하의 그림은 끝내 형제들을 유혹하는데 실패하고 말았다.
무하 박물관을 지나치고 나니 넓게 펼쳐진 바츨라프 광장이 나왔다. 프라하에서는 이 광장이 있는 지역을 '신시가지'라고 부른다고 한다. 하지만 ‘신시가지’라고 해서 결코 최근에 개발된 곳은 아니었다. '신시가지'가 만들어진 것은 거의 700년이나 거슬러 올라간다. 1348년 체코의 세종대왕 격인 카를 4세는 황량한 벌판이었던 이곳에 바츨라프 국왕의 기마상을 세운 후, 넓은 시장을 개설했다. 참고로, 바츨라프 국왕은 체코에 기독교를 전파하고 어제 들렀던 비투스 대성당을 세운 왕이다. 이후, 시장에는 정기적으로 말 시장이 열리기 시작했으며, 이로 인해, 바츨라프 광장은 '말시장'이라는 별칭 또한 갖게 되었다.
바츨라프 광장
웅장한 바츨라프 국왕의 기마상 아래에는 프라하의 민주화를 위해 숨져간 청년들 '얀 팔라흐'와 '얀 자이츠'의 추모비가 있었다. 1968년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를 표방하며 소련에 대항했던 두브체크 서기장을 제거하기 위하여 지금의 러시아의 전신인 소련이 프라하를 침공했다. 수백 대의 탱크를 앞세운 소련군에 대항하여 프라하 시민들은 어깨동무를 하고 맨몸으로 막아섰다. 이른바 '프라하의 봄'이었다. 하지만 소련군은 군중들을 향해 무자비하게 발포를 했고 바츨라프 광장은 삽시간에 수백 명이 죽고 다치는 피바다가 되고 말았다. 프라하는 안타깝게도 소련군에 의해 완전히 장악되고 말았다.
몇 개월 후 얀 팔라흐라는 대학생이 광장에서 스스로의 몸을 불태웠다. 소련군의 총칼에 제압당한 프라하 시민들이 다시 봉기하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에서 나온 안타까운 분신이었다. 아쉽게도 그의 몸을 불태웠던 불꽃은 프라하 시민들에게까지 번지지 못한 채 사그라들고 말았다. 하지만, 그의 죽음은 이후 프라하 시민들의 마음 깊숙한 곳에 작은 불씨로 남겨졌다. 그리고 수십 년 후, 소련 연방이 붕괴하면서 그 불씨는 다시 불꽃으로 거대하게 타올라 마침내 체코의 민주화를 이뤄냈다. 청년 얀 팔라흐의 희생은 결코 헛된 것이 아니었다.
숨져간 청년들에게 묵념했다. 어제의 투어에서 이들에 대한 설명을 들었던 형제들 역시 엄숙한 표정으로 함께 했다.
프라하의 영웅들에게 묵념을 올리고 나서
KFC에서 점심을 때운 후 블타바 강을 따라 북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어제 투어의 시작 지점이었던 루돌피 눔의 드보르작 동상에서부터 출발한 우리는 어느새 프라하 시내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레트나 공원까지 도착했다. 계단을 따라 힘겹게 올라가니 탁 트인 전망대가 나왔다. 학교 음악시간에 보았던 거대한 메트로놈이 설치되어 있어 메트로놈 전망대라고 부르는 장소였다. 전망대 앞 광장은 맹렬하게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청년들로 가득했다. 스케이트보드가 콘크리트 바닥에 내동댕이 쳐지는 소리가 쉼 없이 귀를 울렸다. 이곳에서 프라하 시내의 아름다운 전망을 고요하게 관람하기란 불가능해 보였다.
“ 와 멋있다. 아빠 나도 스케이트보드 사줘요.”
“ 야 저거 위험하단 말이야.”
혁우는 스케이트보드를 볼 때마다 사달라고 졸랐다. 감정조절을 잘하고 안전하고 편안한 느낌을 좋아하는 일우와 달리 감정표현이 거친 혁우는 위험한 것들에 대해서조차 부딪혀 보려는 도전정신이 있었다. 함께 여행을 다니니 형제의 다른 점이 더욱 두드러져 보였다.
레트나 공원 메트로놈 전망대에서 바라본 프라하는 프라하 궁 앞에서 바라본 전망과는 다른 매력이 있었다. 프라하 궁에서 본 풍경이 말 라스트라나 지구를 중심으로 한 밝은 갈색 지붕들로 가득한 고즈넉한 장면이었다면 레트나 공원에서의 풍경은 남북으로 길게 흐르는 블타바 강을 중심으로 한 프라하 시내 전체가 조망되는 탁 트인 장면이었다. 불현듯 맥주 한 모금이 간절해졌다. 확실히 높은 곳에 오르면 맥주나 막걸리 같은 것이 떠오르는 모양이다. 어쩌면 그냥 어쩔 수 없는 동네 아저씨여서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레트나 공원 너머로 우리가 머물고 있는 숙소가 어슴프레 보였다. 걸어서 가기에는 엄두가 나지 않는 거리였다. 우리 숙소가 시내의 그것에 비해 저렴한 데에는 합당한 이유가 있었다.
레트나 공원 전망대에서 내려본 프라하 시내
레트나 공원에는 우리나라 드라마 ‘프라하의 연인’과 일본 드라마 ‘노다메 칸타빌레’에 나왔던 예쁜 건물의 식당 ‘하나브스키 파빌리온’도 있었다. 하지만 배가 고프지 않았던 우리는 이 귀한 방문의 기회를 가볍게 다음으로 넘기기로 했다. 절대로 가격이 비싸서는 아니었다.
시덥지 않은 상상을 하다가 무료 공중화장실을 발견했다. 프라하를 비롯한 유럽에서는 찾기 힘든 정말 귀한 장소였다. 마침 볼일이 급한 터라 반갑기 짝이 없었다. 유럽을 여행하게 되면, 우리나라에 감사하게 되는 일들이 생기는데 그중 대표적인 것이 화장실과 물, 이 두 가지였다. 물은 식당에서조차 돈을 지불하고 먹어야 했으며, 공중화장실은 찾기도 힘들뿐더러 있다 해도 거의 대부분 천원이 넘는 요금을 지불하고 이용해야 했다. 물을 마음대로 마시고 용변을 무료로 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하고 행복한 일인지는 유럽에 나오면 금방 알게 된다. 없던 애국심까지 생기는 기분이다.
“아빠는 하루 종일 화장실만 왔다 갔다 해.”
"너도 나이 들어봐!"
속으로 생각만 하려고 했는데 욱하는 마음에 무심코 입 밖으로 튀어나와 버렸다. 확실히, 용변을 마음대로 볼 수 없다는 강박감에 나는 한국에서보다 훨씬 자주 화장실을 들락날락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