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멋없는 아빠.

스메타나 홀

by 옥상평상

11살 일기

아빠가 기분이 좋아 보여 장난감을 사달라고 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 아빠가 정말 장난감을 사준다는 것이었다. 완전 대박이었다.


9살 일기

아빠가 장난감을 사줬다. 형 덕분이다.




오늘은 프라하에서 보내는 마지막 날이었다. 프라하에 오기 전 미리 세웠던 계획은 가이드 투어뿐이었다. 달리 세워놓은 계획은 없었기에 가이드 투어를 모두 마친 오늘은 정말 할 일이 없었다.


'프라하 일정을 너무 길게 잡았나?'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숙소에서 마냥 빈둥댈 수는 없었다. 일단 숙소 바깥으로 나섰다. 어제에 이어 잔뜩 찌푸린 하늘이었다. 프라하에서는 유독 날씨 운이 없었다. 이번 여행의 날씨 운은 지난번 부다페스트에서 모두 사용해 버린 모양이었다.


일단 첫날 투어의 출발장소였던 화약탑 근처 시민회관으로 향했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지만 왠지 그곳에 가면 오늘 일정의 실마리가 보일 것 같았다. 생각해보니 이렇게 계획도 없이 무대책으로 온 것은 이번 여행에서 프라하가 처음이었다. 한 번 와 봐서 익숙하다고 느껴서였을까? 하지만 그건 이미 지나온 로마나 피렌체, 베네치아 같은 몇몇 지역도 마찬가지였다. 프라하를 무계획으로 오게 만든 가장 유력한 용의자는 장기간의 여행으로 인한 매너리즘과 방전된 체력, 그리고 피로였다. 오늘은 가벼운 일정으로 용의자들을 털어내 보기로 했다.


시민회관의 알림판에 붙어있는 공연 포스터가 눈에 들어왔다. 유명한 오페라의 아리아와 발레, 그리고 오케스트라가 함께 하는 공연이었다. 날짜를 확인하니 바로 오늘 저녁이었다. 눈이 번쩍 뜨이는 것 같았다. 안 그래도 아이들에게 이번 여행 동안 제대로 된 공연 하나를 보여주지 못해 아쉬웠던 차였다. 공연 형식도 아이들에게 안성맞춤으로 보였다. 오페라나 발레, 오케스트라 공연 등 하나의 공연 전체를 감상하는 일은 분명 아이들에게는 무리였다. 특히, 오페라 같은 경우에는 자막이 있다 하더라도 영어 혹은 현지어일 까닭에 언어 문제도 있었다. 오히려, 이 공연처럼 각 장르를 조금씩 맛볼 수 있는 형태가 우리 형제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기회였다.


매표소에 물었더니 아이들의 요금은 무료라고 안내를 한다. 게다가 아이들의 좌석 등급은 보호자가 구입한 좌석등급을 따라간단다. 그 이야기에 나는 앞뒤 가리지 않고 바로 VIP 티켓을 구입했다. 자그마치, 체코의 국민작곡가 스메타나의 이름을 딴 스메타나 홀의 2층 VIP 좌석이었다. 하지만, 가격은 한국 돈으로 65000원 정도에 불과했다. 어떤 공연이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한국에서는 이 가격으로 이 정도의 공연을 VIP 좌석에서 관람하는 것은 상상조차 힘든 일이었다. VIP 좌석에서 세 사람이 공연을 관람하는 가격이 65,000원이라는 사실에 횡재라도 한 기분이 들었다. 왠지 계획을 세우지 못했던 나머지 일정조차 행운이 따를 것 같았다. 매표소 창구 직원도 이런 내 기분을 짐작했는지 빙그레 미소를 지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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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P 좌석에서 클래식 공연을 관람하는 일은 처음이라서...


돈을 아꼈다는 생각에서였을까?


" 아빠, 우리 장난감 사주면 안 돼요? "


아이들이 유난히 기뻐하는 내 기분을 눈치챘는지 그 틈을 재빨리 파고 들어왔다. 아이들의 전략은 적중했다. 한없이 너그러워진 마음에 어제 들렀던 백화점의 장난감 코너로 데려가 장난감 몇 개를 사줬다. 결국 절약한 아이들의 공연 입장료는 모두 장난감 값으로 지출되고 말았다.


" 대신에, 이따 공연 볼 때는 얌전하게 보기로 하는 거야."


굳이 거기에 한마디 더 보탤 필요가 있었을까?

장난감을 들고서 정신없이 기뻐하는 아이들의 뒤통수에 쓸데없이 조건의 말을 덧붙이는 나였다.




나는 참 멋없는 아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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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블의 영웅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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