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라디움 백화점- 하벨 시장- 루돌피 눔- 존 레넌 벽
오늘도 잔뜩 찌푸린 하늘에서는 청승맞게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아무래도 밖으로 돌아다니기는 힘들 것 같아 시민회관 근처의 팔라디움 백화점에서 쇼핑을 하기로 했다. 아이들은 오랜만의 백화점 장난감 구경에 정신이 없었다. 자꾸만 늘어나는 짐으로 배가 불러오고 있는 슈트케이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슈트케이스 하나를 더 구입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스페인과는 비교도 안되게 비싼 가격으로 인해 쉽사리 구입을 결정할 수없었다. 결국, 재정의 한계를 이유로 슈트케이스 구입은 포기하기로 했다. 이제부터는 더 이상 짐을 늘리지 않는 방법밖에 없었다. 이미 가지고 있는 짐 역시 꼭 필요하지 않은 물건은 정리하기로 했다.
아내의 선물을 찾던 중 손톱 손질을 편리하게 할 수 있는 화장품을 발견했다. 부피도 작아 한국까지 가지고 가기에도 좋아 보였다. 구입하기 전 아내의 허락을 받기 위해 전화를 했지만 연결이 되지 않았다. 그냥 아이들에게 의견을 물어 결정하기로 했다.
"어때? 괜찮지? 이렇게 슥슥 닦기만 하면 손톱 색깔이 바뀌고 광택이 나."
"우와! 신기하다."
"아빠, 분명 엄마가 좋아할 거예요."
프라하 백화점에 모인 화장품 바보 세 명은 이런 대화를 나누며 엄마의 선물을 결정하고 말았다.
이곳 백화점에는 3D 프린터로 출력시킨 조각 모형이 많이 전시되어 있었다. 상품들의 정교함의 수준이 한국에서 보던 것보다 높아 꽤 놀랐다. 적어도 전자 계통의 기술력은 우리나라가 앞설 것이라는 당연한 기대 같은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착각이었다. 적어도 3D 프린터 영역에서의 체코의 기술력은 우리나라를 앞서는 것은 물론 세계 최고의 수준으로 보였다.
장난감 매장 한 켠에서는 예쁘장한 소녀가 드론을 조종하면서 판촉활동을 벌이고 있었다. 그 열심히 하는 모습이 좋아 보였다. 우리 돈으로 5만 원 정도 하는 드론의 가격 역시 매력적이었다. 구매를 하기로 했다. 하지만, 계산을 하려는 순간 더 이상 트렁크에 여유공간이 없음이 떠올랐다. 내가 멈칫하자, 미소를 짓던 그녀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녀의 원망 섞인 간절한 눈빛을 뒤로한 채 서둘러 가게를 나섰다.
'미안해, 학생.'
백화점을 나왔다. 나오기 전 레고 장난감을 사겠다는 아이들과 잠깐의 실랑이가 있었지만, 얼마 남지 않은 레고랜드 방문을 미끼로 가까스로 빠져나올 수가 있었다. 어제 들렀던 시민회관과 화약탑을 지나 다시 하벨 시장에 도착했다. 비가 더 많이 오고 있어서였을까? 확실히 어제보다 인파가 줄어 있었다. 사람들이 없으니 어제 보지 못했던 것들이 눈에 띄었다. 그중에 하나, 음수대로 보이는 수도시설이 있었다. 이곳 시장에서 산 과일을 씻어서 바로 먹을 수 있게 만든 시설이었다. 관광객과 시민을 위한 배려가 돋보였다. 하지만, 가이드분의 비싼 가격에 대한 충고가 기억났던 나는 끝내 오늘도 과일을 사지 않았다.
미리 신청해 두었던 투어시간이 다되어 출발 장소인 루돌피눔에 앉아 가이드를 기다렸다. 합스부르크 왕가의 황태자인 루돌피의 이름을 딴 루돌피눔은 19세기 후반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블타바 강변에 건축되었다. 스메타나와 함께 체코의 자랑스러운 음악가인 드보르작의 이름을 딴 메인 홀 '드보르작 홀'이 특히 유명하다. 건물 앞 광장에는 드보르작의 동상이 서 있으며, 건물 꼭대기 난간은 체코, 오스트리아, 독일 등지의 유명한 작곡가와 미술가들의 조각상들로 장식되어 있다. 한때, 체코슬로바키아 국회의사당으로 쓰이기도 했으나, 대대적인 보수작업을 거친 후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체코의 유명한 음악 축제인 ‘프라하의 봄’의 개막식과 폐막식이 비록 시민회관의 스메타나 홀에서 열리지만 나머지 대부분의 공연은 이곳 루돌피눔에서 연주된다.
오늘의 투어가 시작했다. 루돌피눔에서 출발해 카를교를 지나 존 레넌 벽에 다다랐다. 원래 이곳은 몰타 공화국 대사관의 담벼락이었다. 카를교에서 출발해 복잡한 골목을 여러 번 거쳐야 도착하는 후미진 곳으로 공산당 치하의 체코의 젊은이들에게는 반정부 메시지를 표현하는 해방공간의 역할을 했다. 공산정권도 그 사실을 알았지만 치외법권의 권한을 가진 외교 공관의 영역이었기에 차마 손을 대지는 못했다. 몰타공화국 역시 이 낙서들을 '표현의 자유'로 인정해 지우지 않았다.
이 벽이 존 레넌 벽이라고 불린 이유는 단순했다. 1980년, 그룹 비틀스 출신의 가수 존 레넌이 평화를 주제로 불렀던 노래 ‘IMAGINE'을 남기고선 살해당했을 때, 그의 노래를 좋아했던 체코의 젊은이들은 이 벽에 그의 죽음을 추모하는 메시지를 남기기 시작했다. 이것이 그전부터 자유를 노래해 오던 이 벽이 '존 레넌 벽'이라고 불리게 된 계기였다. 한 번 정도는 존 레넌이 이 벽에 방문했겠거니 했던 나의 생각은 막연한 착각이었다. 존 레넌이 이곳을 찾았던 일은 아쉽게도 없었다고 한다.
같은 투어 팀 중에 두 딸을 데리고 온 젊은 엄마가 있었다. 그녀의 품에 가만히 안겨서 가이드의 설명에 얌전히 집중하고 있는 딸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아, 딸들은 저렇게 엄마와 함께 얌전히 있을 수 있구나.’
아들만 키워온 내게는 저토록 고요한 세계가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 일종의 충격으로 다가왔다.
만약, 내게 딸이 있어 이 여행을 딸들과 함께 왔다면 이 여행의 모습은 여러모로 달랐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순간, 형형색색으로 도배된 존 레넌 벽을 배경으로 종횡무진 뛰어다니는 형제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형제들은 확실히 그 또래의 천둥벌거숭이 같은 남자아이들이었다.
"아빠, 형이 또 때렸어요."
"너, 형한테 까불지 말라고 했지?"
갑자기 딸 둘과 여행을 온 저 엄마가 몹시 부러워졌다.
어제저녁 숙소로 가는 길에 보았던 야외 식탁에서 한국 남자가 혼자 먹고 있던 식당을 찾아갔다. 그의 행색으로 보건대 왠지 오랜 경험을 가진 여행자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런 그가 저렇게 혼자서 먹는 식당이라면 백 퍼센트 맛집일 것 같았다. 내 예상은 맞았다. 무난한 가격에 메뉴가 맛있는 식당이었다.
" 팁을 얼마나 줘야 하지? "
" 10프로는 너무 많은 것 같은데. "
신혼부부로 보이는 한국인 커플이 옆 테이블에서 고민을 하는 것이 들려왔다. 그냥 지나칠까 하다가 살짝 오지랖이 발동했다.
"5프로 정도만 주셔도 돼요. 보통 5프로 정도 주는 것 같더라고요."
그들에게 부담을 주기 싫어 자리를 떠나면서 가볍게 말을 했다. 그러자 부부가 나와 시선을 맞추며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나가는 길에 나 역시 5퍼센트의 팁을 계산해서 줬다.
"고마워요. 좋은 여행 되세요."
점원이 감사 인사를 했다. 그녀가 고마워하니 나 역시 고마웠다. 문득, 어제저녁 식사의 기억이 떠올랐다. 지금과 마찬가지로 가게의 점원에게 5프로의 팁을 줬다. 하지만, 그는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마치 내가 무슨 잘못이라도 한 것처럼 퉁명스럽게 굴었다.
'팁이 부족한 걸까?'
하지만 퉁명스럽게 구는 그에게 팁을 더 주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았다. 그렇지 않아도 그는 우리가 처음 들어왔을 때부터 줄곧 뭔가 마뜩잖은 표정이었다. 솔직히 이 5프로의 팁도 주고 싶지 않았던 나였다.
어쨌든 작은 팁에도 고마워해 준 직원 덕분에 어제부터 뭉쳐있던 마음 한구석의 응어리가 풀리는 것이 느껴졌다. 사랑이 사랑을 불러오듯, 고마움은 또 다른 고마움을 불러오고 있었다. 팁에 대한 감사의 표시는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해 왔는데, 그 감사의 표시가 실은 고마운 것이었음을 오늘에야 알았다.
이 세상에 당연히 존재하는 것은 없었다.
모두 감사할 대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