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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상평상 Jul 31. 2022

커다란 산, 한산

영화 '한산'의 적장 와키자카의 기록과 함께

영화의 마지막 에필로그 격인 장면에서 이순신 장군은 부하인 이억기에게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난 그 이름이 마음에 드네. 한산이라."

"큰 뫼, 큰 산이란 뜻 아닙니까?"

"이곳 한산이 진정 큰 산이 되어 우리 산천을 지켜내길 바라보세나."


 '한산(閑山)'을 한문 그대로 해석하면 '한가한 산'이 되기에 '왜 큰 산으로 해석했을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한산도(閑山島)는 견내량 아래 고성과 거제도 사이에 있는 작은 섬으로 당시는 무인도였다. 그리고 그전까지만 해도 한산도는 나라에서 필요로 하는 말을 기르던 국영 목장지였다고 한다. 산과 들이 완만하고 섬 전체가 풀밭으로 이루어져 있어 조선은 이 섬을 목장으로 활용했다. 그래서 ‘한()가한 산()’이다. ‘큰뫼(한뫼)’ 또는 ‘말을 기르는 곳’이라는 뜻이 있다고 한다. ‘한산’의 ‘한’은 크다는 뜻의 한자 ‘한()’에서 유래하였다고 보는 것이 정설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한산도 [閑山島] - 한산섬 수루에 서서 바라보는 역사의 현장 (한국의 섬 - 통영시, 2021. 06. 15., 이재언)


역시 '큰 산'이라는 의미도 있다. 나라와 백성을 걱정하는 이순신 장군의 바람이 확실하게 드러나는 장면이란 생각이 들었다.




영화 '한산'에서 이순신보다도 많은 대사를 내뱉던 적장 와키자카 야스히로에 대해 찾아보았다. 그는 수도 '한양'을 탈환하기 위하여 3남지방(전라도, 경상도, 충청도)에서 모인 삼도근왕군 5만 명을 단 1,600여 명의 군사로 패퇴시킨 후, 그 공을 인정받아 수군 대장에 발탁된 장수였다. 영화 '명량'에서 조진웅 배우가 연기했던 '와키자카 야스하루'를 영화 '한산'에서는 변요한 배우가 연기한다. '명량'에서는 류승룡 배우가 연기한 '구루지마'에 밀려 다소 존재감이 없었던 '와키자카'는 '한산'에서 야심만만한 지략가적인 면모를 뽐낸다.


"7월 7일 카라시마(거제도) 앞쪽으로 배를 밀어 나아가니 마침 해협 안에 판옥선 4~5척이 있는 것을 보고 조총을 쏘며 반각 정도 싸움을 걸었다. 판옥선이 슬금슬금 뒤로 빼는 것을 빈틈을 주지 않고 공격하여서 3리 정도 쫓아갔을 무렵이었다. 판옥선이 막 해협을 지나 넓은 곳으로 나아갔다. 한 번에 키를 돌려 잡고는 큰 배를 양쪽으로 벌려 세워 아군의 배를 둘러쌌다. 이는 유인하여 무찌르는 계책임이 분명했다. 아군의 배에서 사상자가 많이 나왔다."


"적은 큰 배, 아군은 작은 배이므로 당해내기 힘들어서 원래 온 해협으로 물러나려고 했으나 적의 판옥선이 밀어붙여 와서는 아군 배에 호로쿠비야(화약이 담긴 포탄, 영화 한산에서는 조랑탄으로 나옴)를 던져 넣어 곧 배가 불타올랐다. (와키자카) 야스하루의 가신인 와키자카 사효에, 와타나베 시치에몬을 시작으로 이름 있는 자 여럿이 전사했다." -키자카기(脇坂記)


와키자카 가문의 기록인 '와키자카기'에 기록된 한산도대첩의 기록이다. 그가 '적은 큰 배, 아군은 작은 배이므로 당해내기 힘들어서'라고 기록한 것처럼 당시 조선수군의 주력선은 판옥선으로, 일본 수군의 주력선인 관선, 즉 세키부네에 비해 크기도 컸고 단단했다. 일본 수군은 조선수군이 화포를 운용했던 것에 반해 화포를 거의 운용하지 않았으며, 그들의 전략은 배 위에 올라타 백병전을 수행하는 '등선육박전'이었다. 하지만, 배 위에 올라타기 위해서는 판옥선에 접근을 해야 했는데, 조선수군의 막강한 화력 때문에 그것이 쉽지 않았다. 또 어찌어찌 접근에 성공했다고 해도 판옥선의 갑판이 세키부네에 비해 높았으므로, 배 위에서 쏘아대는 화살을 뚫고 사다리를 걸고 올라타는 일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결국, 와키자카가 이끈 일본 수군은 한산도 앞바다에서 이순신의 탁월한 전략과 막강한 화력을 앞세운 조선수군에게 괴멸되고 만다.  

판옥선과 세키부네의 비교(출처:나무위키)


"상황이 이렇게 되니 야스하루는 노 수가 많은 쾌속선으로 갈아탔다. 기동이 자유로우며 선체가 무사하다고는 하나 갑옷에 화살을 맞는 등 구사일생의 위기에 빠졌다. 적선이 쫓아오며 계속 불화살을 쏘아대니 야스하루의 고속선은 마침내 김해로 철수했다. 적의 손아귀에서 간신히 살아남은 부하 200여 명은 육지에서 50정(약 5.5킬로미터) 떨어진 작은 섬에 잠시 배를 대고 상륙했는데, 판옥선이 쫓아와 아군 배를 불살라버렸다.
마나베 사마노조라는 자는 당일 그 배의 선장이었는데, 그 배가 불타버린 이상 목숨을 건져봐야 별 수가 없고, 군중에서 다시 아군을 마주할 면목이 없다고 생각하여 할복해 죽고 말았다."

-키자카기(脇坂記)


갑옷에 화상을 맞으며 조선 수군에게 쫓기던 그는 작은 섬에 잠시 배를 대고 상륙했는데, 판옥선이 쫓아와 그의 배를 불살라버렸다. 당시의 급박한 상황이 기록에 잘 묘사되어 있다.


"상카라시마(거제도)의 작은 섬에 올라와 있던 와키자카와 그 가신들은 13일간 솔잎과 미역을 먹으며 불탄 배의 널빤지로 뗏목을 만들어 육지로 올라가려 하였다. 판옥선이 물러나는 틈을 잘 보고 있었는데, 카라시마(거제도) 밖에 일본의 병선이 몰려오고 있다는 것을 듣고 판옥선이 갑자기 물러났다. 그 틈에 5~6명씩 뗏목에 타고 그 섬으로부터 육지로 오던 중 판옥선이 다시 키를 돌려 와서 바닷가에서 (아군) 10여 명을 사살했다. 남은 자는 200여 명 남짓이었다. 겨우 호랑이 아가리를 벗어나 목숨을 건져 김해로 돌아왔다." -와키자카기(脇坂記)


'겨우 호랑이 아가리를 벗어나 목숨을 건져 김해로 돌아왔다.'는 그의 기록처럼 한산도 대첩은 일본 수군을 철저히 괴멸시킨 성공적인 작전이었다. 개전 초기, 조선수군의 병력은 전선 55척이었고, 일본 수군의 병력은 전선 73척이었다. 전투가 끝난 후, 아군의 피해는 전사자 3명 부상자 10여 명임에 반해, 일본 수군의 피해는 지휘관 부상 및 전선 47척 침몰에 12척이 나포되었다.


단순히, 전투의 결과만 놓고 보았을 때에는 대단한 승리가 아닌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우리나라 3대 대첩이라고 함께 거론되는 수십만 명의 적병을 상대로 했던 을지문덕의 '살수대첩'이나 강감찬의 '귀주대첩'에 비하기에는 얼핏 빈약해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류성룡의 '징비록'에 따르면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한다. '한양'을 점령한 '고니시 유키나가'가 평양에 당도했을 때 의주로 도망 와 있던 선조에게 다음과 같은 글을 보냈다고 한다.


"우리 수군 10만 명이 곧 서해로 도착할 것입니다. 임금께서는 이제 어디로 가시렵니까?"


영화 '한산'에서는 '와키자카 야스하루'가 조선 수군을 물리치고 서해를 넘어 명나라까지 진격하고자 하는 계획이 나온다. 실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조선에 보낸 국서에 '정명향도(征明嚮導)', 즉 '명을 정벌할 것이니 조선은 일본에 복속하고 명을 치는 데 앞장서라' 라고 했다. 물론 10만 명은 과장이겠지만, 일본 수군이 조선수군을 물리치고 서해를 타고 올라가 명나라까지 침략한다는 계획은 반드시 영화적인 각색만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만약, 이때 일본이 중국의 동쪽으로 쳐들어 갔다면 중국은 그것을 막느라 조선에 원군을 출병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당시, 전쟁의 상황은 일본군이 부산에 상륙한 지 20일도 안되어 수도 '한양'을 빼앗기고, 임금이 명나라로 망명하려는 급박한 상황이었다. 명나라는 선조가 너무 빨리 망명을 신청해오자 일본과의 결탁마저 의심하고 있던 실정이었다. '순망치한',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는 말처럼 명나라 또한, 조선이 일본에게 복속당하면 다음 차례가 될 것이 분명했다. 이러한 '풍전등화'와 같은 급박한 상황 속에서 이순신은 일본 수군을 괴멸시킴으로써 연전연승하고 있는 일본 지상군의 보급로를 완전히 끊어버리는 값진 승리를 이뤄낸 것이었다. 견내량 전투, 즉 한산도 대첩은 나락으로 떨어져 가고 있는 조선의 운명, 나아가 동아시아의 운명을 바꿔버린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이순신 장군은 한산도 대첩에서 승리함으로써 장대한 역사의 물줄기 한가운데에 거대한 산, 한산을 쌓아 올렸다. 역사의 강물은 한산에 가로막혀 새로운 방향으로 흐르기 시작했다.


류성룡 역시 징비록에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왜군의 한 팔을 꺾었기 때문에 비록 고니시가 평양을 점령했어도 군세가 외로워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였다.(중략) 또한 명나라 군사가 육로로 와서 구원하여 왜군을 물리칠 수 있었으니, 이것도 모두 한산도 해전의 공적이었다.”


그만큼 한산도 대첩은 조선을 넘어 명나라 즉, 동아시아 전체가 전쟁의 구렁텅이에 빠지는 것을 막았던 위대한 승리였다.




일본군의 장수인 준사가 이순신 장군에게 항복하면서 다음과 같이 물었다.


"대체, 이 전쟁은 무엇이옵니까?"

"의와 불의의 싸움이지."

"나라와 나라의 싸움이 아니고 말입니까?"

"그렇다."


이순신은 임진왜란을 국가와 국가 간의 전쟁으로 보지 않았다. 나라와 나라의 싸움이라고 보기에는 어떠한 명분도 없었으며 그 수법에 있어서도 일반 백성들의 코와 귀를 베어가는 등 간악하고도 치졸했다. 그는 또 전작인 '명량'에서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고 있다.


 "백성이 있어야 나라가 있고, 나라가 있어야 임금이 있는 법이지.

  장수된 자의 의리는 충(忠)을 좇아야 하고, 충은 백성을 향해야 한다."

 

한산에서 장수로서 의를 지키며 싸웠던 이순신은, 일본의 계략과 원균의 모함에 빠져 갖은 고문을 당하고 아무런 관직 없이 참전해야 하는 백의종군을 당하게 된다. 하지만, 그는 이후에도 명량이나 노량에서 장수로서 싸움을 계속해야 했고, 그의 의리의 방향은 임금이 아니라 백성을 향한 충으로 바뀌게 된다. 아니, 그에게 있어서 의가 좇아야 하는 충이란 처음부터 백성에 대한 충성이었을지도 몰랐다.

 

그때와 마찬가지로 지금도 '국가와 국가 간의 전쟁'을 빙자한 '의와 불의의 싸움'은 세계 곳곳에서 다양한 형태로 벌어지고 있다. 그만큼, 그 싸움은 앞으로 언제 우리 앞에 나타나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그럴 때마다, 우리 마음속 한산이 백성을 사랑했던 장군의 바람처럼 진정 거대한 산이 되어 우리를 지탱해 줄 것을 믿어본다.




다음부터는 약간의 스포일러가 있으니 아직 영화를 보지 않은 분은 주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치명적인 약점으로 참전이 불투명했던 상황에서 마침내 거북선이 등장해 적선을 통쾌하게 박살 내던 장면은 어릴 적 보았던 만화영화 '날아라! 우주전함 거북선'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했다. 여전히 일본 애니메이션에 대한 표절시비 등의 문제가 있는 작품이지만, 어릴 적 내게는 영화 '혹성탈출'을 보기 전까지 최고의 반전을 선사해줬던 감동적인 작품이었다. 해체되어 거북선의 부품으로 사용된 줄로만 알았던 로보트 태권브이가 거북선이 위기에 몰렸을 때 나타났던 모습은 아저씨가 다 된 지금에도 잊을 수가 없는 최고의 명장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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