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와 거북선 놀이를 했다. 노를 젓는 게 재미있을 줄 알았는데 힘만 들었다. 해군은 너무 힘들 것 같다.
"우리는 이순신장군의 후예다!"
부엔 레티로 공원에 도착했다. 둘레가 4킬로미터 이상이라는 이 거대한 공원에는 마드리드의 허파 역할을 하는 나무들이 15,000그루나 심어져 있다. 혁우가 ‘쿠키런’ 만화책에서 보고는 한국에서부터 ‘가고 싶다’며 노래를 불렀던 수정궁이 바로 이 레티로 공원 안에 있었다. 수정궁을 찾아보겠다며 혁우가 앞장서 달려갔다. 맞은편에서 조깅을 하던 아름다운 스페인 아가씨가 자신의 방향으로 전속력으로 달려오는 혁우를 신기한 듯 쳐다보았다.
“와 호수다!”
부엔 레티로 공원의 중앙호수
파란 빛깔의 넓은 호수 위에 하얀 꽃잎 같은 배들이 점점이 뿌려져 있었다. 아이들이 내게 간절한 눈빛을 보냈다. 모처럼 아이들에게 인심이나 쓰자 싶어 배에 올라탔다. 6유로의 저렴한 이용료도 한몫을 했다. 아이들은 ‘거북선 놀이’를 하자고 했다. 돌아가며 이순신 장군을 하고 노를 젓는 노꾼이 되었다. 호수는 순식간에 명량대첩이 벌어진 '울돌목'으로 변했다. 하지만 왜군은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었다. 대신, 이따금씩 파란 눈의 연인들이 탄 스페인 무적함대와 가볍게 부딪힐 뿐이었다. 이순신 장군의 후예들은 공격 명령 대신에 사과의 말과 미소를 날렸다. 그에 대한 답례로 스페인 무적함대의 연인들도 환한 웃음을 건넸다. 오후의 따사로운 햇살에 둘러싸인 레티로 공원에는 평화가 가득했다. 호수 위의 사람들은 모두가 천사였다.
노를 젓다 지친 아이들이 내게 노를 건넸다.
“자 모두 긴장해. 이제부터 최고속도로 달릴 거야.”
“와! 신난다!”
나는 있는 힘을 다해 노를 저었다. 매일 잔소리만 하다가 오랜만에 아이들에게 좋은 아빠가 되어준 것 같아 마음이 뿌듯했다.
스페인의 호수에서 노를 젓는 이순신 장군의 후예들
"설마 못들어가기야 하겠어?"
호수에서 놀다 보니 시간이 제법 지나버렸다. 하는 수 없이 수정궁은 다음에 가기로 했다. 프라도 미술관의 무료 관람시간이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프라도 미술관 무료관람 시간은 월요일에서 토요일까지는 오후 6시 ~ 오후 8시이고 일요일과 공휴일은 오후 5시 ~ 오후 7시까지이다. 어차피 18세 이하인 일우와 혁우는 무료였지만, 경비를 조금이라도 아끼고자 무료관람시간을 이용하기로 하였다.
낮에 확인해 두었던 미술관 입구에 도착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사람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분명 무료관람 줄이 어마어마하게 길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에 뭔가 잘못된 것이 분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아이들과 함께 건물의 반대편으로 돌아갔다. 아니나 다를까, 그곳에는 이미 지그재그로 포개진 줄들이 셀 수도 없을 만큼 빽빽하게 차 있었다. 급한 마음에 얼른 줄의 맨 끝을 찾았다. 줄이 얼마나 구불구불하게 긴 지 줄의 맨 마지막을 찾는 것조차도 힘들었다. 간신히 줄의 맨 뒤를 찾아 달라붙었다. 내 앞으로 늘어선 셀 수 없이 많은 머리들을 보니 혹시 사람이 너무 많아 못 들어가는 건 아닌가 하는 걱정이 찾아들었다.
“아빠, 우리 뒤로도 사람들이 엄청 줄 서고 있어요!”
일우가 뭐가 즐거운지 신이 난 표정으로 말을 했다. 일우 말대로 우리 뒤로 사람들이 계속 늘어나고 있었다. 그 모습에 마음이 묘하게 안정되었다.
‘내 뒤로도 이렇게 사람들이 많은데 설마 못 들어가기야 하겠어?’
어마어마하게 길었던 프라도 미술관 무료관람 대기줄
"고야와 벨라스케스를 찾아라!"
결국 거의 일곱 시가 다 되어서야 입장을 했다. 폐장이 8시라 한 시간 정도밖에 관람시간이 허용되지 않은 우리는 가이드북에 소개된 고야와 벨라스케스의 그림만 관람하기로 했다. 만약, 시간이 별로 없는 경우라면 모든 그림들을 수박 겉핥기식으로 보기보다는 인터넷이나 가이드북을 참고해 그 미술관에서 가장 유명한 그림들만을 공략하는 편이 효율적이다. 특히 아이들과 함께 할 때는 더욱 그러하다. 서 너 개의 작품을 아이들에게 미리 설명해 주고 보물찾기 게임을 하듯 작가들의 작품을 찾게 하면,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그 작가와 작품을 외우면서 친숙하게 되었다.
아이들의 흥미를 돋우기 위해 오늘 작전명은 스페인에서 가장 유명한 화가들의 이름을 딴 ‘고야와 벨라스케스’로 정했다. 아이들은 어렵지 않게 고야의 마하 시리즈를 찾았다. '마하'는 스페인어로 풍만하고 요염한 여자라는 의미라고 한다. 마하 시리즈는 '옷을 벗은 마하'와 '옷을 입은 마하'가 있는데 이 두 작품 모두 당시 최고 권력자인 마누엘 고도이의 주문에 의해 그려졌다. 그에게는 누드 미술품만을 따로 모아 놓은 방이 있었는데, '옷을 벗은 마하'는 '옷을 입은 마하' 바로 뒤에 설치되었다고 한다. 평소에는 ‘옷을 입은 마하’만 보이게 하다가 도르래 줄을 잡아당겨 ‘옷을 입은 마하’를 위로 올리면 ‘옷을 벗은 마하’가 드러나도록 했다. 당시 여성의 누드화를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던 스페인 종교재판소의 눈을 피하기 위한 꼼수였다. 후에 고도이가 실각을 하자 이 그림은 여지없이 발각되었고 그림을 그린 고야 또한 종교 재판소에 회부되어 곤욕을 치르게 되었다. 재판에서 고야는 그림의 실제 모델을 끝까지 밝히지 않았고, 이로 인해 그림은 더욱 유명해졌다고 한다.
고야의 '옷을 입은 마야'와 '옷을 벗은 마하'
벨라스케스의 ‘시녀들’ 또한 아이들이 먼저 찾았다. 마하 연작보다 아이들이 더욱 관심을 보인 그림이었다. 아마도 그림에 그려진 난쟁이의 모습이 아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한 모양이었다. 이 그림을 볼 때 아이들의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한 가지 방법을 소개하겠다. 바로 그림에 나와 있는 사람들의 숫자를 세는 것인데 등장하는 인물들이 많아 숫자를 세다 보면 그림에 더욱 흥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아이들이라 개를 포함할지도 모르는데 개를 제외한 사람의 숫자는 총 11명이다. 거울에 비친 필리페 4세 부부의 얼굴이 벨라스케스가 그리고 있던 초상화가 반사된 것에 불과하다는 의견도 있지만, 방안에 실재하는 인물의 숫자를 세는 것도 아니므로 그림에 등장하는 인물은 모두 11명이 맞다.
벨라스케스의 '시녀들'
고야와 벨라스케스를 만나고 나오니 마드리드는 이미 밤이었다. 관광도시의 화려한 조명 너머로 보이는 마드리드의 캄캄한 어둠이 조금 전 보고 나온 고야의 ‘1808년 5월 3일’의 그 슬픈 밤을 떠 올리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