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아빠가 너무 무서웠다. 물론 장난감을 사달라고 떼를 쓴 우리 잘못도 있지만, 아빠가 너무 무섭게 화를 내니 억울하고 화가 났다. 그 군인 피겨는 여기밖에 팔지 않는 건데 사지 못한 게 무척 아쉽다.
9살 일기
내가 사자고 한 것도 아닌데 형 때문에 나도 혼났다. 억울하다.
톨레도의 긴 역사가 차곡차곡 포개진 골목길들
업무 차 이곳 마드리드로 파견 나와 있던 후배 J와 연락이 되었다. 오후에 솔 광장에서 만나기로 했다. 톨레도를 가기로 계획했던 날이라 얼른 다녀오기로 했다. 교통권을 고민하다가 하나의 티켓으로 톨레도까지 가는 시외버스와 톨레도에서 타는 시내버스까지 이용할 수 있다는 일일 권(ZONE-T 1 DAY 티켓)을 구입했다. 엘립티카 광장(plaza eliptica) 역에 있는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출발해 한 시간 정도를 갔다.
성으로 둘러싸인 톨레도는 타호 강으로 둘러싸인 언덕 위 높은 곳에 있었다. 언덕배기라 시내버스로 갈아타고 올라갈 계획이었는데 버스에서 함께 내린 사람들이 씩씩하게 걸어 올라가는 걸 보고는 그냥 따라 오르기로 했다. 태양의 제국 스페인의 수도였던 톨레도는 2월이라고 하기엔 믿기지 않는 강렬한 햇볕으로 방문객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태양빛에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를 즈음 어깨를 한껏 추켜올린 보초병 같은 모습의 비사그라 문에 도착했다.
톨레도의 긴 역사가 차곡차곡 포개진 골목길들은 그만의 방식으로 우리를 환영하고 있었다. 모든 골목은 자신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도록 오래된 풍경으로 우리의 발걸음 하나하나를 붙잡았다. 덕분에 우리는 이름 모를 골목골목을 샅샅이 흝은 후에야 목적지인 '소코도베르' 광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절대 길눈이 어두워서는 아니었다. 이슬람 점령 시기에는 가축시장이었다는 '소코도베르' 광장에서는 주말을 맞아 흥겨운 축제가 벌어지고 있었다.
위풍당당한 톨레도의 비사 그라문
“ 아빠 우리도 저거 하면 안 돼요?”
축제가 열리고 있는 광장 한 편에는 어린이들을 위한 스포츠 클라이밍 체험 행사가 진행 중이었다. 진행요원에게 관광객인 우리도 할 수 있겠냐고 물었더니 다행히 가능하다고 한다. 인공 암벽의 돌출된 부위인 홀드를 잡고 5미터 정도의 높이까지 올라가야 하는 체험이었다. 이곳 주민으로 보이는 일우 또래의 아이들이 중간 높이에서 오르지 못한 채 번번이 미끄러지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정상에 오르기 전에 있어야 할 홀드 하나가 떨어져 있었다. 아이들의 작은 키로는 그 홀드 없이 정상에 오르기란 불가능해 보였다.
드디어 일우와 혁우 차례였다. 진행요원이 친절하게 아이들의 몸에 안전 로프를 매어주고는 위로 올려 주었다. 막상 높은 곳에 오른 혁우가 무서워하기 시작했다. 벽 중간에 멈춰 서서는 벽에 달라붙은 껌 딱지처럼 전혀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진행요원이 스페인어로 계속 독려했지만 혁우를 움직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와는 반대로 놀이동산에서 클라이밍 경험이 있던 일우는 성큼성큼 잘 올라갔다. 하지만, 역시 홀드가 없는 부분이 발목을 잡았다. 몇 번의 헛손질 끝에 결국 시간을 모두 소비하고만 일우는 제한시간을 넘겨 지상으로 내려지고 말았다. 그 옆으로 죽다 살아난 표정의 혁우가 먼저 내려와 멍하니 서 있었다. 일우에게서 뭔가 아쉽고 분한 표정이 보였다. 홀드만 떨어져 있지 않았다면 정상에도 충분히 오를 수 있었을 것이었다. 내게도 일우의 분하고 아쉬운 마음이 전해져 안타까웠다.
정상 정복을 못해 아쉽지만 웃으며 한 컷
알카사르 대혈투
맥도널드에서 간단히 끼니를 때운 후 톨레도의 내성이자 군사요새인 알카사르에 도착했다. 버스를 타고 들어올 때 보았던 톨레도 맨 위에 세워진 사각형 모양의 건물이었다. 알카사르 안에 있는 기념품 판매소에서 군인 피겨를 발견한 아이들이 사달라며 조르기 시작했다. 요 며칠 전에도 장난감을 사주었기에 나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하지만 아이들은 여기밖에 팔지 않는 희귀한 피겨라며 물러서지 않았다. 참다못한 나는 결국 화를 내고야 말았다. 처음에는 아이들의 행동에 화를 내기 시작한 거였는데 나중에는 여기까지 와서 화를 참지 못하고 터뜨려버린 스스로에게 더욱 화가 났다. 화가 가라앉지 않은 나는 넓은 테라스로 빠져나와 터벅터벅 걷기 시작했다. 내 눈치를 보면서 뒤따라오는 아이들의 위축된 모습이 느껴져 마음이 너무 아팠다. 우리 돈으로 3 만 원 정도 하는 가격이니 사실 그냥 사줄 수도 있는 가격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계속 기준 없이 아이들의 요구에 끌려 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군사요새 알카사르의 견고한 모습
“익스큐즈 미”
침울한 표정으로 광장을 힘없이 돌고 있던 내게 젊은 백인 아가씨가 말을 걸었다. 휴대폰을 건네주며 사진을 찍어달라는 그녀의 부탁을 내 기분이 안 좋다고 거절하긴 힘들었다. 그녀가 옆에 서 있던 엄마로 보이는 중년 여인의 어깨를 살포시 안으며 미소를 지었다. 나는 거의 기계적으로 휴대폰의 촬영 버튼을 눌렀다.
“땡큐”
고마워하는 그녀들에게 나 또한 웃어 주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세상에서 제일 침울했던 나였는데 웃음이 지어지는게 신기했다. 내 뒤를 눈치 보며 졸졸 따라다니고 있는 형제들에게 시선이 갔다. 순간 한없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안 그래도 먹고 싶고 하고 싶은 것 많은 아이들에게 어른들에게조차 참기 힘든 자제를 요구하기란 가혹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멀리 자판기가 보였다. 아이들 손을 잡고 데리고 가 시원한 음료수를 하나씩 쥐어주었다. 내친김에 피겨도 사 줄까 했지만 왠지 이대로 넘어갈 수 있을 것 같아 그만두고 말았다. 나는 여전히 얇은 주머니의 얄팍한 마음의 아빠였다.
군인 피겨를 못사 서운한 혁우
마드리드에서의 약속 때문에 보고 싶었던 엘 그레코의 작품은 결국 못 본채 떠나야 했다. 아침에 골목길을 헤맸던 것과 알카사르 박물관에서 쓸데없이 여유를 부린 탓이었다. 아니 더 냉정히 말한다면 하필이면 톨레도를 방문하기로 계획한 오늘, 후배와 약속을 잡은 나의 잘못이 가장 컸다. 후배에게 선물로 줄 마자판 과자를 급하게 사고 터미널로 가는 버스를 탔다. 시내버스 기사에게 마드리드에서 구입한 1일 권을 보여주었더니 이곳에서는 쓸 수 없는 티켓이므로 별도로 요금을 계산해야 한다고 했다. 두 번 세 번 설명을 해도 같은 대답만 무심하게 하기에 하는 수 없이 따로 요금을 냈다. 요금을 지불한 후에 자리에 앉아 다시 검색을 해 보았으나 인터넷에서는 모두 1일 권이면 톨레도 버스요금 지불도 가능하다고만 나와 있었다. 스페인어로 된 정보가 아니었기에 그에게 보여주지 못함이 안타까울 뿐이었다.
약속 장소인 솔 광장 곰 동상에서 후배 J를 만났다. 토목 관련 일을 하는 J는 이곳에 온 지 두 달이 다 되어간다고 했다. 스페인의 태양에 적당히 그을린 얼굴이 이곳 사람처럼 이국적인 느낌을 주었다. 아이들은 오랜만에 보는 한국 사람이라 무척이나 반가워했다. J가 원래 알고 있던 식당이 닫혀 있어 바로 근처에 위치한 빠에야 식당을 찾아갔다. 자리에 앉은 J가 속도는 느리지만 정확한 스페인어로 주인에게 주문을 했다. 그 모습을 본 아이들이 감탄을 하기 시작했다. 가뜩이나 호기심이 많은 아이들이 스타를 인터뷰하는 연예 프로그램 리포터처럼 질문공세를 퍼붓기 시작했다.
“어떻게 그렇게 스페인어를 잘하세요.”
“옷도 스페인 사람들처럼 멋있게 입고 있는 것 같아요.”
“삼촌처럼 건축 일을 하려면 어떤 공부를 해야 해요?”
J 역시 아이를 키우는 아빠답게 초반에는 아이들의 질문에 친절하고도 꼼꼼하게 답해주었지만 결국 시간이 지나면서 피곤해하기 시작했다.
“삼촌 하고 아빠가 정말 오랜만에 만났거든. 아빠에게도 시간을 좀 줘.”
부탁의 효력은 5분을 넘지 못했다. 결국 아이들의 수다를 막기 위해 최후의 수단인 스마트폰을 건네주고야 말았다. 어쩌면 처음부터 후배에게 질문 공세를 펼친 것부터가 스마트폰을 하기 위한 고도의 전략이었을지도 몰랐다.
우리도 스페인 병사들
전철을 타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 한국어로 신나게 말하고 있는 아이들을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바라보던 나이 지긋한 백인 여성이 말을 걸었다.
“한국에서 왔어요?”
그녀는 자신의 고향은 아일랜드이고 스페인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아이들이 활기차고 귀엽다며 칭찬을 해주었다. 올림픽이며 월드컵 개최 등 우리나라에 대한 정보를 꽤나 자세히 알고 있어 나를 적잖이 놀라게 했다. 정작 나는 아일랜드에 대해서 아는 바가 거의 없어 미안한 마음마저 들었다. 나이를 초월한 그녀의 호기심과 열정이 새삼 존경스러웠다.
"나중에 한국으로 놀러 오세요."
헤어지면서 마음을 담아 인사를 했다. 짧았던 그녀와의 만남이 지친 하루의 피로를 씻어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