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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옥상평상 May 01. 2018

라면은 맛있어.

팜플로나- 마드리드

라면은 맛있어.

 

팜플로나- 마드리드


11살 일기

최고급 호텔에 왔다. 아빠는 좋은 호텔을 싸게 예약했다고 좋아했다. 가끔 아빠는 너무 돈 얘기만 한다.


9살 일기

스페인 라면은 맛있다. 그래서 두 개를 먹으려고 했는데 아빠가 하나만 먹으라고 했다. 아빠만 많이 먹으려고 그러는 거 같다.




마드리드행 기차를 타야 했다. 돈도 아낄 겸 팜플로나 역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한 삼십 분 걸릴 거야.’라고 지도가 알려줬다. 일우와 혁우가 노래를 부르며 앞장선다. 이제 순례 길의 위험에서 완전히 벗어났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아이들은 팜플로나 주민들을 마주칠 때마다 “올라!”라며 스페인 인사를 했다. 몇몇 사람들은 당황해하며 지나가기도 했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이 반갑게 웃어주었다. 그 호의 섞인 반응에 용기를 얻은 아이들이 더욱 신이 나 인사를 해댔다. 살짝 민망한 마음에 나도 모르게 아이들과 거리를 벌리며 조금 떨어져 따라갔다.


간혹 인사를 받지 않는 주민들의 무뚝뚝한 시선이 내게 쏟아져 민망하기도 했지만 이 또한 아이들과 함께 하며 감내해야 할 여정이라는 생각에 아이들을 그대로 내버려 두기로 했다. 아이들은 자신들의 온몸으로 세상의 밝음과 어두움을 익혀가고 있는지도 몰랐다. 길 옆으로 은은하게 흘러가는 아르가 강 위로 아침 햇살이 금모래처럼 부서지고 있었다.




팜플로나 역으로 가는 길에서 만난 갈림길

 

마드리드 아토차역은 거대한 식물원 같았다. 오래된 건물을 그대로 두고 그 옆에 새로운 건물을 이어 만든 역 건물 안에는 다양한 종류의 나무들이 심어져 있었다. 덕분에 방문객들은 수목원에 온 것 같은 편안한 분위기를  받을 수 있었다. 마드리드 아토차역은 우리의 서울역과도 같은 중심역이었다.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자신들의 전통을 토대로 한 개축 방식이었다. 낡은 역을 그대로 둔 채 그 옆으로 새로운 건물을 이어 붙여 리모델링을 하는 방법이었다. 새로 만든 역사가 분리되어 있는 서울역도 이런 식으로 고쳐 만들었으면 어땠을까? 하긴, 제국주의 일본이 만든 서울역을 우리의 전통 건축물이라 부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외부세력에 의하여 단절된 우리의 전통과 역사는 여전히 우리에게 어려운 숙제를 던져주고 있었다.


마드리드 아토차 역 내부
마드리드 아토차역의  외관

마드리드 중심지역의 숙소비용은 생각보다 비쌌다. 겨울이라 저렴하지 않을까 기대했건만 마드리드는 겨울도 비수기가 아닌 모양이었다. 하지만, 일주일 정도 머물며 여행 계획을 새로 짜야하는 상황에서 저렴한 가격만 보고 덥석 예약할 수는 없었다. 고민 끝에 다소 외곽에 위치한 호텔에 숙소를 잡았다. 중심 관광지까지 이동하는데 교통비와 시간은 다소 더 들었지만 그것을 감안하더라도 숙소의 상태와 숙박비의 조건이 상대적으로 훌륭했던 이유였다.

 

 스페인 지하철은 어린이 요금이 따로 없었던 까닭에 낱개를 구입하는 것보다 할인율이 좋은 10회권을 구입했다. 파리 지하철 표인 ‘까르네’처럼  낱장 10장이 묶여있는 것이 아니었기에 처음에는 10회권 세 장을 사려고 했다. 그때 관광객 몇 명이 개찰구를 지나가는 보였다. 한 장의 표로 통과한 후 계속 다음 사람에게 건네주는 방법으로 개찰구를 통과하고 있었다. 마치 바통을 주고받으며 달리는 ‘이어달리기’ 같은 모습이었다. 우리도 구태여 세 장을 구입하지 않고 1장만 구입해 그들과 같은 방식으로 무사히 개찰구를 통과했다. 


우리나라와 같이 종착지에서 지하철 표를 회수하는 시스템이었다면 불가능한 방법이었을 것이었다. 스페인을 포함해 유럽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탑승 전이나 탑승 중에 승차권을 확인만 하는 시스템을 채용하고 있었다. 자원을 재활용한다는 측면에서 승차권을 회수하는 우리나라의 방식이 효율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30분 정도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 숙소 근처인 ‘아베니다스’ 공원역에 내렸다. 지하철 역에서 숙소까지 거리는 예상했던 것보다 멀었다. 모든 상품의 가격에는 반드시 그에 걸맞은 이유가 있었다.


호스텔에서만  머물다  처음으로 묵게 된 호텔

 

짐을 놓고 숙소에서 나와 우리가 내렸던 ‘아베니다스’ 공원 근처에 있는 까르푸 마켓으로 갔다. 유치원으로 보이는 건물 앞에 아이들을 마중 나온 학부모들이 웃으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조금이라도 빨리 집에 가고 싶은 아이들이 수다 삼매경에 빠져 있는 엄마 아빠의 손을 있는 힘껏 잡아끌고 있는 모습이 귀엽고도 안쓰러웠다. 하교 길의 모습은 어느 나라나 정겹고 따스했다. 


 마트에서 과일을 고르고 있는데 아이들이 신나는 표정으로  바구니 가득 무언가를 들고 왔다. 


“아빠 라면이에요!”


한국의 라면과는 좀 차이가 있는 하얀색 국물의 일본식 용기라면이었다. 아이들이 슬슬 시리얼에 질리기 시작하며 아침 식사 준비가 신경 쓰였던 내게는 마침 구세주 같은 제품이었다. 호텔에 커피포트가 있는 것을 확인하고 나오길 천만다행이었다. 일주일 만에 먹는 라면은 정말 꿀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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